② 중국 사신도 탐내던 조선의 ‘안식향(安息香)’

이준배 코스맥스, 기반기술연구랩장(이사)
이준배 코스맥스, 기반기술연구랩장(이사)

 

조선 개국 초기 명나라에서 사신으로 방문한 인물 중에는 조선 출신 환관宦官들이 꽤 있었다 고 한다. 그 중 해수海壽와 황엄黃儼은 태종(재위 1400~1418년)과 세종(재위 1418~1450년) 시기 조선에 자주 온 인물들이다. 해수海壽는 태종 재위 기인 1408년, 1409년, 1410년, 그리고 1417년과 세종 재위기인 1421년, 1423년, 1424년, 그리고 1425년에 사신으로 조선에 파견되었다. 

또 다른 인물인 황엄黃儼은 태종 재위기인 1403년(2회), 1406년, 1407년, 1408년, 1409년(2회), 1411년, 그리고 1417년과 세종 재위기인 1419년(2회)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조선에 왔다. 이들 때문에 조선은 임금부터 백성까지 모진 골탕을 당했다고 한다. 이 중, 해수海壽편에 ‘안식향安息香’이라는 향과 관련된 흥미로운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1423년 (세종 5년) 사신으로 조선을 방문한 해수海壽는 8월 13일 한양으로 가던 도중 평안도 감사에게 부탁하여 소견(비단) 60필을 인삼과 안식향安息香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한다. 이에 조선 조정은 평안도 감사에게 명하여 해수海壽의 요구를 들어주되 너무 많이 주지는 말라고 명령을 하였다. 

조선을 찾은 명나라 사신들이 안식향安息香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조선 조정은 왜 많이 바꿔 주지는 말라고 명령을 내렸을까? 조선왕조실록에서 안식향安息香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23년(세종 5년) 6월 3일 예조의 보고에서 찾을 수 있다. 예조에서는 명나라로 가는 조선 사신에게 주는 사례 물품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를 마련하자는 보고를 올린다. 이에 따라 다양한 물품이 보고되었고, 특히 인기 품목이었던 인삼, 오미자, 그리고 안식향安息香은 3근으로 제한하자고 하였다. 인삼과 오미자는 오늘날에도 친숙한 식품이다. 또한, 안식향安息香은 화장품 산업에 종사하는 우리들에게 있어 매우 친숙한 원료이기도 하다. 

앞서 8월 13일 명나라 사신 해수海壽는 평안도 감사에게 소견(비단) 60필을 인삼과 안식향安息香으로 바꿔달라고 부탁을 하고, 한양으로 떠났다. 사신의 소임을 마친 그는 귀국길에 평양에 도착하여 평안도 감사에게 자신의 거래내역에 대해 물어본다. 하지만, 평안도 감사는 해수海壽가 부탁한 초자(소견, 비단) 60필 중 10필은 인삼으로 바꾸었고, 나머지 50필은 인삼과 안식향安息香을 구할 수 없어 마포(삼베)로 바꾸었다고 말을 한다. 자신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못하자 그는 화를 내며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세종에게 인삼을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사신이 한 나라의 임금에게 이렇게 무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당시 개국 초기로 명나라의 눈치를 보던 조선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결국 해수海壽는 비단 60필로 인삼 300근과 안식향 40근을 받아내었다. 해수가 받아낸 인삼과 안식향安息香의 양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아마도 안식향安息香은 인삼보다 귀한 물건이었을 것 같다. 

그럼 왜 중국 사신들은 이토록 안식향安息香을 가지고 싶어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독특한 향취 때문에 인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467년(세조 13년) 9월 30일 황해도 관찰사는 명나라 사신 황철黃哲이 안식향安息香을 요청한다는 보고를 하였다. 황철黃哲은 1466년 조선 방문 때 안식향安息香을 태웠을 때의 기억이 났었던지 이번 방문에서 그것을 좀 얻었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한다. 이에대해 황해도 관찰사는 조선에서는 안식향安息香이 매우 드물고, 작년에는 우연히 얻은 것을 쓴 것이라 지금은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고 둘러댔다. 중국 사신들의 안식향安息香 사랑은 이처럼 그 독특한 향취 때문이었을 것 같다. 

며칠이 지난 10월 8일 조선 조정은 황철黃哲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 찜찜했는지 그를 위해 안식향安息香 10냥쭝(375g)을 보낸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에게 보낸 안식향安息香과 다른 여러 선물들은 조선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보낸 선물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보낸 선물私物이라고 분명히 알려주라는 것이다. 만약 조선 정부 차원에서의 공식적인 선물이라면 다음 사신이 올 때에도 선물로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 안식향安息香은 매우 귀한 물건이기 때문에 그것은 폐단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조선 조정은 개인적인 선물로 둘러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 사신들이 좋아했던 안식향安息香은 실제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다. 등급에 따라 다르겠지만, 초콜릿 향이 난다는 이야기도 있다. 식약처 생약종합정보사이트(www.mfds.go.kr/herbmed)에 따르면, 안식향安息香은 안식향나무 Styrax benzoin Dryander 또는 백화수 Styrax tonkinensis Craib ex Hart.(때죽나무과 Styracaceae)에서 얻은 수지로 특유의 향취가 있다고 한다. 참고로 안 식향安息香은 현재 보존제로 사용되는 안식향산 및 안식향산나트륨과는 다르다. 

안식향安息香을 만들기 위해서는 봄과 여름에 때죽나무와 같이 안식향安息香이 많이 있는 나무에 상처를 내고, 분비하는 수지를 모아 굳힌 다음 그늘에 말려서 얻는다. 하지만, 이렇게 고단한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안식향安息香의 양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이를 준비해야 하는 백성들의 고통은 상당했을 것이다. 

1469년 (예종 1년) 예조 소속의 통례원(조선시대 국가의 의례儀禮를 관장하던 기관) 관리였던 고택은 안식향 安息香과 관련된 제주도 백성의 고충을 보고한다. 한라산의 소산물 중 국가에서 사용하는 중요 물품인 안식향 安息香이 있는데, 주변 백성들이 나무를 베고 개간을 하는 바람에 안식향安息香 준비에 어려움이 있으니, 이를 금지시키고 어기는 자들을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다. 

사진 왼쪽부터 때죽나무, 때죽나무 분비수액, 안식향
사진 왼쪽부터 때죽나무, 때죽나무 분비수액, 안식향

하지만, 고택의 상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개선조치는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 같다. 3년 후인 1472년 (성종 3년)에도 유사한 보고가 올라온 것이다. 

제주도 한라산에서 얻어지는 안식향安息香은 때죽나무의 소산물이다. 때죽나무 꽃에는 안식향安息香이 있어 벌들이 잘 모이는 덕분에 양봉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나무에 상처를 내고 수지를 모은 후, 굳힌 다음 그늘에 말려서 안식향安息香을 얻게된다. 하지만, 이 과정이 너무 힘들고 만들 수 있는 양도 적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고통은 계속될 뿐이었다. 

안식향安息香과 관련된 백성들의 고통은 세종, 예종, 그리고 성종 재위기를 지나 18세기 영조시대까지 이어진다. 1764년(영조 40년) 비변사일기에서는 함경도 각 읍의 공물을 상평청(흉년에 백성을 구휼하던 기관)에 분납 대신 한 번에 내게 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줄여주자는 보고가 올라온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함경도 각 지방에서 백성들이 매년 바쳐야 하는 공물은 상당히 다양했다. 그 가운데, 영흥, 정평 및 함흥지역에서는 매년 안식향安息香을 각각 2근, 1근, 그리고 2근씩 준비해야만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공물로 직접 내지는 않고, 이에 해당하는 면포로 대신할 수 있었다. 

제주도 때죽나무 ⓒ
제주도 때죽나무 ⓒ
ⓒ국사편찬위원회,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g/view.do?treeId=0100&levelId=tg_003_0210&ganada=&pageUnit=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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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면포 제조시 단위길이당 얼마나 실을 조밀하게 사용했는가에 따라 3승포, 4승포 및 5승포 등으로 구분되었다. 보통 1승은 실 80올을 의미하고, 통상적으로 세금 납부시 공인 규격은 35척(약 1m)이었다. 한편, 문화재청 자료(출처: 문화재사랑, 2016년 11월, https://www.cha.go.kr)에 따르면, 조선시대 쌀 1석은 면포 3.5필로 교환되었다고 한다. 쌀 1석은 144Kg이기 때문에 면포 1필은 쌀로 환산할 경우, 약 41Kg 수준이다. 2022년 기준 상품기준 쌀 20Kg 소매가격은 평균으로 5만1000원 수준이다.(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안식향安息香 1근은 면포(4승포) 3필에 해당하기 때문에 쌀로 환산한다면 약 123Kg에 해당하고, 이의 현재가치는 약 31만3650원 수준이다. 물론, 물가변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계산이지만, 당시 안식향安息香의 경제적 가치를 가늠해 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세종시대와 영조시대의 물가가치 변화가 없었다고 가정하면, 앞서 소개한 사신 해수海壽가 가져간 안식향安息香 40근의 가치는 40근×31만3650원 = 1254만6000원 정도가 된다. 또한, 조선시대 1근의 무게는 약 642g이었으니 해수海壽가 가져간 안식향安息香의 무게는 25.68Kg 정도가 된다. 해수海壽는 중국에서 조선의 안식향安息香을 얼마에 팔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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