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

 

[더케이뷰티사이언스] 그동안 ‘화장품’이 억울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다.

이 책은 사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를 꺼냈다. 그러니까 옷이 인체에 유해 할 수도 있으니 옷에도 화장품처럼 ‘전 성분 표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옷 한 벌에 때로는 50가지 이상의 화학 물질이 들어가는데도 옷의 라벨에는 주요 옷감을 제외한 나머지 화학 성분들은 전혀 표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규제도 없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최소 4만 가지 화학 물질이 상업적으로 사용되지만, 그중 인간과 동물에 안전하다고 확인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29쪽)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헤더 스테이플턴(Heather Stapleton) 교수는 “피부나 신체에 직접 닿는 제품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에 대해 더 투명한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암, 천식 및 기타 모든 질병의 원인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91쪽)라고 꼬집는다.

저자 올든 위커(Alden Wicker)는 ‘에코 컬트(Eco Cult)’의 설립자이자 편집장으로 윤리적이고 독성 없는 패션, 뷰티, 생활용품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다. 저자는 “이 책을 쓴 것은 우리가 매일 입는 옷에 숨겨진 화학물질에 관해 알리고 싶어서다”(13쪽)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유독한 옷이 어떻게 서서히 우리 몸을 망가뜨리는지를 탐구한다. 먹을 것들의 성분은 어떻게 되는지, 유기농인지 꼼꼼히 따지면서 옷의 성분에 대해서는 경각심이 부족했던 우리에게 묻는다. “옷은 안전한가요?”

저자는 “패션 제품이 우리가 취급 허가증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재 중 가장 복잡하고 다층적인 화학적 프로필을 지니고 있다. 옷이나 액세서리를 만들고 가공하고, 직조하고, 염색하고, 마무리하고 또 조립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이 연쇄적 공정의 각 단계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우리가 잠을 잘 때나 땀을 흘릴 때, 살아 있는 매일 매 순간 사용하는 물건에 화학 잔류물을 남길 수 있다”(28~29쪽)고 본다. 실제 옷은 생산부터 배송에 이르는 전과정에서 온갖 유해물질을 포함할 수도 있다. 원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염료와 마감 처리가 문제일 수도 있다. 즉, 미세 플라스틱이 날리는 청바지, 사용 금지된 아조염료가 들어 있는 스웨터 등은 우리 몸속에 들어와 내분비 교란, 통증, 알레르기, 불임, 심지어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

저자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과학자, 의사, 패션업계 전문가를 만난다. 인도의 의류공장까지 취재했다. 저자가 패션의 유해성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19년 항공사 승무원들이 새 유니폼을 입은 뒤 단체로 두드러기, 발진, 천식, 탈모 등을 겪고 집단 소송을 제기한 사건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주요 피해자로 거론되는 ‘항공기 승무원 유니폼’을 예외적인 사례만으로 치부해서도 안될 일이다. “약 20퍼센트의 사람들에게서 화학물질 민감증이 발견되기 때문이다.”(279쪽) 10명 중 2명 정도니까 적지 않은 수치다. 최근에는 “인체 내 보이지 않는 합성 화학물의 세계를 지칭하는 ‘휴먼 톡솜(human toxome)’라는 단어가 등장”(31쪽)했다. 더구나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염색과 마감 처리 시설에서 시작된 일은 공장 뒤뜰에 버려진 폐기물에서 끝나지 않고 옷장과 우리의 피부, 우리가 사용하는 세탁기에까지 도달하고”(254쪽) 있다.

과불화화합물(일부 기업은 ‘과불화탄소’라는 용어로 쓴다) 문제도 다룬다. 1940년대 발명된 PFOA(Perfluorooctanoic acid, 과불화옥탄산)는 테플론 코팅 프라이팬을 비롯해 다양한 생활용품에 사용되었다. 2019년 영화 ‘다크 워터스(Dark Waters)’는 PFOA에 노출되면 각종 질병에 고통받는다고 고발한다. 그런데 패션 산업은 과불화화합물로 처리한 옷감은 방수, 방오 기능이 탁월하다는 이유로 등산화부터 스키복, 수영복까지 온갖 것에 쓴다고 한다. “사람들의 부주의와 완전히 분해되지 않는 화학적 특성이 결합되면서 ‘영구적 화학물질’로 불리는 PFOA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인 99.7퍼센트와 남극 동물의 혈액은 물론, 지구 곳곳에 떨어지는 빗물에도 흐르고 있다고 한다.”(133쪽)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대상인 ‘하이퍼오브젝트(Hyperobject, 초객체)’ 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의 광대한 연결망에 놓여있는 것이다.(354쪽) 과불화화합물은 5000종 이상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안전한 용량’이면 괜찮을까? “워싱턴대학에서 보내 온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화학물질은 자극을 유발할 수 있는 수준보다 적게 들어 있었다. 하지만 각 염료의 농도가 더해지면 단독으로 들어 있을 때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가 효과(addictive effect)’가 나타날 수 있고, 인사트리부틸(TBP) 같은 물질은 피부 장벽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섬유업계에서는 각각의 화학물질 단독으로 사용한도를 정해 놓았다. 개별 물질이 권장 한도 미만으로 들어 있다면, 여러 물질을 혼합한 결과 유해성이 해당 한도를 초과하더라도 그들 기준으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사용량에 따라 독성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 업계의 통념이다. 그러다 보니 각 화학물질의 안전 한도를 확인하고 사용량을 한도 아래로 유지하는 술수가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지침에 따르면 적어도 테스트한 화학물질과 관련해서 유니폼은 완벽하게 괜찮아 보인다”(50쪽)고 저자는 주장한다.

옷은 먹는게 아니라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할수도 있다. 듀크대학 연구팀이 어린 자녀가 있는 124가구의 집 먼지를 분석했더니, 모든 집에서 아조 분산염료가 발견되었다. 합성섬유 염색에 쓰이는 아조 분산염료는 피부 박테리아와 접촉해 아민이라는 화합물을 방출하는데, 아민은 암을 유발하고 인간 세포에 유전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염료가 집 먼지에 존재한다면, 우리는 옷을 먹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옷에서 떨어져 나와 집 안 곳곳에 존재하는 이 유독 성분을 매일 들이마시고 삼킨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바닥을 기어다니고 손을 입에 집어넣으면서 성인의 최대 20배에 달하는 먼지를 흡입한다. “아조염료는 일반적으로 모든 유형의 직물에 사용된다. 산업화 시대에 등장한 놀라운 기술로, 매년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990만 톤의 산업용 염료 착색제 중 70퍼센트를 차지하며, 최신 패션업계 어디에서나 쓰이는 값싼 성분이다. 그중에 특히 합성섬유 염색에 사용되는 아조 분산염료가 있다. 폴리에스테르의 염색을 위해 수성 용액에 분산된 상태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70쪽)

그럼 어떤 옷을 사고,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저자는 △오코텍스 등 제3자 인증라벨 확인 △폴리(poly)로 시작하는 재료를 피하고 천연소재 이용 △발수성, 얼룩 방지, 구김 방지, 손쉬운 관리 등의 기능성 소재나 채도가 높은 색, 지나치게 밝은 색, 형광색 기피 △액체 이산화탄소 사용 드라이클리닝 이용 △옷을 입기 전에 무향 세제로 세탁하라고 조언한다.

이쯤되면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만 자리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화학물질 없이 살기 힘든 시대다. 화학물질을 어떻게 잘 관리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그 고민의 결과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마감재와 염료, 플라스틱을 둘러싼 제각각의 논란이 아니라 자가면역질환, 불임, 만성 중독과의 전쟁이라는 상호 연결되고 총체적인 시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면,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는 지구 환경의 파괴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건강 문제에도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자녀들과 손주들이 이 시대를 되돌아보며 우리가 입어 왔던 옷에 대해 적절한 경이로움과 공포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326쪽)

당근((구)당근마켓)의 콘텐츠에디터이자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쓴 이소연 작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가장 트렌디한 옷을 입는 패셔니스타가 누구인지, 어떤 쇼핑몰에서 구매해야 가장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지 알고 있지만 올림픽 경기장 수영장에 떨어진 물 한 방울만큼 아주 적은 양의 내분비교란물질이 우리 몸에 영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환영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쇼핑을 즐기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내 피부가 민감해서, 화장품이 내 피부에 안 맞아서라고만 생각한 소비자는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억울했던 대다수 '화장품'을 위해서라도.

[올든 위커 지음/김은령 옮김/부키/404쪽/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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