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디자이너가 마케터로 산다는 건』의 저자 장금숙 디자이너

살짝 고민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어서『디자이너가 마케터로 산다는 건』(이담북스)을 쓴 장금숙 디자이너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답변 분량이 생각보다 많았다. 답변을 읽고 나선 바로 결정 했다. 대부분의 내용을 게재해야겠다고. 우리나라 화장품업계에서 디자이너와 마케터를 넘나들며 일한 전문가가 드물거니와 화장품 디자이너의 솔직 담백한 생각을 듣기란 쉽지 않아서다. 그녀는 20여년간 디자이너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초보 마케터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장금숙 디자이너의 생각을 함께 따라가보자. 

 

『디자이너가 마케터로 산다는 건』을 쓴 이유가 궁금합니다. 

디자이너들이 사소한 마케팅 지식 몇 가지를 몰라서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습니다. 디자이너들에게는 마케팅이나 브랜드 관련 공부가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용어도 생소하고, 책도 너무 두껍죠. 마케팅을 디자인에 어떻게 접목해야하 는지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마케터와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졸작을 만든 경험을,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한 번씩 가지고 있을 겁니다. 물론 마케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자이너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디자이너와 마케터로 일했던 저의 경험을 통해,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야하는 서로의 다른 모습을 잘 이해하고, 이들이 꼭 숙지해야하는 두 분야의 중요한 지식들을 쉽고 간단하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년간 디자이너와 마케터로 살면서 많은 브랜드를 만들어왔는데요, 막상 저의 이미지는 잘 만들지 못하고 있었더라구요. 그 부분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후배 디자이너 분들과 마케터 분들, 그리고 브랜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자신의 모습도 잘 브랜딩하길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요. 

요즘 코로나로 인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20여 년 간 회사생활만 하던 제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 브런치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작가로 활동하면서 디자인관련 글을 쓰게 되었고, 책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GLG 그룹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기업들을 자문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실무와 관련된 디테일한 자문이 필요한 기업들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도 일을 합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기면 분야별 전문가들이 모여 같이 일을 하는 방식입니다. 한 가지 일만 하던 예전과는 달리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합니다. 

 

디자이너와 마케터로 일했는데요. 

힘들었던 점이 많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점을 한가지만 꼽으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책에도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만, 두뇌의 전환속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디자인과 마케팅을 넘나든다는 것은 감성적인 영역 과 이성적인 영역을 넘나드는 일입니다. 사용하는 두뇌영역이 다르다고 할까요? 열심히 좌뇌만 쓰다가 갑자기 우뇌한테 일을 시키려고 하는데 우뇌가 시동이 걸리는데 시간이 필요한거죠. 프린터와 팩스를 함께 쓰도록 만든 복합기처럼 버튼 몇개만 누르면 마케터에서 디자이너로 생각의 방향이 바뀌면 참 좋겠는데, 사람의 머리가 그렇지는 않더라구요. 그래서 가끔 마케팅 팀장이었던 제가 디자인을 걱정하고 있거나, 디자인 팀장으로 일하면서 마케팅을 걱정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사서 걱정을 한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좋게 말하면 제품을 전방위적으로 관리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람의 머리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일을 다 잘하기는 힘듭니다. 마케팅 팀장이 디자인을 챙기다보면 꼭 마케팅 업무에서 한 두가지 챙기지 못하고 소홀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생기고, 디자인업무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아 참 힘들었죠. 

 

장점도 있을것 같아요. 

좋은 점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마케터로 일하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거죠. 디자이너로만 일할 때는 내가 디자인한 브랜드에 디자인 요소가 얼마나 기여하는지, 회사나 소비자의 디자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무엇인지 깊이 알기가 어려워요. 브랜드매니저의 평가에 의존하거나 매출액을 보면서 짐작할 뿐이죠. 자동차 운전에 비유하자면, 창문도 백미러도 없는 차를 타고 운전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얼마만큼 왔는지, 경쟁자의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고 좁은 시야로 계속 앞만 보고 달려가는 느낌이죠. 하지만 마케터로 일하면서는 브랜드에 대한 디자인의 기여도가 너무나 명확하게 보였어요. 

마케터의 말 한마디, 연구원의 사소한 행동이나 의견이 

디자이너에게는 아이디어의 근원이 되는 창의력의 씨앗입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까지 경청해야 많은 아이디어와 창의력의 씨앗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마케팅은 제품의 소비자 평가 뿐 아니라 내용물 개발에서부터 생산, 유통, 영업까지 제품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가 넓은 시야를 갖게 되면, 특히 리더의 경우에는 모든 의사 결정 기준이 명확해지고 일도 훨씬 수월해집니다. 그리고 어떤 디자인이 브랜드의 성장에 기여하는 디자인인지도 잘 알게 된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오랜 시간 디자이너로 일 하다가 마케팅 업무를 하게 되니 새로운 도전이 겁나지 않더라구요. 디자이너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창의력을 기반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브랜드 매니저가 되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남들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창의적인 제품을 개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습관처럼 늘 하던 일이니까요. 회사가 5% 성장하기는 어려워도 30% 성장은 쉽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기업의 큰 성장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디자이너가 마케터로 산다는 건』
: 프로 일잘러를 위한 디자인과 마케팅 공존라이프

 

“창의적인 마케터가 되고, 물건을 잘 파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저자인 장금숙 디자이너는 마케터로 살았던 3년 반의 시간이 자신을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디자인은 더 이상 가치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누가 요청하지 않아도 제품의 판매 활동과 마케팅 활동에도 도움이 되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스스로 찾게 됐다. 

이 책에서 저자는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한 간단한 마케팅 지식과 지난 20여 년간 쌓아온 디자인 노하우와 마케터로 일했던 경험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장금숙 디자이너는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에서 포장디자인을 전공했다. 식품패키지디자이너를 거쳐 2002년부터 2017년까지 애경 산업에서 크리에이티브 디자인팀 팀장과 브랜 드 마케팅팀 팀장으로 일하면서 화장품과 생활용품 브랜드를 만들고 디자인하는 일을 맡았다. 3년간 덴마크에 살면서 북유럽의 우수한 디자인을 한국에 알리는 해외 디자인 리포터로 활동했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향수 디자인과 방향제 디자인으로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Pentawards 2014에서 ‘SILVER Award’를, Reddot Design Award 2014에서 ‘winner’를, iF Design Award 2015에서 ‘winner’를, Pentawards 2015에서 ‘BRONZ Award’를 각각 수상했다. 신규 생활용품 브랜드를 개발해서 조선일보, 중앙일보 외 13개 언론사 및 브랜드 관련 기관에서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장금숙/이담북스(한국학술정보)/352쪽/1만8천원] 

『디자이너가 마케터로 산다는 건』의 주요 메시지를 담 은 ‘밑줄긋기’는 더케이뷰티사이언스 웹사이트(www. thekbs.c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 마케터, 연구원들 간의 소통이 중요하군요.

디자이너는 상상력과 창의성이라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마케터나 연구원이 주는 작은 씨앗의 싹을 틔워 때로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때로는 먹음직스러운 열매가 열리게하죠. 

장미꽃 씨앗을 받으면 예쁜 장미꽃을 피울 수가 있고, 완두콩 씨앗을 받으면 완두콩이라는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는 것이 디자인입니다. 그런데 연구원이나 마케터와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끔 디자이너는 완두콩 씨앗을 받아서 장미꽃을 피우려고 하는 헛수고를 하게 되죠. 

다시 말하면, 마케터의 말 한마디, 연구원의 사소한 행동이나 의견이 디자이너에게는 아이디어의 근원이 되는 창의력의 씨앗이 되기 때문에 그들과의 소통은 정말 중요하고, 사소한 말 한마디까지 경청해야 많은 아이디어와 창의력의 씨앗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덴마크에서 살다 왔는데요.

한국 화장품 패키지 수준을 선진국과 비교했을듯 하네요. 

한국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의 디자인력을 가진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화장품 패키지 디자인의 경우도 화장품 트렌드를 리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제는 전 세계가 한국의 화장품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내 경험을 볼때도 불과 5~6년 전만해도 해외 선진국들의 패키지디자인을 조사하러 일본, 프랑스, 독일, 그리고 미국 등으로 시장조사를 다니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용기들과 앞선 기술력을 가진 화장품 회사들의 디자인을 많이 볼 수 있었거든요.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디자이너들에게 해외시장조사를 많이 보내주었죠.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선 국내 화장품패키지의 디자인 수준이나 포장재들의 품질 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까지 와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적인 디자인어워드에서 한국 화장품들의 디자인상 수상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구요, 글로벌 브랜드들이 한국의 화장품 용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 화장품의 디자인 수준을 끌어올리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디자이너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프랑스나 미국과 같은 화장품 선진국이 패키지디자인 부분에서도 앞서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디자인 역량이 좋아서가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이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철학과 디자인이 만나 시너지를 내는 것이지요. 

제가 좋아하는 화장품 중에 ‘NARS’라는 화장품 브랜드가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분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입니다. ‘NARS’ 브랜드의 패키지 디자인 역시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디자인이죠. 하지만 한국의 디자인들이 이 제품의 디자인보다 수준이 낮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NARS’는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나이와 관습,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객관성에 의문을 던지는 브랜드’라는 브랜드 철학을 디자인에 잘 담고 있고, 상식을 깨는, 그리고 조금은 파격적인 이미지의 디자인을 통해 브랜드의 철학을 디자인으로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화장품들도 이제는 브랜드의 철학과 개성을 만들고 제품의 디자인에 그것들을 온전히 담아내는데 좀 더 투자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야 화장품 브랜드의 패키지디자인도 한 단계 높이 도약할 수 있고, K뷰티에 대한 명성도 더 높이, 더 오래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북유럽 디자인이 왜 강할까요? 

3년간 생활했었던 덴마크를 위주로 설명할게요. 스칸디나비안 3국이 예전에는 하나의 나라였기 때문에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도착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행사가 있어 간적이 있었습니다. 학교 일층의 넓은 강당에 도착했을 때 행정실에서 일하는 남자직원 몇 분이 강당에 의자를 나르고 있었죠. 그들이 의자를 나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수백 개는 족히 되어 보이는 의자는 대부분 흰색이었는데, 흰색의자들 중간 중간에 파스텔 톤의 컬러의자들을 배치하더라구요. 처음에는 흰색의자가 부족한가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흰색의자만 있으면 넓은 강당이 너무 밋밋하니까 중간 중간에 저채도 밝은 파스텔 톤의 의자들로 포인트를 주고 있었던 거지요. 디자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정직 직원들도 그 정도의 디자인 감각을 갖고 있는 나라가 바로 북유럽 국가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부모님들이 예쁘게 집을 꾸미고 직접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고, 많은 집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받으며, 그들이 꾸며놓은 멋진 집들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보아왔죠. 

우리는 존경하는 조상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왕과 장군을 기억하지만 그들은 ‘카이 보예센Kay Bojesen’이나 ‘베르너 팬톤Verner Panton’과 같은 디자이너를 자랑스러운 조상으로 기억하고 있는 민족입니다.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여유있는 삶을 사는데요, 삶이 풍족하다기보다 부족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욕심부리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충분한 환경과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죠. 

결론적으로 북유럽 사람들은 디자인을 잘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각을 타고났으며, 어린시절부터 좋은 디자인을 많이 보면서 자랐고, 또 디자인이 좋아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북유럽 화장품 디자인을 포함한 그들의 디자인을 보면, 제품의 본질에 충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도 있죠. 화장품 디자인뿐만 아니라 가구나 다른 분야에서도 북유럽 디자인은 조화로움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화장품 디자인을 보면 마치 인테리어 소품처럼 화장대나 집의 인테리어 디자인과도 잘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이죠. 혼자 튀지 않고, 과대포장해서 자신을 돋 보이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조용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디자인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아요, 실제로 자연친화적인 재료를 사용하기도 하구요. 

 

책을 보니까 포르투갈 천연 향수 비누 브랜드

‘클라우스 포르토’Claus Porto를 좋아하시던데요. 

해마다 굉장히 많은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기업들에서 수많은 마케터들과 디자이너들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죠. 그 중 성공하는 브랜드가 5% 정도에 불과하다고 책에서 말씀드렸었는데요. 5%의 브랜드 중 100년 동안 브랜드의 철학을 유지하면서, 잘 팔리지는 않더라도 살아있는 브랜드가 몇 개나 될까요? 

한국에서 화장품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아모레퍼시픽의 경우도 태평양이라는 기업브랜드로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지만, 태평양이라는 브랜드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타 업종이라도 한국에 100년의 세월동안 변하지 않고 소비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는 브랜드가 몇 개나 있을까요? 좋은 제품이 아니라면 1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100년이라는 세월이 브랜드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무리 실력있는 마케터라도 브랜드를 만들면서 역사와 전통까지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온전히 그 긴 세월을 버틴 브랜드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라고 할 수 있죠. 

100년의 가치를 비용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요? 클라우스 포르토가 가진 가장 큰 경쟁력은 130년이 넘는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입니다. 브랜드에 있어서 역사와 전통은 제품에 대한 신뢰는 물론이고, 브랜드의 정체성과 스토리를 만들어줍니다. 마케터들은 브랜드의 정체성과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합니다. 브랜드 가치의 핵심이 되는 요소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브랜드는 제품에 대한 경험이 오랜 기간 고객들에게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브랜드와 함께한 추억들은 또 그들만의 스토리가 됩니다.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가족들과의 추억 어딘가에 함께 존재했었던 브랜드에 대한 기억은 가족들과 헤어진 뒤에도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잖아요. 예전의 추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말이에요. 

디자인적 측면에서도 클라우스 포르토는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클라우스 포르토가 출시된 19세기 유럽은 미술사조 중에서도 아르누보 양식이 유행하던 시대였죠.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아르누보양식의 디자인은 소수 귀족들만이 즐기던 미용제품, 특히 향수 제품들에서도 유행했었어요. 일반인들에게 값비싼 향수는 꿈의 제품이었죠. 클라우스 포르토는 바로 미용비누에 이런 향수제품의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적용해서 향수를 구입할 수 없는 일반인들도 미용비누를 통해서 고급스러운 향수의 디자인과 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어요. 

프랑스나 미국과 같은 화장품 선진국이 패키지디자인 부분에서도 앞서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브랜드 철학이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철학과 디자인이 만나 시너지를 내는 것이지요. 

클라우스 포르토의 제품패키지에서 19세기 귀족들에게 유행하던 아르누보 스타일의 디자인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몇몇 제품은 고무인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죠. 19세기의 화려한 아르누보 스타일의 다양한 디자인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축복과 같은 일입니다. 

신제품을 출시하고 몇 년 만 지나도 디자인이 올드하게 느껴진다고 디자인 리뉴얼을 하자고 하는 요즘, 130여 년 전에 디자인한 제품이 지금도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워요. 어떻게 하면 일관된 디자인 철학을 가지고 시대의 유행을 뛰어넘는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디자이너들에게는 커다란 숙제거든요. 

한국 화장품의 디자인 중에서도 ‘클라우스 포르토’ 처럼 100년 동안 디자인 철학을 유지하면서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갈 브랜드가 있을까요? 한국에도 이런 100년 브랜드가 많아지기를 희망해봅니다. 

 

화장품 디자인(친환경, 창의성, 실용성 측면)에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은 어떤게 있나요? 

가끔 디자이너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디자인을 왜 하는 걸까요? 디자인이 친환경을 추구해야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친환경적입니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결국 기계를 돌리고, 플라스틱, 종이, 잉크 등 환경에 이로울 것이 없는 재료들을 사용해야 하니까요. 화장품 디자인을 하면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될 수는 있지만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창의성은 어떤가요? 디자인은 아트가 아닙니다. 가끔 디자이너들은 창의성에 너무 치우친 디자인으로 많은 이해관계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창의성 역시 디자인의 기본이 되는 개념이지만 추구해야 할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실용적인 화장품 디자인은 어떤가요? 실용성이라는 단어가 화장품의 카테고리와 잘 어울리나요? 화장품은 아름다움을 파는 제품입니다. 사실 실용성과는 좀 거리가 있죠. 하지만, 모든 제품의 디자인은 실용성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창의성, 실용성, 그리고 친환경성은 모두 어떤 제품을 디자인하든 반드시 고려해야할 사항입니다만, 추구해야할 방향은 아닌거죠. 

화장품 디자인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원론적인 질문을 한번 해볼께요. 화장품은 왜 만드는 거죠? 왜 디자인이 필요한 걸까요? 그 원리를 생각하면 너무나 간단합니다. 화장품 역시 브랜드를 가지고 있고, 제품을 팔아 이익을 발생시켜야 제품으로서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화장품이라는 제품의 영역이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파는 영역에 있을 뿐 인거에요. 화장품뿐만 아니라 모든 제품의 디자인은 브랜드의 철학이나 제품의 가치를 얼마나 잘 담아내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고 디자이너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품의 디자인은 브랜드의 철학이나 제품이 추구하는 바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작업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품을 디자인하기 전 브랜드가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고, 제품이 추구하는 바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브랜드의 철학이 친환경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면,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전달함에 있어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기반으로 친환경성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품을 디자인하면 되는 거죠. 

 

최근에는 화장품 용기를 두고 ‘예쁜 쓰레기’라는 표현도 합니다.

음이 많이 아프실텐데요. 화장품기업이 개선할 점은요. 

저도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제가 3년간 북유럽에 살면서 가장 의식이 많이 바뀐 부분이 있다면, 환경 오염에 대한 문제일 것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쓰레기를 너무 많이 발생시키는 디자인들을 보니 참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많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얼마 전 브런치에 ‘디자인도 착해지는 게 먼저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디자인도 더 늦기 전에 착해져야 합니다. 패키지에서 환경에 유해한 물질들을 줄여 나가야하고, 더 많아 보이거나 더 커 보이려고 과대포장을 하지 말아야 하구요. 제품의 패키지에 대한 환경관련 규제들도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겨우 60ml밖에 안되는 화장품을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의 용기에 담아 파는 크림제품을 보며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제품이 잘 팔리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들 커보이는 용기들을 찾기 시작했죠.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런 문제는 디자이너 개인의 힘만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기업은 물론 소비자들도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정부차원의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인에 대한 지원을 점점 늘려가는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그들에게만 의존하기에는 너무 부족하죠.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유럽 사람들처럼 우리들 자신이 의식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경에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제품은 이제 사지도 팔지도 않는 분위기를 만들 어가야죠. 

 

정부와 기업이 지원할 부분이 많겠네요. 

한국의 화장품 디자인이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국 화장품이 가지고 있는 약점부분을 빨리 보완 해나가야 합니다. 

가장먼저 해야 할 일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디자인 격차를 줄이는 일이 되겠죠. 대기업들은 자원이 풍부하고 다양한 인력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충분한 인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디자인력과 브랜드력이 부재하거나 그 분야 인력들의 역량이 부족한 경우도 많습니다. 좋은 제품과 기술을 가진 화장품 회사들에게 능력있는 디자이너와 마케팅 인력들을 지원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원방식은 무궁무진 하겠죠. 

그리고 기업들은 친환경 패키지를 개발하거나 친환경 소재를 발굴하는 것처럼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하는 부분들은 공동으로 같이 개발을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환경 소재나 패키지들이 시장에 정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무래도 친환경 소재들은 가격이 비싸거나 작아 보이는 등 시장 환경에 불리한 경우가 많거든요. 화장품 디자인에서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갖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비슷한 규모의 회사들이 공동으로 대응을 하면 소비자들도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시장에도 빨리 정착이 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물론 정부의 도움이 있으면 더 좋구요.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어서 좀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에요. 

 

화장품 디자이너들은 트렌드를 어떻게 읽고 있나요? 

아마 대부분의 화장품 회사들이 비슷하겠지만 트렌드를 전문으로 예측하고 세미나를 해주는 트렌드 전문 업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업체들의 세미나에 매년 참석합니다. 그 중에서도 패션트렌드는 화장품 트렌드를 예측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패션과 화장품은 연관성이 많아서 비슷한 트렌드를 가져가거든요. 그리고 매년 소비트렌드를 예측해서 발표하는 기관들에서 세미나도 하고, 책을 내기도 하죠. 컬러트렌드만을 예측해서 발표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화장품과 관련된 국내외 브랜드들의 신제품들을 전부 서칭해서 트렌드를 분석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팀원들과 새로 생긴 가장 핫한 장소를 직접 방문해서 조사를 하기도 합니다. 시장조사나 세미나가 끝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다보면 화장품의 디자인 트랜드를 쉽게 예측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업무에 어떻게 적용할지 감을 잡을 수가 있는 것이죠.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네요 

창의력은 타고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대부분의 창의력은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개발됩니다. 저 역시도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 수도 있는데, 습관이 되면 재미있기도 하고 힘들지도 않습니다. 창의력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생각하는 힘’이에요. 물론, 팀원들을 가르치거나 디자이너들을 자문할 때도 그런 조언을 하곤 합니다. 한 가지 제품이나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능력이 창의력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제품과 관련된 다양한 단어들을 찾아내고, 다시 다른 산업에서의 비슷한 사례들과 비교 해보고, 제품을 사용하게 되는 소비자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기도 하구요. 제품이 주는 메시지와 연관된 이미지, 그리고 전혀 엉뚱한 분야와의 결합 등 창의력을 키우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모두 생각의 힘이 필요한 것이지요. 저도 일할 때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것들 중 2가지 정도만 사례를 들어볼까 합니다. 책에서 언급했었던 내용 중 선물세트 디자인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십 여 년 전의 일이지만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책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못했던 내용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명절용 선물세트로 샴푸나 치약, 비누가 들어있는 생활용품 선물세트가 저가의 제품으로 인식되면서 회사의 매출도 점점 떨어져서 이 사업을 계속해야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생활용품 선물세트는 패키지에 드는 비용이나 생산원가가 높아서 회사입장에서는 이익이 박한제품이죠. 그렇다고 가격을 올려서 팔수도 없었어요. 이미 소비자들에게 저가 제품으로 인식이 되어있기도 했고, 저렴한 경쟁사 제품들도 많이 있었으니까요. 그 무렵 제가 선물세트 디자인을 새롭게 담당하게 되었고 고민이 많았죠. 그때까지는 평상시에 매장에서 파는 삼푸나 비누제품들을 커다란 박스에 보기 좋게 담아서 선물하기 좋은 사이즈로 만들고, 박스의 전면을 디자이너가 예쁘게 디자인해서 팔고 있었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경쟁사들도 비슷했고,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들도 모두 비슷했죠. 몇 개의 제품이 들어있는지, 가격이 얼마인지가 구매의 중요한 판단기준이었어요. 디자인보다 구성품의 갯수와 가격이 구매의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고, 매출은 물론, 이익도 박한 제품에 비용을 투자해서 디자인을 새롭게 하자고 할 수는 없었어요. 그렇다고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디자인을 하면 매출이 더 빠질게 불보듯 뻔했습니다. 참 난감한 상황에서 제가 담당디자이너가 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런 상황을 돌파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물세트라는 제품은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선물은 내가 필요한 제품을 사는 게 아니라는거죠. 구매자와 사용자가 달라요. 이 부분에 문제를 풀 열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제품을 선물로 받고 싶을까요? 제가 깊이 생각한 부분은 바로 이거였습니다. 받고 싶은 선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물론 누구나 비싸고 좋은 제품을 받고 싶겠지만, 우리가 줄 수 있는 제품은 샴푸와 치약, 비누 같은 생활용품밖에 없으니 이 제품들을 어떻게 하면 받고 싶은 제품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도 써보지 않은, 평상시에는 구매할 수 없는 한정판 제품을 만들어 가치를 높이기로 한 거죠. 그래서 제품에 누가 봐도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화려한 색감의 명화들을 활용해서 커다란 선물세트를 디자인했습니다. 명화의 감동을 함께 선물하는 선물세트라는 타이틀과 함께요. 지금은 명화를 활용한 디자인들이 좀 올드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만해도 너무 센세이션한 발상이라서 매출은 물론 기사화도 많이 됐었고 아트마케팅 사례로 소개도 많이 됐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마트에서 만나는 작은 전시회’라는 제목으로 마치 미술관의 작은 전시장을 마트에 옮겨놓은 것처럼 선물세트를 매대에 진열하는 아이디어를 매장 측에 전달했고, 몸도 마음도 바쁜 명절을 앞두고 선물을 사러온 고객들은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고 마트 한복판에서 아름다운 명화를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죠. 

두 번째 사례는 저의 대표작인 ‘에이지투웨니스’의 팩트 제품 중 스와로브스키와 컬래버레이션을 했었던 팩트제품의 디자인에 대해 말씀드려 볼께요. 에이지투웨니스의 팩트제품이 론칭한 이후 시즌마다 조기 매진을 이어가면서 회사가 너무 바빠졌습니다. 시즌마다 예상했던 매출을 훨씬 뛰어넘는 주문이 들어오니 공장도, 협력업체들도 모두 힘들어하고 있었죠. 그때 마케팅에서 고객감사의 일환으로 스와로브스키와 컬래버레이션을 한 제품을 이번시즌에 출시하고 싶다는 의견을 주었어요. 20대 여성들이 설레는 프로포즈에서 반지를 받는 것처럼, 40대의 중년 주부들에게 보내는 두번째 프로포즈라는 콘셉트로 가장 좋은 아이템이 보석이었던 것이죠. 매 시즌마다 디자인콘셉트 때문에 고민이 많았었는데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든 쉬운 일은 없더라구요. 아무리 컬래버레이션 제품이라고 해도 가격을 더 높게 받을 수도 없고 양산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도 안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모두 고려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이런 이유로 팩트 용기에 박을 수 있는 스와로브스키 큐빅은 한 개뿐이더라구요. 그것도 2.5mm의 아주 작은 큐빅이었죠. 팩트 전체를 큐빅으로 덮을 생각을 하고 있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죠. 

그때부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팀원들과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큐빅 한 개로 디자인을 끝낼 수는 없었거든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어야 해결 가능한 문제였었죠. 큐빅 없이 팩트 전체가 조명을 받았을 때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카테고리를 막론하고 가장 빛나는 용기를 찾아오게 했고 빛 반사의 원리에 대해 생각하게 했죠. 단순히 후가공만으로는 부족했거든요. 빛나는 용기를 만들기 위해 빛이 반사되는 원리와 다이아몬드를 가공하는 원리를 생각해보면 제품 표면에 가장 많은 각도의 면을 만들어 빛의 반사를 유도하면 조명을 받았을 때도 마치 보석이 박힌 것처럼 용기 전체가 빛날 수 있을 꺼라 생각했던 거죠. 물론 재질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방송에서 효과를 내기에는 충분할 꺼라 생각해서 몇 번의 실패 끝에 결국 비용이 올라가지도 않고, 생산성에도 문제가 없는 빛나는 보석같은 용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홈쇼핑 방송에서 조명을 받으니 스와로브스키보다 더 반짝거려서 큐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빛나는 우리 제품이 조기에 매진되는 장면을 감동스럽게 지켜보았죠. 

이처럼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노력 없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한 가지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한 접근을 하는 연습이 필요하죠. 그리고 사례에서 느끼셨겠지만,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제품의 비용을 너무 많이 올리거나 생산성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아이디어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코로나19가 화장품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칠까요? 

코로나19가 산업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화장품산업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주)오픈서베이의 ‘코로나19 이후 여성 뷰티 카테고리 리포트 2020’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부분이 색조화장품의 매출 감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기간이 늘어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외출자제 때문이죠. 앞으로도 재택근무나 비대면 소비는 쉽게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회복은 있겠지만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분위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반면 스킨케어부분은 색조화장품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색조화장을 자제하면서 피부에 대한 중요성이 더 커지기도 했고, 마스크로 인한 트러블로 피부관리의 필요성을 더 느끼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페이셜클렌징과 마스크팩, 트러블 피부를 위한 더마화장품, 그리고 자연유래성분의 천연 성분 화장품들의 성장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우선 코로나19로 인해 화장품 디자이너들이 더 고민을 하게 될 부분이 바로 위생이라고 생각합니다. 

■ 예비 디자이너를 위한 Tip

“화장품 디자이너는 제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해요” 

장금숙 디자이너에게 화장품 디자이너를 꿈꾸는 예비 디자이너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얘기는 다음과 같다. 

화장품디자인은 초보디자이너들도 감각만 있다면 쉽게 접근이 가능한 디자인 영역입니다. 하지만 처음 접근할 때와는 다르게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화장품 패키지를 보면 다양한 재질과 인쇄방식을 모두 활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뿐만 아니라 용기디자인에 대한 이해와 성형방식, 그리고 후가공 스킬에 대한 지식도 점점 필요해지죠. 결국 용기의 설계까지 관여하지 않으면 디자인에 한계가 오기도 합니다. 저는 내용물의 상태까지도 연구소와 협의를 하고, 다양한 판매채널에서의 매대 디자인과 VMDVisual Merchandising의 디자인까지 관심을 가졌어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일관된 이미지로 움직여야 화장품 디자인이 완성되는 것이죠. 

이런 부분이 바로 다른 디자이너와 화장품 디자이너가 달라야 하는 점이기도 하고, 예비 디자이너들이 고려해야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른 카테고리의 디자인들은 디자인 원고를 넘기고 나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기도 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할 수도 있는데, 화장품 디자인은 좀 다릅니다. 물론 이 모든 분야를 세분화해서 따로 팀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들도 있지만, 규모가 작은 회사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아무리 팀이 나뉘어 있다고 해도, 결국 처음 디자인을 기획하고 시작한 패키지디자이너들이 디자인 전 영역에 다 관여해야만 소비자들에게까지 디자인 의도가 잘 전달이 되기 때문에 내 영역만 하고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없어요. 일이 많아지고 힘들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디자이너의 파워가 강한 영역이 바로 화장품 디자인인 것 같습니다. 브랜드의 이미지가 되는 디자인 전체를 내가 주도해서 방향을 잡고 리드할 수 있다는 것이죠. 화장품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예비디자이너 분들이라면 내가 그런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화장품의 패키지 디자인뿐 아니라 제품의 내용물과 용기, 판매채널의 매대 디자인까지 포함된 화장품 브랜드의 전체적인 기획의도와 디자인 콘셉트를 눈여겨보는 습관을 길러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트러블 피부를 개선해주는 더마화장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제품의 특성상 위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품 용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뿐만 아니라, 피부에 자극이 적은 천연성분의 화장품들이 계속 성장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천연성분의 제품들이 점점 늘어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제품 패키지의 소재나 디자인도 제품의 콘셉트에 맞추어 점점 환경 친화적으로 바뀌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본인의 대표적인 화장품 디자인을 꼽아주셔요. 

기억에 남는 디자인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화장품 디자인을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애경산업에서 화장품디자인 팀의 팀장으로 근무할 때 론칭시킨 ‘에이지투웨니스AGE 20’s’라는 브랜드의 디자인을 꼽고 싶어요. 2013년 브랜드를 런칭시키고 3년간 제가 디자인을 관리했어요. 

이 브랜드는 40대 중년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화장품 브랜드였어요. 제 자신이 타깃이었기 때문에 저한테 딱 필요한 제품이기도 했고, 제가 잘 아는 제품이기도 했죠. 그리고 40대 중년 여성들에게 빛나는 두 번째 20살을 선물하겠다는 브랜드 철학도 맘에 들었구요. 무엇보다 40대를 위한 화장품이 거의 없을 무렵 중년여성을 위한 화장품 브랜드를 디자인한다는 것이 참 좋았죠. 애경산업은 별도의 화장품 매장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제품은 홈쇼핑에서만 판매되는 제품이었습니다. 회사의 계속되는 화장품부문의 매출부진으로 프리몰드 용기조차 찾기 힘든 상황에서 정말 어렵게 론칭해서 성공시킨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디자이너가 쓸 수있는 무기도 별로 없었죠. 금형개발도 할 수 없었고, 용기에 대한 선택권도 없어서 프리몰드 용기 업체에 재고가 남아있는 용기를 어렵게 구해서 팀원들과 용기에 맞는 디자인을 해야 했어요. 제품의 용기 디자인이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으로 승부를 봐야했고, 홈쇼핑이 주 판매채널이기 때문에 화면발이 잘 받는 디자인이 필요했죠. 그리고 저렴한 가격 때문에 비용을 많이 투입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모든 것이 풍족한 상황에서 좋은 디자인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화장품디자인을 하다보면 자원이 한정되어있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경우도 있고, 또, 판매채널의 특성상 디자인에 비용을 많이 투입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이 늘 존재합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좋은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던 디자인이라서 저의 대표디자인으로 꼽고 싶습니다. 

‘에이지투웨니스’는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디자인을 해야 했고, 포기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결국 팩트 제품 하나만으로 3년 만에 제로에서 1000억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브랜드의 재정상황이나 유통상황, 그리고 타깃에 맞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브랜드의 상황을 잘 이해한 디자인으로 성과를 냈다는 것을 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제가 마케팅업무를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판단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S/S, F/W시즌에 맞추어 6개월마다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을 탄생 시켜야했고, 디자인에 브랜드 철학도 담아야했죠. 뿐만 아니라 시즌 리미티드 에디션까지 출시하다보니 정말 3년간 바쁘게 뛰어다녔구요. 그래도 다행히 매출이 계속 상승했고, 홈쇼핑에서 쇼호스트로 활약해주신 견미리씨 덕분에 ‘견미리 팩트’라는 별명까지 생기면서 매 시즌마다 완판행진을 이어갔습니다. 매 시즌마다 물량이 부족해서 애를 먹었으니까요. 디자인에 대한 고객들의 평가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시즌별 용기를 모으시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저작권자 © THE K BEAUTY SCIEN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