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 코로나19 시대와 ESG
② 국내 화장품기업의 ESG

LG생활건강 149건, 아모레퍼시픽 100건, 클리오 2건, 애경산업 1건, 코리아나화장품 1건, 에이블씨엔씨 0건. 빅데이터 전문 조사기관인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소장 김다솜)가 2020년 한 해 동안 22만여 개 사이트에서 국내 주요사들의 ESG 경영 정보량(포스팅=관심도)을 조사한 결과다. 

조사 대상 333개사의 평균 정보량 수는 168.2건이었다. 가장 정보량이 많은 회사는 무려 9880건을 기록한 KB금융지주였다. 이 회사 외 신한금융지주(5427건), 신한카드(3326건), KB국민은행(1796건) 등 대체로 금융업종에 있는 기업들이 ESG 경영에 높은 관심도를 보였다. 반면 화장품 기업들의 정보량 수는 평균 42.1건에 불과했다. 선두권과는 비할 수 없이 큰 격차고 전체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이번 조사는 ‘회사 혹은 브랜드 이름’에 ‘ESG’라는 키워드를 결합해 검색하는 단순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값이 해당 기업의 EGS 경영 의지를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보긴 어려운 셈이다. 그렇다 해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화장품 기업들이 실제론 ESG 경영에 힘쓰고 있다 한들 정작 시장의 이해관계자와 소비자에게 관련 내용을 충분히 알리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ESG 경영이 내재화됐다면 그 내용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을 리 없다는 점에서 국내 화장품 업계가 새로운 시대의 트렌드에 뒤처져 있음을 방증한다.

 

ESG 경영의 계기가 된 코로나19

‘K-뷰티’가 세계적으로 잘 나간다고는 하지만 국내 화장품 산업은 아직 구조적으로 영세하고 취약하다. 2019년 기준 화장품 판매업체 수가 1만5707개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48%에 해당하는 7490개는 생산 실적이 아예 없고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작성 의무를 갖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기업은 손에 꼽는 실정이다.

당장 운영이 급급한 영세 화장품 기업 입장에선 ESG 경영이 언감생심이다. 설상가상으로 어느새 1년 넘게 전세계 경제를 옭아매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국내 화장품 업계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는 적잖은 화장품 기업에 ESG 경영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국가적 위기로, 전지구적 위기로 치달은 초유의 상황을 기업이 마냥 외면하긴 어려웠다. 화장품 기업들은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기부하고 의료진 후원에 나서는가 하면 다양한 챌린지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각자 가능한 방식으로 공동체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함께 하고자 했다. 

임직원들과 성과 나눠 

LG생활건강은 지난 1월 네이처컬렉션 및 더페이스샵 460여 가맹점에 매장 임대료(월세) 50%를 지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자사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매출 부진을 겪고 있는 점을 감안한 조치였다. 가맹매장 임대료 지원은 지난해 3월과 7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LG생활건강은 월세 지원 외에도 네이처컬렉션과 더페이스샵의 직영 온라인몰 수익을 가맹점이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통합 플랫폼을 재편하는 등 실효적인 상생 프로그램을 전개해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더페이스샵이 동반성장지수 가맹 분야 최우수등급을 받기도 했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은 지난해 호실적의 성과를 나누기 위해 임직원에게 연봉의 47%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고운세상코스메틱.
고운세상코스메틱은 지난해 호실적의 성과를 나누기 위해 임직원에게 연봉의 47%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고운세상코스메틱.

고운세상코스메틱은 최근 임직원에게 기본급의 467%를 PS(초과이익분배금)로 지급했다.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닥터지를 전개하며 수년간에 걸쳐 높은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성과를 나누는 차원에서다. 이 회사는 지난 연말에도 기본급의 100%에 해당하는 코로나19 특별 격려금과 11일간의 특별휴가, 가전제품을 깜짝 선물로 안긴 바 있다. 또 근무 환경 개선과 워라밸을 도모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며 대한상공회의소의 ‘일하기 좋은 중소기업’ 및 GPTW 인스티튜트 주관의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비록 목적의식적이며 체계적인 전략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이 같은 활동을 통해 화장품 기업들은 향후 ESG 경영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얼마간의 아이디어를 얻는 기회도 가졌다. 전례 없는 사태를 겪은 소비자들이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내게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기업이 공동체의 이익에 발을 맞추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길 원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방역과 위생에 소홀한 자라면 누구라도 가리지 않고 침투해 병들게 했지만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특정 계층에 집중됐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중들이 주목한 지점이다. 화장품 업계에도 가맹점의 매장 임대료를 지원하고 원자재 납품처의 결제대금을 미리 결제해주는가 하면 상생협약을 맺는 사례가 늘어갔다. 

 

환경, 그중에서도 플라스틱이 첫째다

코로나19 사태는 무엇보다 지구환경을 바라보는 기업과 소비자의 인식을 혁신적으로 바꿀 참이다. 마구잡이 개발과 삐뚤어진 보신문화 탓에 인간과 뒤섞이게 된 야생동물로부터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들이 퍼져나가고 있다. 이로 인해 인류는 치명적인 대가를 치루고 있고 언젠가 절멸할 수도 있다. 이번 사태를 경험하며 많은 이들이 새삼 깨달은 사실이다.

나아가 우리는 어제 나의 건강을 지켜준 마스크가 오늘 바다의 쓰레기로 떠올라 해양생물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는 기사를 적나라한 사진과 함께 접했고 외출과 외식이 제한되는 동안 집에서, 사무실에서 주문한 배달 음식이 남긴 막대한 플라스틱 폐기물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각종 화학성분의 결합인 화장품은 필연적으로 환경 문제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최근 가장 뜨거운 관심과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환경 이슈는 화장품의 내용물 그 자체보다 포장, 즉 플라스틱 용기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갈수록 강화되는 국내외 규제와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층 높아진 소비자의 환경의식에 압박감을 느끼던 화장품 업계는 최근 상징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조치를 내놨다. 지난 1월 27일 대한화장품협회 주도로 ‘2030 화장품 플라스틱 이니셔티브’를 선언한 것이다. ‘Beautiful us, Beautiful earth’를 슬로건으로 앞세운 이니셔티브는 화장품 플라스틱 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순환경제 실현을 위한 4대 중점목표와 10대 액션플랜 및 중장기 로드맵을 담고 있다. 

 

ESG로 가는 길에 ‘클린 뷰티’가 있다

코로나19와 환경 이슈를 두루 관통하는 화장품 업계의 핵심 테마는 ‘클린 뷰티’다. 유례없는 전염병 사태를 경험한 소비자들은 화장품뿐 아니라 모든 제품의 최우선 선택 기준에 ‘안전성’과 ‘투명성’을 올려놨다. 내 몸에 해를 끼치지 않는 안전한 성분으로 만들고 그 내용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으며 환경보호까지 고려한 화장품을 쓰고 싶다는 소비자의 바람이 ‘클린 뷰티’ 트렌드로 이어지고 있다.

‘클린 뷰티’는 법·제도적 정의가 없거니와 규정된 용어도 아니라 유동적이고 포괄적으로 쓰이고 있다.일반적으론 유해성분을 첨가하지 않아 인체에 악영향이 없는, 말 그대로 ‘깨끗한’ 화장품을 일컫는다. 무해하다고 해서 이런저런 화학성분을 배합해선 곤란하다. 최소한의 성분으로 목적한 효과를 극대화한 ‘미니멀리즘’ 제품이어야 그 내용을 올곧이, 투명하게 이해하며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깨끗함’의 개념은 포장과 용기에도 적용된다. 가급적 포장재를 줄이고 불가피한 포장은 재활용이 쉬운 소재로 만든 것이어야 하며 라벨과 인쇄잉크, 접착테이프까지 환경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동물실험을 진행하지 않음은 물론 동물성 원료도 사용하지 않은 ‘비건 화장품’이 클린 뷰티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레스 플라스틱’ 실천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해 메탈 제로metal zero 펌프와 100% 재생 플라스틱, 종이로 만든 페이퍼 보틀 등 친환경 포장재를 사용한 제품을 연달아 선보였다. 2022년까지 700톤에 달하는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량을 감축하고 재활용성을 높이는 ‘레스 플라스틱Less Plastic’ 실천의 일환이다. 내용물의 펌핑을 돕는 금속 스프링을 뺀 메탈 제로 펌프 용기는 사용을 마친 뒤 별도의 분리 작업 없이 그대로 분리배출이 가능하다. 용기 외부 소재는 100% 재생 플라스틱으로 제작했고 겉면 포장재인 수축 필름에는 절취선을 넣어 보다 쉽게 재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아모레퍼시픽 그룹은 2017년 재수립한 2020 지속가능경영 비전 ‘더 아리따운 세상을 위하여’를 실현하기 위해 환경, 사회 친화적 신제품 출시와 지속 가능한 매장 구현, 친환경 포장재 연구 등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플라스틱 대신 친환경 FSC 인증 종이로 만든 아모레퍼시픽 방문증. 그룹 차원의 ‘레스 플라스틱(Less Plastic)’ 실천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플라스틱 대신 친환경 FSC 인증 종이로 만든 아모레퍼시픽 방문증. 그룹 차원의 ‘레스 플라스틱(Less Plastic)’ 실천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은 2014년부터 환경부, 환경교육 NGO인 에코맘코리아와 함께 청소년의 올바른 생활습관을 통해 환경의식을 고취하는 ‘글로벌 에코리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에코리더’는 ‘나의 작은 습관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주제 아래 지속 가능한 사회를 이끌 청소년 에코리더를 양성하는 1년 단위의 환경교육 프로그램이다. 2019년에는 초·중·고등학생으로 이뤄진 에코리더 243명과 에코멘토 28명이 함께 ‘플라스틱 프리Plastic Free’라는 주제로 연중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클린 뷰티의 이념을 추구하는 브랜드에는 제품뿐 아니라 다방면으로 ‘지속 가능성’과 엄격한 기업 윤리를 요구받고 있다. 제조·생산 과정에서의 환경오염 요소가 없어야 하며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기업 다운 실천과 합리적이고 투명한 운영, 사회적 이미지가 중요시된다. 이 모든 요소가 ESG 경영과 맞닿아 있다. 

‘클린 뷰티’ 카테고리 육성 

국내 최대 헬스&뷰티 프랜차이즈인 CJ올리브영은 ‘클린 뷰티’ 카테고리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클린 뷰티’를 ‘지구에게도, 동물에게도, 내 자신에게도 조금 더 다정한 생활의 시작’이라고 정의한 올리브영은 지난해 6월 H&B업계 최초로 클린 뷰티 관련 자체 기준을 만들어 공표했다. 성분과 함께 환경과 윤리적 소비 등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제정한 올리브영의 기준에 따라 총 12개 브랜드에 걸친 160여 개 상품이 클린 뷰티 제품으로 선정됐다. 올리브영 주요 거점 매장에는 이들 브랜드와 상품을 한데 모은 ‘클린뷰티존’이 들어섰다. 

CJ올리브영은 업계 최초로 클린 뷰티 관련 자체 기준을 제정해 이에 부합하는 클린 뷰티 제품을 선정하고 서울 시내 거점 매장에 이들을 한데 모은 판매공간을 마련했다. ⓒ올리브영.
CJ올리브영은 업계 최초로 클린 뷰티 관련 자체 기준을 제정해 이에 부합하는 클린 뷰티 제품을 선정하고 서울 시내 거점 매장에 이들을 한데 모은 판매공간을 마련했다. ⓒ올리브영.

아로마티카는 사람과 동물, 지구환경의 공존을 추구하는 브랜드 철학에 따라 라놀린(양털), 밍크오일(밍크), 동물성 콜라겐(돼지껍질, 어류), 케라틴(동물뿔, 깃털), 달팽이 진액, 히알루론산(닭벼슬), 비즈왁스(벌집), 우유, 꿀, 계란 등 동물성 성분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원료 공급 및 제조사로부터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확약서와 증명서를 확보하는 원료 검증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지난 2월초에는 ‘2020 지속가능 경영 리포트’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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