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케이뷰티사이언스]  "철컥~~철컥~철컥~철컥”

지난 1월 16일 낮. 일본 최대 국제 전시장인 도쿄 빅사이트(Tokyo Big sight) 동4홀 출입구 인근에서는 대형 스테이플러를 찍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붉은색 바탕에 ‘売約済(매약제)’라는 흰글씨가 쓰인 얇은 명패를 부스 현황판에 붙이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이 소리는 2025년 부스 판매를 확정지었다고 알리는 축하 팡파르인 셈이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스크린만한 한 쪽 벽에는 수백 개의 붉은색 명패들로 가득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수 십 미터 거리에서도 잘 보였다. 선거 결과를 보는듯했다. 살짝 긴장감도 자아냈다. 이곳은 전시회 분위기를 사로잡는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이로 하여금 내년을 생각하게 했다. 아날로그 방식이어도 그 역할을 충분하게 해냈다.

일본 최대 종합 화장품·뷰티 전문 B2B 전시회

지난 1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코스메 위크 도쿄 2024(COSME Week TOKYO 2024)’ 전시회는 그렇게 시작했다. (더케이뷰티사이언스는 이번 전시회에서 한국 화장품 전문미디어 가운데 유일하게  취재 초청을 받았다.) 도쿄 빅사이트는 우리나라전시장으로 치면 위상은 코엑스(COEX)인데, 거리로는 서울 중심지에서 볼때 킨텍스(KINTEX) 정도 되는 아리아케(東京都 江東区 有明)에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서 RX Japan은 일본 최대 종합 화장품·뷰티 전문 B2B 전시회인 ‘코스메 위크’를 개최하고 있다. RX(Reed Exhibitions) 그룹은 42개 산업 부문에 걸쳐 22개국에서 약 400개 이벤트를 개최한다.

올해로 14회째를 맞이한 이번 전시회에는 750개사가 참가했다. 2023년 626개사 보다 약 20% 늘었다. 올해 한국 기업은 120여개사가 부스를 마련했다. 2023년 81개사에서 약 48%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 UAE, 이스라엘, 이탈리아, 인도, 캐나다. 캄보디아, 싱가폴, 태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 말레이시아, 요르단, 한국, 홍콩, 대만, 중국, 덴마크 등 20개국이다. 참관객은 행사 첫날인 1월 17일 1만792명에 이어 1월 18일 1만1617명, 1월 19일 1만1561명으로 모두 3만3970명이었다.

전시장은 도쿄 빅사이트 동4~7홀에 마련됐다. 전시회 구성은 △COSME TOKYO(12회) COSME Tech TOKYO(14회) △INNER BEAUTY TOKYO(7회) △ESTHEC JAPAN(4회) △COSMETICS MARKETING EXPO(3회) △HAIR EXPO TOKYO(2회) 등 6개 세션으로 구분되었다. 화장품 브랜드, OEM·ODM, 소재, 이너뷰티, 에스테틱, 헤어케어, 마케팅 등 화장품·뷰티 산업을 한 자리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일본 대학의 최신 연구결과를 모은 ‘아카데믹 포럼(ACADEMIC FORUM)’도 마련됐다. 고난 대학(甲南大学), 기후 대학(岐阜大学), 긴키대학(近畿大学), 코가큐인 대학(工学院大学), 신슈 대학(信州大学) 등 10여개 대학이 참여했다.

전시회에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NMN(Nicotinamide mononucleotide), 나노(Nano)를 앞세운 홍보물이 많았다. 홀리스틱(Holistic),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을 표방한 유기농 화장품 기업, 한약재와 한방(漢方) 처방을 화장품에 적용한 제품, 쌀을 발효한 제품도  눈길을 끌었다. 홍보물에 ‘일본제(日本製)’나 ‘완전 일본제(完全 日本製)’라는 표현도 보였다. 간혹 QR코드를 활용한 기업도 있었다. QR코드를 찍으면 제품 소개서를 내려받을 수 있다. 다만 일본어 버전이었다. 뷰티테크 기업은 많지 않아 보였지만, CES 수상기업도 전시회에 나왔다. 건축 유리 전문 기업 AGC는 지난해 11월 디스플레이 거울 ‘Mirroria’를 출시하고, 홍보에 나섰다. 

소재 분야에서는 NMN, 엑소좀, CBD(카나비디올) 등과 친유성 물질의 나노에멀젼(nano-emulsions, 10~18mm)으로 기존 제형을 개선한 원료 등이 선보였다. 안티-에이징 기업은 줄기세포배양액 원료로 ‘RemyStem’을, 자치의과대학(自治医科大学, Jichi Medical University)의 벤처기업인 TeleBio는 ‘세포 분비체(secretome)를 활용한 화장품 원료 ISOLⓇ(INCI Human Adipose Derived Stem Cell Conditioned Media Extract) 등을 소개했다. 홀스타인(holstein)은 사과 엑소좀 시리즈를,  세포 농업(細胞農業)을 슬로건으로 한 인터그리컬쳐(IntegriCulture)는 계란을 세포배양한 스킨케어 원료인 ‘CELLAMENTⓇ’을, 제톡(ZETTOC)과 퍼멘스테이션(FERMENSTATION)은 벚꽃을 발효한 소재를 각각 출시했다.

OEM·ODM 분야 격전

OEM·ODM 분야는 격전지였다. OBM(Original Brand Manufacturer)이나 JDM(Joint Development Manufacturer, 합작 개발 방식)을 넘어 OSM(Original Solution Manufacturing)을 표방하는 제조기업도 나왔다. 138년 역사를 가진 코스메텍 재팬(COSMETEC JAPAN)은 이번 전시회에 처음으로 OSM을 들고나왔다. 한국에서는 코스메카코리아가 OGM(Original Global standard and Good Manufacturing)을 내세우고 있다. OGM은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에 부합하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다양한 판매 국가의 유통구조 분석부터 상품 기획·제품 개발·법적 규제 검토·생산·품질 관리·출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대해 총체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토털 서비스다.

이번 OEM·ODM 분야 전시회에서는 글로벌 화장품 연구·개발·생산(ODM) 기업 코스맥스가 눈에 띄었다. 2022년 설립된 코스맥스재팬(법인장 어재선)은 '아름다움의 과학(The Science of Beauty)'을 콘셉트로 약 108㎡ 규모의 부스를 운영하고, △7개 테마의 K-트렌드 △코스맥스 자체 기술 브랜딩 △2024년 뷰티 트렌드를 소개했다. 두 번째 참가한 이번 전시회에서 620개 고객사가 방문했다. 코스맥스 부스에서는 방문객이 줄을 섰고, 코스맥스 관계자가 명함을 확인한 후 입장을 시켰다. 사진 촬영도 제한됐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전시회에서는 신제품 등 보안 때문에 고객사로부터 사전 예약을 받아 현장에서 미팅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스맥스재팬은 2025년 말 도쿄 인근에 현지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인디브랜드 관심 높아”

패키징 분야는 친환경 콘셉트를 제시한 기업이 많았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해안 50km 이내에 회수된 플라스틱으로 파우치 등을 만드는 사회적기업도 보였다. 불만도 나왔다. 패키징 전문기업의 관계자는 “한국 기업의 참가가 늘어나면서 그만큼 일본 기업 부스가 줄어들어 전시회를 보는 재미가 사라졌다는 일본 바이어들의 말을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 기업의 제품이 비슷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비즈니스를 펼치는 A 기업 대표는 “일본은 중소기업이나 인디브랜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번에 참가한 일부 한국 제품은 비슷한 컨셉트와 제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로 2회를 맞이한 ‘헤어 엑스포 도쿄(HAIR EXPO TOKYO)’와 3회째인 ‘코스메틱 마케팅 엑스포(COSMETICS MARKETING EXPO, C-MEX)’도 눈길을 끌었다. 한 기업 관계자는 “‘헤어’ 분야만으로 독립적인 전시회를 연다는게 부럽지만, ‘기술’ 세미나가 가능하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코스메틱 마케팅 엑스포’에는 인스타그램, 틱톡 서비스를 대행하는 마케팅 회사가 많았다. 설문조사, 동영상 제작, 매장 판촉대 디자인, SNS 프로모션, 고객 데이터 분석 기업 뿐만 아니라 샘플 배포 전문 기업, 출시전 제품 모니터링 서비스 기업이 선보였다.

이 전시회는 새해에 출시하는 신제품을 빨리 만날 수 있다. ‘용해성 마이크로구조체’로 유명한 라파스 일본법인은 오는 2월 출시를 앞둔 마이크로니들 눈가 패치 ‘VITA KMAP FOR EYE'와 마이크로니들 입술 패치 ‘CHU LIP'를 소개했다. 이 제품은 일본 한정판(Japan Limited Edition)이다. 안티-에이징(ANTI-AGEING) 기업은 ‘Pentide-NMN’을 들고 왔다. 주최측에 따르면,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하는 신제품과 신기술은 모두 300여건이 넘는다.

민텔은 이 전시회에서 주요 제품을 선정해 소개했다. 민텔은 △Codex Antü △Trust Rx △Herbivore △Meloway △Avon Farm Rx Super Greens △Fekkai Blonde Ex △Easy Glow △TooD △TIR TIR △Peter Thomas Roth Peptide 21 △19/99 △Le Domaine 등을 전시했다.

세미나는 3일간 60여개 주제가 열렸다. 기조 강연은 폴라오르비스 홀딩스 요코테 요시카즈 대표, 아테니아 하루타 코우지 사업전략본부장, I-STYLE 야마다 메유미 이사 등이 맡았다. Violet의 MANAE 부지점장은 ‘한국의 헤어&메이크업 트렌드’를, 민텔 재팬은 ‘Genderless Beauty’를 각각 발표했다. 세미나는 일본어로 진행됐다. 세미나 사진 촬영은 사전 허락을 받은 미디어만 가능했다. 참관객은 사진을 찍을수 없다.

 

‘한글’도 홍보 전략이다

전시회 홍보물이나 부스 인테리어는 일본어로 채워져 있었다. 한국 기업인지 알기 힘든 부스도 보였다. 그 틈새에서 부스에 한글 ‘이지엔’을 새겨 넣은 동성제약의 감각이 돋보였다. 동성제약의 일본 법인은 브랜드 '이지엔'과 '랑스'를 집중 홍보했다. '이지엔'은 셀프 헤어 스타일링 브랜드로 유니크한 푸딩 제형과 MZ 취향을 저격한 컬러들로 선보이는 염색약과 손상모를 위한 헤어케어 제품으로 글로벌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코슈메티컬 브랜드 '랑스'는 미백 및 주름 기능성 스킨케어 제품이다. 동성제약은 까다롭다고 알려진 일본 후생노동성 의약외품 외국 제조업자 인증을 취득해 염모제를 수출하고 있으며 현재, 개별 염색 및 탈색약 제품 품목 허가 승인을 마무리하고 있다. 동성제약 관계자는 “과거 전시회에서는 홍보물에 일본어만 사용해야 하는 분위기였지만 최근에는 K팝, K드라마 등의 긍정적인 영향으로 한글 사용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RX Japan 관계자는 “최근 일본 흐름을 잘 파악한 적절한 홍보였다”고 평가했다.

한국 기업은 한국 스킨케어 브랜드 ‘OFBASE’, 메이크업 부자재 OEM·ODM 생산 기업 ‘비하다(BHADA)’ 등이 나왔다. 대웅제약은 더마 코스메틱 브랜드 ‘이지듀(Easydew)’, 스킨케어 브랜드 ‘이지덤’과 건강기능식품, 반려동물케어 신제품을 선보였다. 유통기업 bihibi는 AOU, GLOW, CKD 등 12개 한국 브랜드 화장품을 소개했다. 일본에서 한국 화장품을 수입, 판매하는 KOLLECTION도 한국 브랜드를 소개했다. 코이코(KOECO)와 국제뷰티산업교역협회(IBITA)는 한국관을 마련했다. 

'코스메 위크 도쿄'에 참가한 한국기업은 2023년 81개사에서 올해 120여개사로 40여개사나 늘었다. 이유가 있다. 일본은 글로벌 3위 화장품 시장이다.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화장품 제조 시장은 2021년 기준 약 3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 일본 수입화장품협회에 따르면 2022년 일본의 한국산 화장품 수입액은 775억 엔(약 7000억 원)으로 프랑스를 뛰어넘어 1위에 올랐다. 한국 기업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일본 시장에서는 성과를 기대하지 않아 미국이나 유럽에 집중했는데,  앞으로는 일본 시장 개척에 비중을 둘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좋은 일이 계속되려면 신경 써야 할 점도 있다. 전시회 사무국 관계자는 일본 전시회에서 주의할 사항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휴식, 식사, 전화는 부스 밖에서 △상담 이외에 부스에서 앉아 있는 모습 삼가 △전시회 종료 시간 엄수 등을 조언했다. RX Japan 관계자는 “일본의 바이어들은 종료시간을 잘 지키는지도 살펴본다”고 말했다. 전시회 사무국은 한국 참가사 대상 사전 웨비나를 열어 참가 기업이 일본의 지역 간 바이어 특성과 효과적인 비즈니스 미팅 전략을 공유했다. 전시회 사무국은 참가 기업의 의견 청취에도 관심이 높았다. 사무국은 첫날 전시회를 마무리 한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THANKS HOUR’를 마련했다. 부스 참가 기업에게 음료와 간식을 무료로 증정하는 사무국의 선물이다. 이곳에서 참가 기업은 전시회를 중간 점검하는 회의를 열거나 사무국과 소통했다.

전시회 참관객도 살펴보아야 한다.  2022년 기준 자료를 보면 , '코스메 위크 도쿄'는 동일본 지역에서 방문한 바이어가 81.1%,   '코스메 위크 오사카'는 서일본지역에서 방문한 바이어가 80.6%로 나타났다. 즉, 전시회에 따라 고객 타깃을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  

일본과 아시아 태평양 시장에 진출하는 교두보

신태용 RX Japan 국제영업&마케팅 한국 담당자는 “코스메 위크는 일본과 아시아 태평양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호소노 케이(細野 圭) RX Japan 제2사업본부 사무국장은 “코스메 위크 도쿄는 새로운 화장품·뷰티 트렌드와 연구개발 성과가 첫 선을 보이는 전시회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코스메 위크 도쿄’는 1월 15~17일 문을 연다. 동4~7홀에 이어 동8홀을 추가해 모두 5개 홀을 사용한다. 소비재 전문 B2B 무역전시회인 ‘라이프스타일 위크(LIFESTYLE Week)’와 처음으로 동시 개최된다. 이번에는 제35회 국제보석전(国際宝飾展)과 함께 열렸다. 올해 ‘코스메 위크 오사카’는 오는 9월 25일~27일 열린다. RX Japan은 ‘코스메 위크'를 매년 1월 동경, 9월 오사카에서 각각 개최하고 있다.

저작권자 © THE K BEAUTY SCIEN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