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다음(NEXT) 화장품 시장이 될까?’ ⑥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KBS 객원해설 위원, 서울시 남북교류협력위원장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KBS 객원해설 위원, 서울시 남북교류협력위원장

색조 보다 기초화장품 생산에 주력 

국내 화장품 시장은 성별, 피부 타입별, 함유성분별로 제품군이 매우 세분화되어 있어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넓다. 반면 북한 화장품은 대부분의 제품이 보습 기능에 초점을 둔 기초화장품이다. 북한이 기초화장품을 중심으로 화장품을 개발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추정한다. 

첫째, 기술적인 한계이다. 품질 좋은 화장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화학공업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화장품을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은 경공업에 해당하지만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기능성 등 선진국 수준의 제품 생산을 위해서는 각종 인공 및 천연물질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바이오공학, 각종 화학성분의 제조 및 배합 등 유기 및 무기화학공업과 용기생산을 위한 금형산업, 플라스틱산업 등의 복합적인 기술 력이 뒷받침 되어야한다. 북한 화장품의 불안정한 제형은 낙후된 화학공업 기술이 일차적 문제이다. 제품 용기의 품질이 낮은 이유는 금형기술의 낙후에 기인한다. 해외의 고급 명품 화장품 브랜드들이 주로 미국, 프랑스, 일본 등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선진국에 분포되어 있는 것은 해당 국가들의 경제력 수준을 감안할 때 당연하다. 국내외에서 호평 받으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한국산 제품의 경우에도 아세안ASEAN 10개국이나 중국에 비해서는 비교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EU 27개국과 일본, 미국과는 일부 품목에서 비교열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경우 각종 재료에 대한 기술개발의 한계 때문에 첨단기술이 필요한 기능성 화장품이나 색조화장품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렵다. 

둘째, 북한 주민들의 전반적인 피부 상태가 기초화 장품을 통한 영양 공급이 우선 필요하기때문이다. 영양상태가 풍족한 일부 고위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단백질이나 지방 섭취가 제한적이다. 단백질 섭취가 피부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영양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중성타입의 피부를 가진 피실험자들 일수록 대조군에 비해 단백질 섭취량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부실한 영양 상태에 더해 춥고 건조한 기후 역시 북한 주민들의 피부상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찬 대륙성 고기압이 배치되는 가을, 겨울의 건조한 기후는 피부를 푸석푸석하게 만든다. 따라서 북한은 보습기능을 가진 기초화장품을 우선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1. 김구환·정지연·양현옥, “SK88이 단백질 증가와 여성 피부의 탄력 및 보습에 미치는 영향,”『 대한피부미용학회지』, 제12권 6호 (2014), 869쪽. 

실제로 이번 연구과정에서 입수한 북한화장품 중 기초화장품으로 분류되는 제품의 대다수는 보습기능에 중점을 둔 기능성 제품이거나 보습성분이 첨가된 제품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연구를 위한 탈북자(이◌◌) 심층인터뷰에 따르면 평소 단백질 섭취가 부족한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기능성 제품을 사용하였을 때 보습효과가 있다고 증언한다. 반면에 영양상태가 풍족한 고위급 계층 주민의 경우 주로 수입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수입화장품을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북한산 화장품은 사용 시 피부에 트러블이 발생하는 등 피부 영양이 풍부한 사용자 에게는 잘 맞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셋째, 북한이 제시하는 바람직한 여성상이 화려하게 치장하는 여성의 이미지와는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색조화장품 생산에 소극적이다. 북한은 여성인력을 노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상교양을 통한 정신무장 등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1948년 창간된 조선민주여성동맹의 여성잡지『 조선녀성』은 각종 경제건설 과정에서 생산성과가 높은 인물들을 ‘노력영웅’으로 선정하여 특별한 사람으로 선전한다. 일종의 북한판 여성 스타하노프 운동Stakhanov Movement2이다. 

2. 소련의 제2차 5개년계획 중 국민경제 전체에 걸쳐 전개된 노동생산성 향상운동으로 사회주의적 경쟁의 한 형태다. 1935년 소련의 탄광부 알렉세이 그리고레비치 스타하노프(1906~1977)가 새 기술을 최대한 이용, 공정을 혁신함으로써 경이적인 생산증가를 가져온 데서 비롯돼 전국적인 캠페인으로 확대됐다.

이러한 노력영웅은 사회주의 체제가 바라는 모범적인 모델로서 여성 대중들이 이들을 모방하여 따라가기 위해 노력할 것을 유도한다. 북한이 제시하는 여성영웅은 △농업, 수산업 등 노동 효율성 증대에 혁혁한 공을 세운 노동력 유형,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투철한 혁명정신을 보인 여성혁명가 유형, △기술, 과학, 체육 등 각 분야의 전문가인 전문직 직업여성 유형, △현모양처 유형, 그리고 △항일투쟁 및 한국전쟁 영웅 및 원호援護유형이다.3 이는 사실상 조국을 위해 여성성을 희생하고 열심히 노동에 매진하는 여성을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제시하는 정책으로 색조화장품 사용 등 개인의 외모 가꾸기에 관심을 두는 여성과는 거리가 있다. 북한 여성들은 당국의 정책에 순응하여 화려한 색조화장품 사용을 지양해 왔고 북한의 색조화장품 개발 및 생산 역시 부진했다. 지금까지 북한은 여성의 미적인 욕구를 최소한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선에서 기초화장품 생산에만 집중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3. 남성욱·채수란·이가영·배진, 『통일한국의 양성평등제도』, (서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평화연구학회, 2016), 28~33쪽. Sung-wook Nam, Jin Bae, Su-lan Chae, Ga-young Lee, "Study on Heroine Discourse under Kim Jong-un Regime in North Korea: Focusing on Articles of Women of Joseon,", 『Journal of Peace and Unification』, Vol. 7, No. 1(Spring, 2017), pp. 51〜83. 

 

애민정치와 새로운 화장품 소비 계층 출현

최근 들어 북한의 화장품 생산 정책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2012년 이후 집권 10년째를 맞는 김정은 시대에 들어선 북한이 경공업 발전을 강조하며 생필품 생산에 주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김정은이 본인의 부족한 정통성을 극복하기 위해 ‘애민적 지도자’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후계자로 확정되기 전 10년 동안 당 선전선동부와 조직지도부 등의 주요부서에서 실무를 배운 김정일과 달리 권력의 인수인계 기간이 짧았던 김정은은 완벽한 지지기반을 다질 시간이 부족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 엘리트를 대상으로 한 ‘공포정치’와 인민을 대상으로 한 ‘애민정치’이다. 김정은은 북한 지도자로는 이례적으로 자책성 발언을 하는가 하면, 주로 외화벌이용으로 수출하던 수산물을 식량으로 수재지역 인민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4 김정은이 2015년 3월 평양화장품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화장품 생산의 다양화 및 품질향상을 지시한 점, 경공업부문을 활성화시켜 생필품에 대한 인민들의 수요를 보장할 것을 강조한 점5 역시 애민 지도자의 이미지 구축 전략으로 추정된다. 여성대중들의 생활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화장품 생산에 관심을 쏟아 대중들의 실제 생활에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4. 수재지역 인민들에게 물고기를 선물하는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며, 북한의 수산물 수출이 주된 외화벌이 중 하나라는 점을 볼 때 수출을 위해 양식하는 자라나 메기 등의 고급 물고기를 선물했을 가능성은 적다. 대신 군부대 등에서 보유하던 물량을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5. “경공업부문에서는 공장들을 지식경제시대의 본보기장으로 꾸리고 원료, 자재의 국산화를 실현하며 생산을 활성화하여 소비품에 대한 인민들의 수요를 보장하여야 합니다.” 김정은, 『로동신문』, 2017년 2월 4일.
그림 1. 봄향기 화장품 세트 ⓒ남성욱
그림 1. 봄향기 화장품 세트 ⓒ남성욱

둘째, 사적 경제활동이 제한적으로나마 보장되는 시장이 발생하며 소비 욕구가 증대된 새로운 여성 주체가 등장했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은 공식경제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배급제가 붕괴되면서 시장이 형성되었고 여성들은 시장에서 소비와 문화의 주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경제 부문에 종사하는 여성인구의 증가는 시장에서 구매력을 갖춘 여성인구의 증가로 이어졌다. 북한에서 시장은 문화를 생성해 내는 공간이자 물질생활에 필수적인 공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6 시장의 성장으로 장식품과 화장품 등의 외모 꾸미기 관련 물자에 대한 수요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되었다. 평양시내 호화복합 공간인 해당화관에 비싼 수입화장품이 진열되고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화장품코너를 둘러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북한에서도 여성의 몸 가꾸기를 터부시하는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과시한다. 2016년 12월 24일 김정은이 농업근로자 동맹 참가자들에게 보낸 선물에 은하수 화장품이 포함되었다. 이외에도 태양절 등 각종 기념일에 선물로 화장품을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에 대한 희생만을 강요해오던 북한에서 이제는 그 반대급부로 여성의 미적 욕구를 어느정도 충족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새로운 경제 활동의 주체로 떠오른 여성들의 소비 욕구 충족은 물론 충성심을 고취시켜 경제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장려하려는 의도도 내포되어 있다. 

6. 조영주, “북한의 시장화와 젠더정치.” 『북한연구학회보』, 제18권 2호(2014), 111~115쪽.

화장품 생산기술 낙후 및 대량생산 체계 미흡 

화장품 산업은 단순한 경공업이 아닌 화학공업, 금형산업, 플라스틱산업, 바이오공학 등 다양한 산업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인 분야다. 따라서 화장품 기술개발을 위해서는 다양한 부문의 기술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막대한 자본 투자가 필요하다. 기술개발에 필요한 자본이 부족한 북한의 경우 화장품의 품질이 매우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 강국인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및 한국 국적의 브랜드가 전 세계 화장품 업계를 평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정 국가의 화장품 기술은 그 국가의 경제력과 정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북한 화장품의 전성분 분석 결과 제조과정에서 일부 성분이 소실되어 제품의 주요 성분이어야 할 물질이 검출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제품이 딱딱하게 굳거나 표면에 균열이 발생하고 손으로 만져보면 마치 푸딩처럼 끈적끈적하게 엉기는 등 안정성이 떨어지는 제품이 많았다. 화학기술의 한계로 인한 불안정한 제형 때문인지, 제품을 포장하는 단계에서 나타난 기술력의 한계인지 정확한 원인은 확인할 수 없었다. 대다수 제품의 유통기한이 최대 2년에 불과해, 통상적으로 3년인 국산 제품과 비교하여 매우 짧은 것으로 미루어 포장과 보존기술의 한계일 가능성이 크다. 화장품의 원료가 되는 개별 화학물질에 대한 완벽한 관리와 제조가 화장품 산업의 기본 여건이 된다는 점에서 북한은 여전히 경공업 제품의 수준이 낙후되어 있다고 평가된다.

북한 화장품업계는 자동화·무인화 공정을 강화하고 
원료의 국산화를 도모하는 등 경쟁력 향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제형이 불안정한 화장품을 생산하거나 
금형기술의 낙후로 내용물이 균일하게 분사되지 않는 등 기술적 한계를 보이고 있다. 
북한 화장품의 각종 문제점이 단순히 ‘외모 가꾸기’를 지양해온 
정책 때문인지 실제 북한 과학기술의 한계인 것인지는 
추후 생산되는 화장품을 분석할 경우 분명해질 것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 국가에서 목표 달성을 유도하기 위해 ‘선물정치’를 시행한다. 선물정치는 인민들이 평소 갖고 싶으나 생산량이 부족하여 구입하지 못하는 품목을 증정해 그들의 환심을 사는 정치행위를 가리킨다. 가전제품이나 의류 등이 인기제품이다. 여성들의 경우 품질 좋은 화장품을 선호한다. 선물로 제공되는 품목 등은 평소 제작해서 쌓아 놓은 것이 아니라 기념일이나 국경일 등을 앞두고 선물 제공 방침이 결정되면 정해진 단기간 내에 야간작업 등을 통해 긴급 제작한다. 김정은은 인민 중시 기조를 외형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수차례의 선물 증정 행보를 보였다. 김정은은 자신의 젊은 감각과 부인 리설주의 조언 등으로 여성용품을 선물로 증정했다. 2016년 5월 14일에는 북한이 노동당 7차대회 참가자에게 선물 보따리를 안겼고, 8월 26일에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9차대회 참가자들에게 선물을 보냈다. 또한 12월 24일에 2016년 한해의 알곡생산량에 만족하여 농업근로자동맹 참가자들에게 선물을 증정했는데 선물 품목은 판형텔레비전, 당과류, 고급술 세트, 은하수 화장품, 고급 오리털 동복 등이었다.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집권 첫 해인 2012년 3월 8일 국제부녀절 행사에 참여한 은하수악단을 비롯한 예술인과 공로자 700~800여 명에게 선물하기 위해 ‘봄향기 화장품’을 생산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의 화장품은 평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여 당시 신의주화장품공장에 800세트를 일주일 내에 만들라고 지시했다. 철야전투로 밤낮없이 공장을 돌려 겨우 생산량을 맞추어 선물을 나누어주는 당일 새벽에야 평양역에 화장품 공급량이 모두 도착했다고 한다. 이 일화를 통해 김정은이 여성용품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과 동시에 북한의 내로라하는 화장품공장에도 800세트의 재고가 없을 정도로 열악한 산업 현실을 엿볼 수 있다. 

 

낙후된 용기제조 기술과 포장재 

그림 2. ‘랑콤’ 제품을 벤치마킹한 개성고려인삼화장품 ⓒ남성욱
그림 2. ‘랑콤’ 제품을 벤치마킹한 개성고려인삼화장품 ⓒ남성욱

화장품의 완성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내용물, 용기 및 포장케이스와 마케팅 부분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물을 제조하더라도 이를 담는 용기가 양호하지 못하면 소비자는 사용에 큰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용기는 사실상 화장품 내용물과는 별개의 생산 기술이다. 용기는 플라스틱을 동이나 철로 만든 금형 틀에서 찍어낸다. 정밀한 금형기술과 플라스틱 기술이 필수적이다. 본 연구를 위해 입수한 제품 대다수의 용기가 매우 조악했고 불량품도 확인되었다. 뚜껑이 잘 닫히지 않거나 닫히더라도 매우 뻑뻑하였고 그나마 정확하게 맞물리지 않는 경우가 잦았다. 이처럼 제품의 뚜껑이 잘 닫히지 않으면 제품이 외부 공기에 노출되어 변질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에 따른 유통기한의 단축은 자명한 일이다. 용기의 강도가 약해 보관이나 이동시 용기가 파손되는 경우가 잦아 내용물이 새어나오거나 변질되는 경우도 확인되었다. 스프레이 제품의 경우 분사기가 잘 작동하지 않았다. 여러 번 눌러도 액제가 분사되지 않거나 너무 강하게 분사되어 내용물이 지나치게 세게 튀어 사용이 어려웠다. 용기의 디자인은 세련미가 매우 부족한 수준이다. 몇몇 고급제품은 프랑스의 유명 브랜드 ‘랑콤’의 디자인을 그대로 모방하여 국산제품과 비교해도 디자인적인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제품의 경우에는 색상과 형태가 촌스러웠다. 용기의 완성도와 강성을 통해 북한의 금형산업과 플라스틱산업 등의 역량을, 용기 디자인을 통해 북한의 미적 수준과 디자인 역량을 각각 가늠할 수 있다. 최근 김정은은 김일성종합대학과 국가과학원 출신의 고급 인력을 투입하여 화장품 공장의 현대화와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향후 정기적인 북한 화장품 분석을 통해 화학공업, 플라스틱 등 소재공업 및 철과 동의 기계 금형제조공업 등 과학기술 개발의 성취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갈 길이 먼 북한 화장품 산업

전통적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여성은 외모 가꾸기를 통한 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국가가 제시하는 바람직한 여성상을 모토로 김일성,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애국심으로 무장하여 당의 혁명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했다. 김일성 등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들의 기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역설적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부족한 과학적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1949년 신의주화장품공장을 설립하는 등 정권 수립 초창기부터 기초적인 수준의 화장품 생산에 주력해왔다. 3대 지도자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보다는 상대적으로 경공업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려 화장품을 비롯한 생필품에 대한 생산을 증가시키고 있다. 계획경제가 붕괴되고 배급이 중단되는 등 내부의 불만이 점차 증가하는 상황에서 ‘애민정책’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어 3대 세습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한편으로는 사경제의 확대로 북한 시장경제의 주체로 떠오른 여성들의 소비 욕망을 고려할 필요성도 있었다. 2000년대 이후, 시장을 통해 유입된 외부사조의 영향으로 북한 여성들은 화장과 성형수술을 통한 외모 가꾸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외부사조를 접한 주민들의 수요를 이전과 같은 사상교육과 같은 경직적인 방법만으로 억제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여성들의 통상적인 미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무조건적으로 희생을 강요받으면서 억눌러 왔던 여성들의 미적 욕구를 일정수준 인정하여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김정은의 화장품 육성정책은 시장경제의 소비주체로 떠오른 여성들의 니즈를 감안하는 동시에 그동안 억눌러 왔던 여성의 미적욕구를 일정부분 만족시켜 ‘애민적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하고, 이를 통해 여성들의 보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경제활동 참여를 독려하는 통치전략이다.

이번 연구 결과 북한 화장품이 입수된 시점에서의 북한의 화장품 생산 기술은 기초화장품의 경우 국내의 1990년대, 색조화장품은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김정은의 반복된 현지지도와 독려에 따라 북한 화장품 업계는 자동화·무인화 공정을 강화하고 원료의 국산화를 도모하는 등 경쟁력 향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화장품의 품질은 바이오 공학, 화학공업과 금형산업, 플라스틱산업 등 여러 분야의 자연과학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이번 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김정은이 본격적인 화장품 생산 정책을 시작한 이후 새롭게 출시되는 제품의 주기와 품질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번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를 통해 화장품 생산에 사용된 전반적인 북한 과학기술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화장품 기술개발 향상에 힘을 쏟는 것을 통해 김정은이 인민생활에 이전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애민적지도자’의 모습을 강조하고자 하는 사실도 확인됐다. 

지구 대기권 밖으로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지구 궤도로 재진입할 때 6000도의 고열이 발생하여 발사체가 녹아내리거나 변형이 일어난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 2016년 9월과 2017년 4월 두 차례 및 2022년 3월에는 화성-17호를 발사하는 등 지구 재진입 기술 시험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주장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 세계 6개국만이 보유한 잠수함미사일발사SLBM 기술을 시험하는 북한 당국이 제형이 불안정한 화장품을 생산하거나 금형기술의 낙후로 내용물이 균일하게 분사되지 않는 등 기술적 한계를 보이는 것은 근본적으로 소비자 경시 정책의 결과다.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북한 화장품 생산의 각종 문제점이 단순히 ‘외모 가꾸기’를 지양해온 정책 때문인지 실제 북한 과학기술의 한계인 것인지는 추후 생산되는 화장품을 분석할 경우 분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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