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트렌드를 읽는 법’ <4> ⑪ 화장품연구원

정세규 (주)인코스팜 부설연구소, 이사
정세규 (주)인코스팜 부설연구소, 이사
화장품에 사용되는 다양한 성분 중에서 특히 피부나 피부에 존재하는 미생물 등에 대한 생리활성을 가진 원료를 연구, 개발하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연구원이다. 공과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석사 과정을 통해 생물공학을 공부했다. 세계화장품학회(IFSCC)에 참가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아 피부과학교실에서 피부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20여년 이상을 피부와 관련된 기초 연구와 원료 개발을 하고 있다.

화장품과 피부 과학

흔히 화장품과 관련된 연구를 한다고 하면 화장품이나 피부에 대해 많이 알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생리활성 원료를 연구하는 연구원이 화장품이나 피부 자체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생물이나 동물세포 배양, 세포 내의 다양한 신호 전달 체계, 유전자와 단백질 발현 조절 등등 세포 생물학이나 분자 생물학 등에 대해 더 많이 공부를 하게 되고, 주로 다루는 원료의 종류에 따라 줄기세포, 천연물, 펩타이드, 저분자 화합물 등등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공부를 합니다. 굳이 피부와의 접점을 찾자면, 피부에서 얻어낸 다양한 인체 유래 세포를 배양해서 실험에 사용하거나, 삼차원 배양이라는 난이도가 비교적 높은 실험 기법을 통해 실제 피부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인공 피부 조직을 만들어서 사용한다는 점 등이겠지요. 피부 조직의 구조와 특성 등을 분석하기 위해 다른 연구실에서 수행하지 않는 조직학적 분석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도 조금 다른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양한 염색 시약을 이용해서, 조직의 전체적인 상태나, 피부 특히 진피의 콜라겐 분포 상태 등을 파악하고, 항원-항체 반응에 기반한 면역조직화학염색법 등을 통해 특정 단백질이나 지질 성분 등이 어느 부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지와 얼마나 만들어지는지를 측정하는 실험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피부에 대한 지식 외에 화장품 제형에 대한 정보 또한, 연구원 개인이 적극적으로 공부를 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깊은 수준의 지식을 얻기는 쉽지 않은 듯 합니다. 특히 화장품 제형에 대한 지식이나 노하우는 책이나 논문으로 익힐 수 있는 형식지explicit knowledge의 성격보다, 학습과 경험을 통하여 습득하면서 언어나 문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암묵지tacit knowledge에 가까운 특성이 있어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동료라도 쉽게 익히기 어려운 특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화장품 원료를 개발하는 연구원이라고 해도 피부나 화장품 자체에 대해서는 일반인에 비해 조금 깊은 수준의 지식을 가지는 정도에 머무르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원료를 개발하고 싶다면, 피부에 대한 공부와 화장품 제형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겠지요. 

 

트렌드를 읽는 방법?

헨리 메이슨Henry Mason이 쓴 『Trend-Driven Innovation:Beat Accelerating Customer Expectations(2015, Wiley Publishing)』을 보면, “트렌드란 개개인의 기본적인 욕구나 욕망이 사람들의 행동이나 태도, 기대로 실체화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트렌드의 핵심 요소로는 각 개인의 기초적인 욕구(사회적인 지위, 인간적인 관계 형성과 유지, 애정, 즐거움, 자유 등)와 변화의 요인(오랜 기간 동안 크게 벌어지는 변화 과정을 표현한 전환shifts과 비교적 짧은 시간에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촉발triggers로 나누고 있지요), 그리고 개개인의 욕구를 현실화하고 기대를 부응하게 만들어주는 혁신innovation이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화장품 산업에 적용해 보자면,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는 개개인의 욕구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평균 연령으로 인한 고령화 인구의 확대와 같은 전환 요소, 과거 영화나 텔레비전과 같이 비교적 통일된 미디어를 통해 미의 기준이 획일적으로 제시되던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플랫폼과 SNS 등을 통해 아주 다양한 아름다움이 제시되고 있는 촉발 요소 등이 트렌드에 반영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이러한 특징을 생각해볼 때 색조 화장품을 제외한다면 일반 화장품 산업은 생각보다 트렌디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트렌드를 뒷받침하는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 화장품 산업, 특히 원료를 개발하는 사람들의 주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료를 연구, 개발하기 위한 대부분의 실험 방법은 생화학이나 생물학 등의 연구 분야에서 개발되거나 이미 사용하고 있는 것을 적용하게 됩니다. 소재 자체에 경우에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항상 사용할 수 있는 일상적인 제품에 적용된다는 점에서 작용 기전이나 안전성 등에서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특성을 감안한다면, 사회의 트렌드에 대해 연구원의 입장에서 해당 키워드를 화장품 원료 개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트렌디한 키워드를 어떻게 실험적으로 구현하고 이를 원료 개발에 적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최근 몇 년간 큰 문제로 제시되어 왔던 미세먼지 이슈에 대해 미세먼지가 피부 내부에 미치는 악영향을 낮출 수 있는 소재의 개발, 미세먼지가 피부 표면에 달라붙는 것을 막거나 이미 부착된 미세먼지를 깨끗하게 닦아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성분의 개발과 이러한 효과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나 그림 등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 등이 트렌드를 바탕으로 한 기술 개발의 예가 될 수 있겠지요. 

필자의 박사 과정 지도 교수님은 진료가 없는 시간에 항상 연구실에서 
피부 연구 분야의 주요 학술지인 ‘Journal of Investigative Dermatology’를 
읽고 계셨습니다. 관심이 있는 논문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에 적용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화장품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트렌드에 적용하는 연구, 개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세라마이드를 키워드로 한 피부 장벽, 무한히 증식하고 여러 다른 종류의 세포로 바뀔 수 있는 줄기 세포 기술, 이전에 비해 유전자 조작의 용이성과 정확성을 비약적으로 높인 CRISPR/Cas 기술, 과거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피부 표면의 수많은 미생물의 기능과 역할에 초점을 맞춘 피부 미생물균총, 피부 표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단백질, 지질 뿐만 아니라 유전자의 미세한 조각까지 분석할 수 있는 강력한 분석 장비와 기법의 도입,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후성 유전학 인자의 조절 기전 등 다양한 연구 기법이나 이론이 꾸준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인 혁신을 화장품에 적용할 수 있는 일종의 중개 연구translational research와 함께, 이를 트렌드로 바꿀 수 있는 마케팅 전략 등에 대해서도 꾸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화장품 산업이 단순히 정밀화학이나 바이오 기술 기반의 제조 산업에서 IT, NT 기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 결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복합 산업이 되어간다는 점에서 자신의 연구 분야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기술 흐름을 파악하는 것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화장품 원료를 연구 개발하는 연구원으로서 필자는 트렌드보다는 기술적인 혁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신 기술을 파악하고, 이를 화장품에 적용하는 연구원으로서의 역할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은 잘 쓰여진 논문을 찾아서 읽고, 다른 사람들이 발표하는 연구 결과를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필자의 박사 과정 지도 교수님은 진료가 없는 시간에 항상 연구실에서 피부 연구 분야의 주요 학술지인 Journal of Investigative Dermatology를 읽고 계셨습니다. 관심이 있는 논문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에 적용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에 비하면 피부 연구와 화장품을 주제로 하는 전문 학술지(논문집)와 학회의 숫자가 크게 증가되어 왔고, 덕분에 관련된 모든 논문을 찾아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4~5종의 학술지(‘J invest Dermatol’, ‘J Cosmet Dermatol’, ’Exp Dermatol’, ‘Cosmetics’ etc)의 목차Table of Contents는 꾸준히 읽어보고 있습니다. 주요 학술지 출판사에서는 무료로 목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니, 이를 활용하는 것이 좋겠지요. 관련된 책을 읽고, 학술대회와 전시회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습니다. 피부 연구와 관련된 국제적인 학술 대회인 미국피부연구학회SID와 일본피부연구학회JSID는 매년 가급적 참석하고자 노력해왔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 외에도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과 교류하면서 협업이나 공동 연구의 가능성을 만들어 내려고 해왔습니다. 특히 관련된 연구 분야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이 한 장소에 모여 일주일 가량 연구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고든 컨퍼런스Gordon Conference는 최신 연구의 흐름 뿐만 아니라, 동료 연구자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지닌 학술 대회라고 생각됩니다. 인코스메틱스In cosmetics와 같은 화장품 원료 전문 전시회나 IFSCC와 같은 화장품 학회 등에 참석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필자가 일하는 회사가 개발한 원료나 기술을 소개할 수 있는 발표를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어 왔습니다. 덧붙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위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입니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위의 동료나 연구자들이 어떤 분야의 연구를 어떤 도구를 이용해서 하고 있는지 알아보면서 연구의 시야를 넓히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학술지 이외에 전문 기술지를 읽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화장품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평소 화장품 매장에 방문해보고, 홈쇼핑에서 화장품 판매 방송을 기회가 될 때마다 보는 것도 아이디어를 얻는데 도움이 됩니다.

 

맺음말

K팝, K드라마 등 한류 트렌드와 지속적인 연구 개발의 성과에 힘입어 한동안 폭발적으로 확대되어 온 국내 화장품 산업은 중국 시장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이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큰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K뷰티의 명성을 회복하고, 명실상부한 전세계적인 트렌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꾸준한 혁신을 바탕으로 한 신제품, 신규 원료 개발 등이 더욱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연구원과 개발자 분들께서 더 뛰어난 기술과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좋은 자료와 통찰력을 얻는데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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