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엽 석좌 교수(충북대 원예과학과)

인종이나 남녀노소, 세대에 관계없이 인류의 미적 추구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물품으로 인간의 생사와는 관련이 없으며 특히 여성의 소비 비중이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산업의 핵심 코어가 인간의 피부 중심이며 전체 피부 면적 중 9% 정도에 불과한 얼굴을 대상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따라서 피부미용과 관련된 다양한 효능을 가진 제품들이 수많은 소재를 통해 만들어 지고 있는데 대부분 화장품 총량 대비 첨가된 성분의 양도 미미할 뿐 아니라 효과조차 검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들 제품은 섭취방법이나 섭취량에 따라 부작용이 거의 없는 음식이나 건강식품과 같이 많이 바르거나 적게, 혹은 몇 종을 동시에 바르더라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나 작용이 경미하며 사용 후 효과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치도 없고 표준화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소비자는 동일 효과를 가진 제품이라도 회사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어서 선택의 어려움이 있고 사용 후 단순히 효과가 없다고 해서 배상이나 손해를 청구할 수도 없다. 또한 과학적 검증을 거쳐 얻어진 효능효과 보다는 제품 구성성분 요소에 대한 소비자의 공감이나 콘셉트, 스토리 의존 영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화장품 산업은 인문학적 혹은 문화 예술적인 비과학적 요소에 의존하면서 발전해 왔다. 1990년대 말 화려한 율동을 무기로 한 댄스가수들과 섬세한 감정표현을 앞세운 드라마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촉발된 한류열풍, 2000년대 말 10대 가수들이 완벽한 군무(群舞)와 노래로 유럽, 북미 및 남미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형성된 K-POP 한류 열풍이 K뷰티 산업을 이끌어낸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문화 예술 콘텐츠가 한 산업의 활성화에 동기부여는 될 수 있으나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혁신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과학적 요인이 우선하는 기업OPINION 들은 자신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과거 전략 및 문제해결 방법에 집착함으로써 시장의 새로운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고 모순되게도 이미 시대에 뒤쳐진 제품, 서비스, 프로그램, 과정 등을 과감히 버리길 두려워한다. 그 요소들이 더 이상 성과를 내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다수의 국내외 선두 화장품 회사들은 그들의 미래가치를 과학적 요소에 두고 연구를 통한 혁신에 집중하고 있다. 연구를 통해 개발된 제품들은 과학적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소비자의 신뢰를 창출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국내 연구원 1인당 연구비 약 1.5억 원

국내 화장품 관련 기업 5679개사 중 연구 개발을 수행하는 기업은 2198개사(38.7%)이며 그중 기업 연구소를 보유한 업체는 1061개사(18.7%)에 불과하다. 연구비 규모는 1조1014억 원으로 추정되며 연구소 보유 업체가 연구개발비의 77.2%(8498억 원)를 자체 조달 하고 있으며 정부재원 비중은 22.6%(2,492억 원)에 달한다. 화장품 제조판매업체 종사자는 모두 9만5619명으로 추정되며, 이중 연구지원이 3337명(4.0%), 기초개발이 4125명(4.3%), 제품개발에 종사하는 연구자가 3234명(3.4%)이다. 연구지원 인력을 제외한 연구원 1인당 연구비는 약 1.5억 원으로 전국 제조업 주요 산업별 연구원1 1인당 평균 연구비 1.48억 원(2017)과 유사하다. 기술개발은 공동, 위탁연구, 기술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해결하고 있으며 특히 기업의 경쟁력이 부족한 색조, 헤어 케어, 자외선 화장품 개발 등은 산학연 간 협력을 통해 기술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6년 로레알의 경우를 보면 30개 분야에 연구원 3780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연구 개발비는 우리나라 전체 연구비 규모에 해당하는 8.5억 유로(1조 900억 원)를 사용하여 결과물로 473건의 특허를 등록하였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이 집중적 연구만이 진정한 효능을 나타낼 수 있는 화장품 개발의 원동력이라는 신념으로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는 사실로 볼 때 브랜드 가치가 높은 최강 회사들의 기술중심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암묵지(暗黙知)’의 결합체가 진정한 핵심 역량

연구원은 지식 창조 작업에 종사하는 지식 근로자(과학자)이며 일반적으로 아집과 독선 및 자만이라는 나쁜 직업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OECD의 연구개발 조사를 위한 표준지침, 즉 ‘프라스카티 매뉴얼Frascati definition of researchers’에 따르면 연구자는 “새로운 지식, 제품, 프로세스 및 방법과 시스템의 개념화 그리고 관련 프로젝트의 관리에 종사하는 전문가”라고 정의 하고 있다. 특정 활동이 연구개발 활동으로 정의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즉 연구 활동은 △새롭고novel △창의적이고creative △불확실하고uncertain △체계적이고systematic △이전 혹은 재현 가능해야transferable and/or reproducible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 활동은 현장과 이론의 지속적 교감을 통해 혁신을 이끌어 낸다. 혁신의 본질은 지식이다. 지식에는 경험을 통해 축적된 언어나 부호로 표현하기 힘들고 대면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암묵지(暗黙知)’와 개념화되고 언어로 표현된 이론적인 ‘형식지(形式知)’가 있다. ‘암묵지’는 직관이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개념화가 안 되면 공유하기 어렵다. 즉 ‘형식지’와 ‘암묵지’는 상호작용을 거듭할 때 지식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기업 내 존재하는 지식의 80%가 ‘암묵지’, 20%가 ‘형식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형식지’는 모방이 가능하고 기업 간 이전이 용이하므로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 요인으로 작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때문에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암묵지’의 결합체가 진정한 의미의 핵심 역량이고 기여도도 높다. 지식근로자로부터 생성되는 ‘암묵지’는 영감이나 간절함을 통해 잉태되고 열정과 끊임없는 인내과정을 거쳐 발현되기 때문에 회사는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지식생산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동기부여 없는 논문 쓰기는 ‘스트레스’

대학이나 공공연구기관에 근무할 경우 논문 실적이 자신의 업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논문쓰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다. 그러나 기술이 생명인 기업의 경우에는 개인보다 회사의 기술력을 과시하고 제품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홍보용으로 논문쓰기 혹은 특허를 권장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 선호하는 특허는 자사의 제품을 시장에서 보호하고 타사가 아이디어나 기술을 베껴 경쟁제품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공격용이라기보다는 방어수단으로 많이 사용되는 회사의 재산권이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개발비 투입으로 얻어진 특허권이 제품개발로 연결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지비가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 특허의 장점은 최초 개발자의 경제적 이득을 보장해줌으로써 개발의욕을 북돋아 준다는 점에 있으나 경제적 보상이 너무 작아 분쟁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기업연구는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의 특성 때문에 저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남기는 프로세스process를 항상 개발해 왔고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는 단편적이거나 과대 광고의 위험성이 높은 단일소재 보다 복합소재를 이용한 제품개발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가 우수하더라도 논문화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또한 경쟁기업에 이익이 될 만한 유익한 정보는 아예 발표를 용납하지 않거나 특허출원 하기 때문에 우수한 결과를 발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연구자는 발표가 허용된 논문 자체가 회사의 매출이나 이익 증대에 직접적으로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기업 내에서는 논문작업으로 인해 본업을 게을리 할 수 있다는 부정적이고 폐쇄적 기업문화로 인하여 논문을 쓰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으며 망설이게 된다. 이외에 자신의 여유 시간을 활용해 연구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 같은 순수한 동기로 논문 집필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떠나려고 하는 움직임으로 오인하는 주위 사람들 때문에 심적 고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인센티브나 동기부여가 없는 회사 내 논문쓰기 작업은 타성에 젖은 생계형 월급쟁이 연구원들에게는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의 논문은 ‘경제적 가치’도 크다

논문 발표는 과학자들의 의사소통 방법일 뿐 아니라 학문적 재능을 보여 주는 수단이자 재산이다. 또한 저자가 국내외 수준에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중요한 경력으로 간주될 수 있다. 회사에서 특허나 논문발표는 기업의 기술력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투자유치, 외부로부터 연구비 확보, 회사의 평가 등에 많이 활용될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신뢰도, 기업 홍보, 마케팅에도 적극 활용되는 등 많은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비 현금성 논문에 대해서는 자체 평가가 그리 후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원들의 성취감은 대학이나 공공연구기관에 비해 높지 않고 논문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이 낮은 편이다. 그러나 제품의 과학적 증거주의를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홈쇼핑 판매를 위해서는 적어도 제품과 관련된 특허 1건, 관련 논문 1편 이상을 요구하고, 기능성 화장품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보고서가 아닌 적어도 1편 이상의 논문 발표가 충족 되어야 하므로 연구원들의 논문 발표는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Publish or Perish’(논문을 쓰거나 죽거나)(Coolidge, 1932)는 우리가 자주 접하는 논문 발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문구이며 발표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뜻인 동시에 논문 출판의 어려움과 큰 부담을 나타낸 일종의 언어유희다. 요즘은 “Publish and Perish(논문쓰고 죽어라)”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새로운 논문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내가 쓴 논문의 우수성을 인정 받기가 어려워 스트레스로 인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한탄이다. 그러나 과학자의 최대 덕목은 지식창조를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한국 화장품 산업의 미래는 연구원 여러분의 과학적 접근과 혁신에 의해 좌우 될수 있다는 뚜렷한 목표의식과 자긍심을 잊어서는 안된다.

 

참고문헌

-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산업브리프(KHIDI Brief Vol.269)-화장품산업 특성화대학원 필요성 분석 및 시사점’ (2018년 9월 30일)

- 한국무역보험공사 ‘산업동향보고서-국내외 화장품 산업 동향 및 트렌드 분석’ (2018년 6월)

- 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17 화장품산업분석보고서’ (2017년 12월)

-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의료RnD 전문가 리포트-화장품 기술개발 동향 및 정책 방향’(2017년 5월)


1. 1인당 연구비(주요산업별연구원별)는 필자가 정부 연구비 자료와 화장품연구원 연구비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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