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 UZABASE, 애널리스트
정희선 UZABASE, 애널리스트
도쿄에 거주하는 저자는 비즈니스 애널리스트로 소비 및 산업 트렌드를 분석하고 전달하는 일을 한다. 저서로는 『도쿄 리테일 트렌드』 『공간, 비즈니스를 바꾸다』 『사지 않고 삽니다』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퍼블리(PUBLY), 패션포스트 등에 트렌드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더케이뷰티사이언스 2022년 12월호(Vol. 48)에 ‘내가 트렌드를 읽는 법’을 기고한 바 있다. 

코로나19 종식을 누구보다 기다린 산업 중 하나는 화장품 업계일 것이다. 마스크 착용이 당연시되면서 화장을 최소화하는 여성들이 늘어남에 따라 화장품 시장이 축소됐다. 특히,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마스크 착용 기간이 길었다. 2023년 5월 초, 정부가 코로나19를 독감으로 규정하며 마스크 착용을 자율화하겠다고 선언한 이후부터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일본의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19년 2조 6500억 엔에서 2020년 2조 2400억 엔으로 축소됐으며 아직 코로나19 이전 규모로 회복되지 못한 상태이다(2023년 2조 4500억 엔 전망, 야노경제연구소).

코로나19 기간 중 일본 또한 다른 나라들과 비슷하게 색조 화장품 시장은 주춤했지만, 스킨케어 시장이 활기를 띠었으며 화장품 성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소비자들도 늘었다. 많은 화장품 업체들 이 고전하는 와중 자연주의 화장품으로 유명한 ‘시로(SHIRO)’의 2020년 매출이 전년 대비 1.5배 증가한 점은 원료에 초점을 둔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졌음을 증명한다.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전환되고 화장품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지금, 일본에서는 어떠한 세그먼트와 제품이 인기일까?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유통의 존재감이 크게 부각된 지금, 화장품 유통 시장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고 있을까? 일본 화장품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짚어 보자. 

*2023년은 전망치, 연도는 4월부터 다음 해 3월 말 기준[자료:야노경제연구소] ⒸKOTRA 뉴스
*2023년은 전망치, 연도는 4월부터 다음 해 3월 말 기준[자료:야노경제연구소] ⒸKOTRA 뉴스

 

일본 시장을 장악한 ‘메이드 인 코리아’ 

일본의 화장품 리뷰 전문 사이트인 앳코스메(@ COSME)가 운영하는 하라주쿠의 점포는 온라인 쇼핑몰을 오프라인으로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다. 점포에 들어서면 온라인 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들이 순위에 따라 진열되어 있다. 슬쩍 보아도 눈에 익은 한국 브랜드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잡화 및 화장품을 판매하는 로프트(LOFT)에는 한국 화장품 전용 코너가 따로 마련될 정도로 지금 일본의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의 존재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일본수입 화장품협회에 의하면 2022년 한국산 화장품의 수입액은 775억 엔으로 프랑스 제품의 수입액(746억 엔)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였다. 

로손이 한국 색조 화장품 브랜드 '롬앤'과 개발한 편의점 전용 브랜드 ‘앤드바이롬앤’Ⓒhttps://www.lawson.co.jp/lab/tsuushin/art/1465663_4659.html
로손이 한국 색조 화장품 브랜드 '롬앤'과 개발한 편의점 전용 브랜드 ‘앤드바이롬앤’Ⓒhttps://www.lawson.co.jp/lab/tsuushin/art/1465663_4659.html

최근 일본업체들의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 또한 지대하다. 실제로 한국의 화장품과 협업하는 유통사들이 늘며 성공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색조 화장품 브랜드 ‘롬앤’이 일본 편의점 로손(Lawson)과 함께 개발한 메이크업 브랜드인 ‘앤드 바이롬앤(&nd by rom&nd)’이 대표적인 예이다. 

로손은 지금까지 일본 브랜드인 시세이도와 함께 편의점 전용 화장품을 만들어 왔다. 로손이 시세이도에 이어 협업한 브랜드가 한국 브랜드라는 점 또한 놀랍지만 출시 후 결과는 더욱 놀랍다. 2023년 3월 제품을 론칭한 후 3일 만에 30만 개를 판매하였는데 이는 로손이 보유하는 재고 2개월분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보통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화장품은 긴급 상황에 사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앤드바이롬앤을 구입하기 위해 20대 여성들이 일부러 로손을 방문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롬앤은 이미 일본에서 약 300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자랑하는 인기 상품으로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SNS 마케팅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로손은 롬앤의 제품을 그대로 가져다 파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유통채널에 맞도록 변경하였다. 앤드바이롬앤이 편의점 상품인 것을 고려해 기존 롬앤 제품보다 작은 사이즈로 만들고 대신 가격도 저렴하게 설정하였다. 롬앤의 립글로스, 마스카라 등은 1000~2000엔 정도의 가격대에 판매되고 있는데, 이는 편의점 전용 화장품 치고는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이다. 이에 따라 사이즈를 3분의 2로 작게 만들고 가격도 1000엔 정도로 낮춰 판매하였다. 

앞으로도 일본 대기업 및 유통업체의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갈 것으로 보인다. 로손의 성공 사례에 힘입어 자연스럽게 한국 화장품 브랜드와 일본 유통의 콜라보레이션 제품 또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장품 대기업 가오가 Z세대 남성을 타깃으로 론칭한 브랜드 ‘안릭스’의 제품들 Ⓒhttps://unlics.jp/
화장품 대기업 가오가 Z세대 남성을 타깃으로 론칭한 브랜드 ‘안릭스’의 제품들 Ⓒhttps://unlics.jp/

 

남성 고객을 잡아라 

남성 화장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후지경제에 따르면 2017년 1389억 엔이었던 남성 화장품 시장은 2022년 1583억 엔, 2024년에는 1655억 엔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성 화장품과 마찬가지로 남성 화장품에 있어서도 최근 한국의 브랜드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빠르게 커가는 시장을 외면할 수 없는 일본의 대기업들 또한 속속 남성 전용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현대 사회는 여전히 남성의 메이크업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도 메이크업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화장품 대기업 가오에 입사한 한 신입사원의 의견이다. 가오는 Z세대 남성에게 어필하기 위한 새로운 브랜드인 ‘안릭스(アンリクス)’를 론칭했다. SNS에 익숙한 세대를 의식하여 중성적인 메이크업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인플루언서 3명을 광고에 기용하였다. 이들은 단지 광고에 출연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품 개발과 브랜드 육성을 위해 협업한다. 

Z세대뿐만이 아니다. 오르비스는 40대 직장인을 겨냥한 상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오르비스는 2023년 3월, 2017년부터 전개하고 있는 남성용 스킨케어 제품인 ‘오르비스 미스터(オルビス ミスター)’를 대대적으로 리뉴얼하고 칙칙함과 주름으로 고민하는 40대를 위한 성분을 강화했다. 오르비스 관계자는 닛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르비스의 역사 중 이렇게 남성 화장품 매출이 급증한 것은 처음이다. 광고 집행을 늘리는 등 적극적인 홍 보활동을 통해 점유율을 확대할 것이다”라고 향후 남성용 제품에 힘을 쏟을 것임을 암시했다. 

시세이도가 새롭게 론칭한 남성 전용 브랜드 '사이드킥' 제품 Ⓒhttps://corp.shiseido.com/jp/brands/sidekick/
시세이도가 새롭게 론칭한 남성 전용 브랜드 '사이드킥' 제품 Ⓒhttps://corp.shiseido.com/jp/brands/sidekick/

남성 고객의 증가는 단지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남성 화장품 수요는 팽창하고 있다. 일본의 시세이도는 해외 시장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시세이도는 ‘시세이도 맨’이라는 남성 전용 브랜드를 가지고 있으나 2022년 6월, 19년 만에 새로운 남성 전용 브랜드인 ‘사이드킥(サイドキック)’을 론칭했다. 시세이도는 성장세가 빠른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하여 기본적으로 중국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하며 일본 내에서는 하라주쿠에 1개의 매장만을 열 생각이다. 제품 라인업은 세안제 등 총 10종으로, 1995년 이후 태어난 세대의 취향에 맞추어 원색에 가까운 색조 배경에 은색 로고를 넣은 도시적인 패키지로 구성했다. 시세이도 관계자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 중국 내 오프라인 매장 오픈도 검토해 시장을 조금씩 개척해 나가고 싶다”라고 전한다. 

이처럼 남성 고객이 화장품 시장의 주요 고객층으로 떠오르며 앞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불문하고 남성 고객을 겨냥한 제품이 계속 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후에도 확대되는 라이브 커머스 

코로나19 기간 중 고객의 오프라인 매장 방문이 줄자 일본의 화장품 업체들이 개척한 새로운 판로는 ‘라이브 커머스’였다.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하였지만 라이브 커머스의 열기는 쉽게 꺼질 것 같지 않다. 

화장품과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판클은 2020년 7월부터 현재까지 160회 이상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하였다. 주요 타깃은 40~50대 여성으로 실시간 시청자 수는 55만 명을 넘어섰다. 판클이 라이브 커머스로 눈을 돌린 이유는 코로나19 사태였다. 라이브를 통해 고객들을 온라인 몰로 유도해 오프라인 점포 방문객의 감소를 만회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으나 이 전략이 통했다. 

제품에 대해 잘 아는 기업의 직원과 소비자가 쌍방으로 소통하는 구조가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고객들이 ‘유사 제품과 무엇이 다른지’ 등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직원이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궁금증과 불안감을 그 자리에서 해소할 수 있기에 제품에 대한 신뢰감이 높아진다. 판클의 온라인 매출에서 라이브 커머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이지만 시청자의 연간 구매 금액은 미 시청자에 비해 15% 더 많다. 이에 따라 판클은 점심시간에 30분짜리 생방송을 추가로 기획하는 등 향후 라이브 커머스를 늘릴 계획이다. 

일본의 디지털 커머스 종합연구소(デジタルコマース総合研究所)에 의하면 일본 내 라이브 커머스 시장규모는 2021년 287억 엔, 2023년 400억 엔 정도로 추산된다. 절대적인 시장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앞으로의 성장성이 높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 6~7년 후 이 시장은 약 1000억 엔 정도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화장품은 라이브 커머스와 궁합이 좋은 채널이다. 시세이도는 직원들이 직접 월 6회 이상, 45분 정도의 생방송을 통해 화장법을 시연한다.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하면서 인플루언서로 성장하는 직원도 있다. CHIRO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시세이도의 직원은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는 메이크업 방법 등의 콘텐츠를 통해 47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로 성장하였다. 

 

화장품도 무인매장에서 구입

화장품 제조업체 오르비스(ORBIS)는 점원이 없는 무인 매장을 오픈했다. 브랜딩과 제품 설명이 중요한 화장품 업계에서 점원 없이 상품의 가치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오르비스는 무인 매장에 온라인 상담을 결합하여 무인점포의 단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2023년 5월, 오르비스는 일본 전국에 운영 중인 93개 직영점 중 처음으로 무인 매장인 ‘오르비스 스마트 스탠드(ORBIS Smart Stand)’를 오픈했는데, 이 매장은 앞으로 오르비스가 전국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매장의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선 오르비스가 왜 무인 매장을 만들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오르비스가 최근 고민하는 과제는 ‘어떻게 하면 고객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브랜드 인지도를 확대할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 일본 내 오프라인 매장을 더 오픈할 계획이지만 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력 부족이다. 인구 감소에 더하여 최근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주말과 공휴일에도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 오프라인 매장의 판매 직원을 구하는 것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오르비스는 인력 부족에 대응하면서도 사용자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온라인 접객과 무인매장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매장을 고안했다. 직원이 상주하는 매장의 가장 큰 장점은 고객이 제품에 관해 언제든 편하게 질문하고 그 자리에서 상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불가능한 무인 매장의 단점을 오르비스는 직원과의 온라인 상담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또한 오르비스는 오프라인 매장의 평균 200개에 달하는 SKU(stock keeping unit, 최소 재고 관리)를 절반 이하인 90개로 줄였다. 물론 일반 매장과 동일하게 상품을 진열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제품이 너무 많으면 사용자가 구매하고 싶은 상품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르비스 입장에서도 SKU가 줄면 재고 관리가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다. 

오르비스의 무인 매장 전경 Ⓒhttps://corp.shiseido.com/jp/brands/sidekick/
오르비스의 무인 매장 전경 Ⓒhttps://corp.shiseido.com/jp/brands/sidekick/

오르비스의 무인 매장이 오픈한 지 반년이 지났다. 과연 이들의 실험은 성공적이었을까? 오르비스 담당자의 닛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 의하면 무인 매장의 매출은 유인 매장에 비해 4분의 1 정도이지만 운영비 절감 효과가 매출의 감소분을 상쇄하기에 점포 자체로는 이익을 내고 있다고 한다. 무인 매장 단독으로 수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르비스의 주된 목표는 오르비스라는 브랜드를 더욱 많은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오르비스는 올해부터 자사의 점포가 존재하지 않는 현에 적극적으로 출점할 계획이다. 소형 무인매장을 통해 점포 운영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는 오르비스의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그리고 다른 브랜드도 비슷한 시도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커다란 변화가 없던 화장품 오프라인 유통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인가? 오르비스 무인점포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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