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트렌드를 읽는 법’ ③ 패션 마케터

남윤주 블랙야크 마케팅본부 브랜드커뮤니케이션 팀장
남윤주 블랙야크 마케팅본부 브랜드커뮤니케이션 팀장
홍익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 MBA를 공부했다. 2003~2012년 광고대행사, PR 회사 AE와 나우매거진 포틀랜드·타이베이·베를린편 콘텐츠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UN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협회 전문위원도 맡고 있다. 

꿈에 그리던 베이커리 오픈을 앞두고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라’를 위해, 그녀의 엄마 ‘미미’와 딸 ‘클라리사’ 그리고 베프 ‘이사벨라’가 ‘러브 사라’를 오픈한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셰프 ‘매튜’까지 합류하지만 손님은 없고, ‘사라’ 없는 네 사람의 거리감 역시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를 지나치는 손님들을 바라보던 ‘미미’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리는데…! “런던에는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살잖아. ‘러브 사라’를 고향 같은 곳으로 만들면 어때?” 리스본에서 온 엄마와 아들을 위한 ‘파스텔 드 나타’부터 호주식 케이크 ‘레밍턴’, 덴마크의 시나몬롤 ‘카넬스네일’ 라트비아 출신의 택배 기사를 위한 ‘크링글’까지! “‘러브 사라’는 당신을 위한 디저트를 만들어 드려요. 추억이 가득한, 어느 것이라도!”

얼마 전 개봉한 ‘세상의 모든 디저트: 러브 사라Love Sarah’의 영화 소개글입니다. 사실 미미의 기막힌 아이디어는 지나가던 손님이 툭 던진 한마디로 시작됩니다. 

“이 거리에만 네 개의 베이커리가 있는데 왜 이 베이커리에 와야 하죠? 이곳만의 차별점은 뭔가요?” 

그리고 모든 메뉴를 리뉴얼하고 베이커리의 브랜드 미션을 재정의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말이죠. 

ⓒ티캐스트, 영화 ‘세상의 모든 디저트:러브 사라(Love Sarah)’ 포스터
ⓒ티캐스트, 영화 ‘세상의 모든 디저트:러브 사라(Love Sarah)’ 포스터

코로나19를 겪은 이후 우리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이 하나씩 있다고 합니다. 늘 루틴하게 해왔던 ‘관성’을 잃었고 대신 그것들을 ‘왜’ 해야 하는지 자문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 출근을 하던 일상을 잃으면서 우리는 궁금한 것들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그동안 아주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라이프스타일이 사실은 인류 역사상 100년도 안 된 것이고 그런 물질주의로 인해 팬데믹에 처한 현실로 귀결되면 마케터인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고 맙니다. 그런 소비주의를 조장하는 것이 마케터의 일이기 때문이죠. 

특히 패션산업은 석유산업에 이어 두 번째로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산업이기에 이런 소비주의 의 조장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당면과제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청바지 한 벌을 생산하는 데 32.5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이는 어린 소나무 11.7그루를 심어야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이지요. 직조와 염색, 워싱 과정에서 사용되는 물은 약 7000리터로 우리나라 4인 가족 기준으로 5~6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입니다. 특히 패스트 패션 브랜드는 일주일마다 신상품을 쏟아내고 가성비를 앞세워 무분별한 소비 심리를 자극하죠. 그리고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이니 한 철 입을 생각으로 가볍게 사고 버리곤 합니다. 사실 이는 패스트 패션의 문제만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를 기업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는 내구성이 강한 옷을 만들면 사람들은 자주 사지 않을 것입니다. 대물량에 의한 단기간의 매출을 기대하기 어렵겠죠. 노동 착취를 하지 않고 인권을 보호하며 공정을 까다롭게 할수록 단가는 올라갑니다. 브랜드 가치가 높지 않다면 가성비가 낮다고 외면 받기 십상입니다. 스타마케팅보다 가치 있는 활동을 통한 지지기반으로 성장하겠다는 장기 계획을 세우면 영업팀과 위탁 매장 사업자들은 매우 불안해합니다. 

언론 또한 마치 성적순으로 행복을 매기듯 관습적으로 판매율을 묻고 매출로 브랜드 서열을 세우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요. 이런 내외부의 시선들은 새로운 물결을 받아들이고 대응하기까지 기업의 적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또한 매출 규모가 크고 조직원이 많을수록 개개인 모두와 동시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기에 집합적인 시선을 한 번에 바꾸기 힘든 구조적 문제를 야기합니다. 하지만 팬데믹 이전부터 이미 MZ세대를 중심으로 소비트렌드는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고 기술의 변화를 타고 앞선 글로벌 브랜드들은 그 세를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2016년 칸 광고제로 간 UN

“광고인 여러분은 스토리텔러이자 크리에이티브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 퇴치, 불평등 퇴치, 차별 퇴치 프로젝트를 도와주세요. 인류가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우린 글로벌 가난을 종식시킨 첫 세대이자 기후변화를 겪을 마지막 세대입니다. 가난, 불공정, 불평등이 우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어느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국가, 세대, 성Gender이 동참해야 하며 특히 민간 기업이 중요합니다. 그저 할 일만 했다는 안도감을 주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 2016년 당시 UN 사무총장이었던 반기문 총장이 칸 라이언즈 페스티벌(전 칸 국제광고제) 무대에서 했던 기조연설에 담긴 내용입니다. 아마 제 기억 속에 반 총장의 호소와 촉구는 꽤 긴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저는 여기 매드맨Mad Men(미국 드라마 제목을 따라 광고인을 일컫는 말)들에게 브리프Brief(광고인들에게 주어지는 캠페인 주제)를 주러 왔다”며 마치 캠페인 의뢰를 하러 온 광고주처럼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s’의 구체적 실행을 위한 글로벌 캠페인 확산을 호소했었죠. 

그와 함께 무대에 섰던 옴니콤, WPP, IPG, 하바스, 덴츠, 퍼블리시스 등 세계 6대 광고 지주회사 회장들은 3000여 명의 크리에이터들 앞에서 SDGs를 주제로 광고 캠페인 확산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죠. 크리에이터들 사이에 당시 이 사건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UN이 말하는 지속가능개발 목표 

국제연합UN은 지난 2015년 열린 70회 정상회의에서 환경, 경제, 사회통합을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각국 공통의 목표를 뜻하는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른바 SDGs를 주창했습니다. 

△빈곤퇴치 △기아해소 △건강증진과 웰빙 △교육의 질 △성평등 △깨끗한 물과 위생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 △경제성장/좋은 일자리 △산업 혁신 및 사회기반시설 △불평등 감소 △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책임감 있는 소비와 생산 △기후행동과 해양보존 △육상생태계 보호 △평화/정의/제도 개선을 위한 파트너십을 SDGs의 목표로 삼고 오는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것이 UN의 계획입니다. 

ⓒUN(https://www.un.org/sustainabledevelopment/blog/2015/12/sustainabledevelopment-goals-kick-off-with-start-of-new-year)
ⓒUN(https://www.un.org/sustainabledevelopment/blog/2015/12/sustainabledevelopment-goals-kick-off-with-start-of-new-year)

대부분의 사람은 ‘지속가능성’이라고 하면 친환경에 그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구, 인류의 생존과 존엄까지 모든 것들을 지속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로 인식하는 것이 더욱 적절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UN이 가장 먼저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광고 캠페인의 크리에이티브 올림픽인 칸 라이언즈로 향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신해철의 노래 ‘재즈카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 다. ‘우리는 어떤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는가.’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예술가적 태도이고, 이러한 예술가적 태도로 끊임없이 인간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산에 오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은 고도가 아니라 태도’라는 말이 있는데요. 산을 탈 때 중요한 것은 산의 높이가 아니라 어떤 태도를 갖는가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은 조직에 있지만, 소비자이면서 누군가의 가족, 친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케터는 아주 중요한 자리입니다. 자본의 흐름에 따라서 사회적인 물결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업의 예산이 어떻게 쓰여지느냐에 따라 소비트렌드가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의미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닐 것입니다. 
기존에 답습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벗어나 보려는 시도만이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응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화법과 다른 화법을 동원해야 하고 거기에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에는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얘기했습니다. 우선 설득을 하기 위해선 논리, 즉 로고스가 필요합니다. 그건 데이터일 수도 있고, 공신력 있는 학자의 이야기일 수도 있을 텐데요. 이러한 논거를 갖추었을 때 설득력이 생깁니다. 또한 에토스, 화자의 진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몰입이 가장 중요합니다. 스스로 몰입해야 아이디어에 대한 신념, 진정성이 상사나 동료에게 전달이 되기 때문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열정, 파토스가 필요합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서점은 욕망을 발견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그리고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는 욕망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 곳에 놓인 책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 지금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의 집합체다.”,『나는 매일 서점에 간다』 

반면, 점차 세포화되고 있는 ‘취향’과 ‘욕망’은 동시에 ‘필터 버블’의 함정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란 인터넷 정보제공자가 맞춤형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해 이용자는 필터링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이들과의 네트워크로 필터링된 정보들이 오히려 편견에 갇힐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스스로 경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의 확신이 확고해야 성공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점은 ‘필터 버블’된 정보와 경험들을 다시 필터링할 수 있는 유용한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본인이 낸 아이디어에 대해 흔들릴 때마다 자신이 체득한 추상적인 ‘촉’을 뒷받침해줄 학문적, 경제적 논리들이 서점에는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정보들은 비슷한 지식격차를 지닌 내부 의사결정자들에게 요긴한 설득자료가 되기도 하지요. 

“요즘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합니다. 제 취향대로 구석에 숨어있는 책을 끄집어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라고 덧붙인다면 말이죠. 물론 베스트셀러 코너만 본다면 인터넷 서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서점의 진가는 ‘우연한 만남’을 통한 ‘연결’에 있습니다. 그 동안 학문적으로는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건축이나 세계사, 디자인에 대한 책을 둘러보며 공간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한 권의 책과 매일 체감하고 있는 다양한 경험들이 맞물려 새로운 세계로의 문이 열리는 경험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지적 만족감을 주기도 하지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뜻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 의미하는 것은 인공지능, 가상현실, 자율주행 등과 같은 기술 그 자체만은 아닐 것입니다.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아날로그적 사고에 머무는 기업들이 몰락하고 있는 현상을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답습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벗어나 보려는 시도만이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응하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What is your mission statement?

하지만 제일 중요한 고객은 자기자신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들도 나를 사랑하듯이 기업이 스스로 서비스와 브랜드를 사랑하지 않으면, 소비자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죠. 특히 지금과 같은 초연결 시대에는 외부적 발신뿐 아니라 내부적 발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는 베이커리나 카페 같은 공간 하나하나가 누가 어떤 태도로 운영하는 곳인지 소셜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나는 세상이 됐습니다. 그만큼 브랜드와 자기 자신의 소명의식이 중요해진 시대가 도래했음을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정성 있는 소통을 통해 팬덤을 늘려가야 느리지만 지속가능한 브랜드가 되는 유일한 길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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