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트렌드를 읽는 법’ <2> ⑦ 출판사 편집자

김진형 아카넷 교양팀 편집장
김진형 아카넷 교양팀 편집장

우리 집에는 ‘2007년 4월 24일의 세상’, ‘2010년 5월 3일의 세상’이란 제목의 스크랩북 두 권이 있다. 두 아이가 태어났을 때 만들어놓은 것으로, 논조의 정치적 지향을 막론하고 아이가 태어난 그날의 신문을 종류별로 스크랩한 것이다. 자신들이 놓여 있는 세상의 정황을, 언젠가 저 스크랩북이 어느 정도 말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리하여 기어코 저 아이들이 세상을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1.

나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단행본 편집자다. 아침에 출근하면 그날의 뉴스부터 살펴본다. 짧게는 커피 한잔 마시는 십여 분, 길게는 삼십 분 남짓, 어떤 날은 기사 제목들만 챙기고 어떤 날은 기사와 칼럼을 메모장에 스크랩해두기도 한다. 회사로 배달되어온 ‘종이’ 신문을 훑어본다. 기사의 배치에는 데스크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신문에 실린 광고의 면면은 언론의 쇠락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주요 포털 사이트가 보여주는 뉴스피드에는 노골적인 욕망이 드러나기도 한다. 

언론 매체 혹은 포털 사이트에서 세상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그래서 최근에는 뉴스레터 서비스 ‘뉴닉Newneek’을 구독한다. ‘뉴닉’은 주 3회(월, 수, 금) 뉴스레터를 메일로 보내온다. 국내외의 주요 이슈부터 뉴스의 행간에 놓여 있는 사회 전반의 문제를 짚는다. 구어체와 이모티콘으로 구현된 뉴스는 쉽고 재밌고 유익하다. 전통적인 신문 매체도 ‘뉴닉’과 비슷한 형태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시도하지만, 아직까지는 대부분 실패한 듯하다. 문제는 깊이가 아니라 감각이다. 감각의 속도에서 뒤쳐지는 느낌이다. 

시간 날 때마다 SNS의 타임라인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SNS라는 신세계를 극적으로 확장했던 트위터는 한동안 페이스북의 기세에 밀려 나는 듯 보이더니 이제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세상이 되었다. 페이스북은 쇠락하는 듯 보이나 트위터는 여전히 건재하다. 텍스트의 자리를 이미지가 대체한다. 이미지는 나의 또 다른 페르소나Persona를 구축해내는 강력한 수단이다. 모름지기 ‘부캐’의 시대가 아닌가. 인스타그램은 ‘본캐’가 ‘부캐’로 분화하는 최적의 플랫폼이다. 

한편 인스타그램은 스마트폰 디바이스를 고집하는 까닭에 최소한의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최소한의 진입장벽은 오히려 사용자에게 소속감과 공감력을 극대화시킨다. 2020년 2월 출시된 음성언어 기반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Clubhouse는 ‘초대장’과 ‘아이폰’이라는 진입장벽을 통과해야만 참여할 수 있다. 그 진입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면 소위 셀럽들과 직접 소통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클럽하우스는 ‘셀럽’ 혹은 ‘인싸’ 들의 아지트다. 출판사들도 클럽하우스를 주목한다. 저자가 자신의 책을 낭독하기도 하고 독자와 직접 소통하기도 한다. 연신내에 위치한 니은서점은 클럽하우스에서 오뒷세이아 독서모임을 진행하기도 하고 추천 도서를 소개하기도 한다. 

편집자들은 SNS에서 출간기획과 홍보를 위한 실제적인 정보를 얻기도 한다. SNS에서의 광고 효과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럼에도 다른 매체에 비하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인 광고 효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선 평일과 주말의 유입률, 일상성과 이슈의 간극, 무엇보다 나의 타임라인은 사심과 편향의 목록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SNS로 트렌드를 읽으려면 나의 타임라인이 아니라 그 플랫폼을 지배하는 키워드를 추적해야 한다. 

2.

내가 근무했던 출판사에서는 팀별로 한 달에 한 번씩 트렌드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다. 책, 음식, 패션, 핫플레이스, 영화, 방송 프로그램 등의 다양한 사례를 조사하거나 성별, 세대별, 직군별 트렌드 흐름을 공유하고, 이를 기획회의와 마케팅회의에서 활용했다. 부지런한 편집자와 마케터는 모임을 만들어 연말마다 몇몇 기관에서 발표하는 메가트렌드 전망을 스터디하곤 했다. 그리고 나는 시대의 속도를 따라잡는 동료나 후배들을 보면서 내내 감탄하곤 했다.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 분야는 다르겠지만, 인문교양서나 산문집을 만드는 나 같은 편집자들은 대체로 트렌드에 둔감하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과연 트렌드란 무엇인가. 

트렌드는 흔히 ‘유행’ ‘경향’ 등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사전적 정의와 사회과학적 맥락에선 좀 더 깊은 함의를 갖는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트렌드는 “사상이나 행동 또는 어떤 현상에서 나타나는 일정한 방향”이다. 미래학자 페이스 팝콘은 유행과 트렌드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일시적 유행이란 시작은 화려하지만 곧 스러져버리는 것으로서, 순식간에 돈을 벌고 도망가기 위한 민첩한 속임수와 같은 것이다. (…) 트렌드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도록’ 이끄는 원동력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트렌드란 크고 광범위하다. (…) 트렌드는 바위처럼 꿋꿋하다. 그리고 평균 10년 이상 지속된다.”(《클릭! 미래 속으로》, 21세기북스, 1999) 다시 말하자면, 트렌드는 잠시 유행하다 사라지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숱한 유행들의 배후에서 작동하고 있는 ‘일정한 방향성’이다. 

3.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펴내는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는 연말마다 ‘출판계 키워드 30’을 발표하는데 2020년은 다음과 같다. 

_‘기획회의’ 523호(2020. 11. 5)
_‘기획회의’ 523호(2020. 11. 5)

도서정가제 / 비대면 시대, 출판을 통한 연결은 가능한가 / 도서 IP의 영상화 / SF와 디스토피아 / 서점을 장악한 코로나 관련서 / 혐오를 혐오한다 / 기후변화와 제로웨이스트 / 여성서사를 주목하라 / 자본주의 샤머니즘 / 글쓰기의 윤리, 문학상의 윤리 / 규모화되는 동네책방 / 출판 관련 메일링 서비스의 등장과 인기 / 북페이백과 희망도서바로대출제 / 글쓰기라는 산업 / 조국 흑서 VS 조국 백서 / 플랫폼 노동, 공유경제 사례 분석 도서 / 숏폼 콘텐츠 / 여가부의 성교육서 ‘금서’ 지정 / 퀴어 장르의 약진 / 과학책 판매량 역대 최다 / 2020 노벨 문학상 루이즈 글릭 / 노화·죽음의 책 증가 / 코로나 블루 / 국내 여행도 괜찮아 / 작가 매니지먼트 시장 / 감정에 대한 재정의 / 코로나19 현장에서 / 전자책 활성화 / 출판사 유튜브 활성화 / 고전의 재발견

코로나, 기후변화, 디스토피아, 공유경제, 성평등, 혐오, 과학교양, 플랫폼, 노령화, 우울증… 출판계 키워드를 살펴보면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이슈와 그 이면의 흐름이 보인다. 출판은 당장의 이슈를 보다 긴 호흡으로 대응한다. 이는 물리적인 불가피함 때문이기도 하다. 쓰고 편집하고 제작하고 유통하는 사이에 이슈의 상당수는 소멸한다(예를 들면, ‘종이’ 백과사전은 사라지고 있다. 종이책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 지식은 옛것이 되고 만다. <브리테니커>는 2010년 이후 신판을 출간하지 않는다). 제작과 유통 기간을 간소화할 수 있는 전자책을 고려하더라도,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 전에 시의성을 상실하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따라서 편집자는 신중하다. 소멸되지 않는 트렌드가 무엇인지 숙고한다. 쉬이 소멸되는 것은 트렌드가 아니다. 

출간기획은 무엇으로부터 시작하는가? SNS에서 저자나 아이템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장의 흐름에 조응하거나 트렌드를 한껏 반영하는 것으로부터 수많은 책이 만들어진다. 또 다른 어떤 책들은 온갖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굳건한 정신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으로 그 사명을 다한다. 트렌드는 본질을 훼손할 수 없는 까닭이다. 따라서 편집자는 날마다 뉴스를 읽으며 지금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피겠지만, 그 이전에 그 정황과 맥락을 읽어낼 수 있는 ‘사상의 지도’를 가진 자들이어야 한다. 편집자는 트렌드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늘상 고민하겠지만, 동시에 트렌드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텍스트를 열망하는 자들이기도 하다. 사상의 지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시대적 조류에 휩쓸려 길을 잃지 않으며, 견고하게 벼려진 텍스트가 트렌드의 감각을 입을 때 독자를 한껏 매혹하는 책이 될 수 있다. 편집자라면 사상의 지도를 가진 자라야 한다.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원고가, 내가 만들려고 하는 책이 어떤 사상적 흐름과 역사적 맥락 속에 놓여 있는지를 단숨에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4.

무릇 편집자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트렌드를 해석하는 사람이다. 트렌드의 배후에 있는 세상의 열망과 결여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이 열망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의 허무에 대해 잘 모른다. 현대인의 삶이 대체로 그렇다. 사사로운 욕망에만 부지런할 뿐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거나 무언가를 열망한다는 것 자체를 진즉에 포기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얻지 못할 것이므로, 그저 ‘존버’의 세상이니까.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우리의 웃음은 기쁨에 도달하지 못한다. 통증 없는 슬픔만 전시할 뿐, 존재의 결여에 대해서 무감각하다. 우울하지만 애도하지는 않는 삶, 그래야만 세상을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해서 무사해 보이는 건, SNS에서나 존재하는 우리의 또 다른 페르소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편집자는 때로 정색하며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무사한지, 우리의 삶이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편집자는 ‘지금 여기’로부터 출발하여 본질로 향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무지의 문제점은 다름 아니라 아름답지도 훌륭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은 자가, 그러한 자기에게 만족하는 것이지요. 자기에게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을 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플라톤, 『향연』, 숲, 2012) 자신의 결여를 직면하지 못한 자들은 그것을 제대로 욕망하지 못한다. 따라서 편집자는 독자가 스스로의 결여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질문한다. 그리고 그가 존재의 열망에 이를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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