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의 쓸모』

[더케이뷰티사이언스] “생물학에서는 생물(생명체)을 일컫는 말로 오가니즘(organism)을 오래 전부터 사용하고 있다. 유기체로도 번역하는 이 단어의 어원은 '기관(organ)의 집합체'라는 뜻이다. 호흡기, 소화기, 순환기 같은 기관은 조직(tissue)이 모인 것이다. 그리고 조직은 또다시 세포(cell)로 나눌 수 있다. 이처럼 오가니즘은 순차적으로 배열한 구성요소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되어 기능한다. 한마디로 생명시스템(living system)인 것이다. 이로써 '생물 = 오가니즘 = 생명시스템'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쓸데없이 시스템을 붙인 게 아니다.” (머리말, 8쪽)

30년 연구 경력의 생물학자가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시스템생물학(Systems Biology)’에 관해 들려준다. 시스템생물학은 수많은 유전자와 단백질, 화학물 사이를 오가는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규명해서 생명 현상을 이해하려는 방법론이다. 즉, 생물을 개별 구성요소 수준이 아닌 시스템 수준에서 연구함으로써 구성요소 사이의 상호작용과 그에 따른 시스템 전체의 기능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최근 화장품산업의 트렌드로 관심을 모으는 '홀로비온트(Holobiont)'도 떠오른다. 

저자는 최소의 생명시스템 세포부터 호흡기관, DNA, 단세포생물 등 각각의 시스템을 살펴보고 그 시스템과 관련된 최신 연구를 풀어서 설명한다. 김응빈 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 교수가 집필했다.

이 책은 다섯 가지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생물학의 잠재력과 그 쓸모를 살펴보고 있다. 그 이야기는 △생명시스템의 시간을 되돌려라·세포 △지구상 모든 존재를 살리는 숨쉬기의 과학·호흡 △인류의 기원을 읽는 정보 지도, 인간게놈프로젝트·DNA △박멸의 대상에서 팬데믹 시대의 생존 지식으로·미생물 △바이오가 환경위기시계를 되돌릴 수 있을까?·생태계로 구성되어 있다.

세포 이야기에서 ‘각질(角質)’에 대한 대목은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줄기세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모든 유형의 세포로 분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 조혈모세포나 피부줄기세포처럼 신체 각 조직에 극히 소량만 있는 성체줄기세포(adult stem cell)는 해당 조직세포로만 분화한다. 성체줄기세포는 조직의 항상성을 유지하거나 손상된 조직을 재생시켜 상처를 아물게 하는 등 개체의 정상 기능 유지를 돕는다. 성체줄기세포가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는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각질이다. 각질형성세포는 표피의 맨 아래쪽에 있는 줄기세포에서 만들어지며, 보통 2주에 걸쳐 증식하고 분화하면서 표피의 맨 바깥쪽인 각질층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다시 2주 정도가 지나면 피부 표면에서 떨어져 나간다. 이게 흔히 말하는 각질의 정체이며, 결국 각질은 새 피부가 꾸준히 생겨난다는 생생한 증거다. 그러니 지저분하다고 눈살을 찌푸리지만 말고 생물학적 의미를 떠올리며 '새 피부가 잘 만들어지고 있구나'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37~38쪽)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학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저자는 “생태학은 환경문제의 근본 원인과 이상적인 해결 방안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를 제대로 반영해 올바르게 의사결정하기 위해서는 생태계 작동의 기본 원리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180쪽)고 강조한다.

저자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바이오매스(biomass)를 원료로 사용해서 만드는 생물원료(biofuel), 제3세대 생물원료의 주역인 조류(algae)와 모르티에렐라(Mortierella) 속 곰팡이 등을 소개한다. 이 가운데 “모르티에렐라 속 곰팡이는 하수를 이용해서 배양할 수 있기 때문에 생물응집제 생산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모르티에렐라 오일은 피부 보습과 항균 효과가 뛰어나 기능성화장품 생산에 사용되기도 한다.)(194쪽)

3R 전략에 관한 이야기도 관심을 끈다. 전 세계적으로 폐플라스틱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Reduce), 재사용(Reuse)과 재활용(Recycle)은 최대한 늘리자는 '3R'이 추진되고 있지만,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게 현실이다. 따라서 3R 전략을 추구하는 동시에 미생물을 재설계해야(Redesign)하고, 생태주의적 가치관으로 의식을 전환하는 다섯 번째 5R인 생각전환(Rethinking)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5R이 나머지 4R을 움직여야 환경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IFSCC 2023’의 주제인 ‘화장품 과학을 다시 생각하자(Rethinking Beauty Science)’를 곱씹게 한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당 떨어졌다’, 효모와 와인(wine), 호흡과 발효의 차이, 엄동설한에 몸이 떨리는 이유, 오믹스(OMICS) 기술, 휴먼 마이크로바이옴(Human Microbiome), 파지 요법(phage therapy), 생물나침반(biocompass), 세균노화 등 과학적이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생물학의 쓸모』에서 인상 깊게 읽은 한 대목을 소개하면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한다. 저자가 울산대학교 철학과 김동규 교수와 나눈 대화다.

“생물학은 미래 과학의 주도권을 선점하고 있다. 좁게는 학문 제반에, 넓게는 사회, 문화, 문명 그리고 자연 전체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 생물학은 이제 융합학문으로서의 기반을 견고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 생물학은 다른 학문과 함께 과학의 비전을 성찰해야 한다. 바다처럼 넓고 깊어야만 큰 배를 띄울 수 있듯이, 현재의 영향력과 미래 잠재성에 비추어볼 때 생물학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며 또 만나야만 한다. 타 학문에게도 생물학과의 만남은 필요하다. 현재 가장 활력이 있는 지적 영역과의 창조적인 조우를 통해서 융합학문의 현실성과 미래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118쪽)

생물학은 참 쓸모가 많다.

[김응빈 지음/240쪽/20,500원/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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