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ir is not just hair

[더케이뷰티사이언스] 살다보면 무심코 한 일이 큰 결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주 먼 옛날 곤충만 먹던 우리 인간의 조상인 포유류는 4억 년 전 후에 영장류로 진화했고 뇌의 크기가 커지면서 숲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1500만 년 전 어느 날 숲이 줄어들면서 숲에 살던 꼬리가 없던 유인원(ape)은 숲을 내려와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게 된다. 숲 속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을 걷던 어느 한 무리 유인원의 이 작은 발걸음이 직립보행과 무기의 사용법 습득, 뇌의 크기 증대, 몸의 헤어(털, hair)를 사라지게(물론 아직도 몇 군데는 남아 있지만) 했다. 달리고 뛰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초원의 생활에 땀의 분비를 막는 몸의 헤어는 불편한 존재였음이 틀림없다. 헤어에 붙어사는 균은 골칫거리였을 것이고, 사냥한 음식을 불에 구울 때 잘못하면 자신의 헤어도 같이 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털북숭이 원시인은 열을 빠르게 배출하여 거대한 뇌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털을 벗어버린 것이다.

이 이야기는 1967년에 출간된 동물행동학의 권위자인 데스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의 『털없는 원숭이(The Naked Ape: A Zoologist’s Study of the Human Animal)』 내용을 내가 조금 각색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살기위해 택한 초원의 삶이 우리 몸의 헤어를 많이 없애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털없는 원숭이(The Naked Ape: A Zoologist’s Study of the Human Animal)』 표지(사진 왼쪽)와 50주년 한국어판 표지 ⓒ아마존, 교보문고
『털없는 원숭이(The Naked Ape: A Zoologist’s Study of the Human Animal)』 표지(사진 왼쪽)와 50주년 한국어판 표지 ⓒ아마존, 교보문고

인간의 몸에 난 헤어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몇 군데는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머리카락이 그렇다. 헤어스타일은 개인의 첫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져 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는 오래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들지만, 자기의 두상을 잘 아는 솜씨 좋은 미용실에 가서 헤어스타일을 변경하면 몇 시간 내로 새 사람이 탄생하기도 한다. 우리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헤어는 매우 효율적이고 가성비가 높은 인체구조물이다. 그러나 헤어는 사실 이런 미적요인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헤어와 헤어로 덥힌 피부, 헤어와 역사, 헤어와 건강, 헤어와 생물학 사이의 관계는 아주 밀접하여, 산업, 종교, 예술, 과학에 끼친 영향은 실로 놀랍다. 미국의 헤어과학자인 커트 스탠(Kurt Stenn)은 『꼿꼿하고 당당한 털의 역사: 헤어(Hair: A Human History)』’라는 책을 통해 헤어의 놀라운 역사와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고 있다.

『꼿꼿하고 당당한 털의 역사: 헤어(Hair: A Human History)』 표지(사진 왼쪽)와 한국어판 표지(절판). ⓒ 아마존, 교보문고
『꼿꼿하고 당당한 털의 역사: 헤어(Hair: A Human History)』 표지(사진 왼쪽)와 한국어판 표지(절판). ⓒ 아마존, 교보문고

헤어가 외모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은 확실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 헤어는 건강, 힘, 성적매력에 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건강하고 긴 머리는 역사적으로 생명력, 에너지, 성장, 출산과 동일시되었다. 이러한 메시지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미용사와 이발사는 머리를 펴고, 곱슬곱슬하게 만들고, 색을 빼고 입힘으로써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해 주었다. 헤어가 코스메틱과 미용분야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막강하다. 구글링을 통해 알아보면 헤어케어 시장은 2022~2028년의 예측기간 동안 연평균 복합성장률은 4.53%를 기록, 2028년에는 시장규모가 약 136조원(6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헤어의 높은 시장성은 헤어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게 한다. 우리 몸의 헤어를 자라게 하는 모낭과 모낭을 구성하는 세포는 우리 몸에서 가장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중 하나이다. 과학자들은 모발의 성장주기인 성장, 퇴화, 휴지, 탈락의 단계를 발견하고 이와 관련된 모발 내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다. 이 지식은 탈모뿐만 아니라 치아, 신장, 간, 뇌, 눈, 손가락, 피부와 같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장기를 재생하는 데 직접 적용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모발이식의 기술은 날로 발전하여 앞으로 탈모로 고생하는 모든 분들에게 광명의 빛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헤어는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하는 곳에도 존재한다. 식품업계는 인간의 머리카락에서 추출한 아미노산인 시스테인을 이용하여 밀가루 반죽 팽창제를 만들어 빵, 쿠키, 피자 등 각종 식품에 첨가하고 있다. 헤어는 우리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다. 헤어 유전자를 통해 친자를 감별하고 범행 현장에 있는 범인을 잡을 수도 있다. 중금속과 마약의 흔적은 헤어에 오래도록 남아 스포츠맨의 도핑 테스트에 사용되고 있다.

저자 커트 스탠은 헤어의 중요성을 우리 몸에 국한하지 않는다. 헤어는 인류의 문화발전에 기여한바가 적지 않다. 인간이 착용하는 모피와 다양한 가죽은 추운 북유럽, 캐나다 지역과 서유럽, 아랍간의 교역을 활성화시켰다. 인간의 동기는 언제나 돈이지만, 경제적 이득 이외에 다양한 결과가 얻어지기도 한다. 비버의 털과 가죽을 얻기 위해 미국의 대륙 지도가 만들어 졌고, 사회적 계층 간에 모피 사용을 차별하기 위해 다양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동물의 가죽을 벗길 필요가 없는 양모는 영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는데, 13~14세기 양모무역이 확장되면서 새로운 금융기술과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근대 자본주의, 은행, 금융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이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상업은행 가문이 이탈리아 피렌체에 근거를 둔 메디치(Medici)가 이다. 메디치가가 은행업으로 크게 성공하여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게 되자 그 영향력으로 가문은 피렌체와 로마의 정치를 장악하고,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를 후원했다. 물론 이러한 후원은 고리대금업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 환원이기는 하였지만, 양모가 없었으면 우리가 누리는 아름다운 예술도 그 숫자가 조금 적어졌을 것이다. 화가의 무기인 붓도 헤어가 없으면 만들 수 없고,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음률도 헤어가 없으면 만들어 낼 수 없다. 이 뿐만 아니라 15세기 제노아 근처 마을의 방직기술자의 아들이었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과의 양모 무역을 통해 큰 수익을 얻고, 신대륙 발견까지 하게 된다. 이렇듯 우리가 울의 형태로 걸치는 양모는 산업혁명을 비롯한 산업전반, 금융, 제조업, 정치, 예술분야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 몸의 털은 그냥 털이 아니다. 밀란 쿤테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말했지만, 헤어야말로 인간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미래에도 계속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신현재 조선대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 신현재 교수는 조선대학교 생명화학고분자공학과 교수로 효소와 탄수화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생물자원의 효율적 활용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에서 탄수화물 합성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문화원 ‘Chevening Scholarship’ 장학생으로 영국 런던에 위치한 Westminster University에서 탄수화물 화학을 공부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객원선임연구원과 효소전문기업 ㈜엔지뱅크의 대표 겸 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한국생물공학회에서 수여하는 신인학술상과 생물공학연구자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생물공학회 KSBB Journal의 편집장(Editor-in-Chief)으로 생물공학의 다양한 연구내용을 한글로 소개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2005년 국내 최초로 효소영양학을 소개한 『엔자임: 효소와 건강』을 출간하고, 2010년 효소를 이용한 질병 치유 가능성을 제시한 『춤추는 효소』를 선보였다. 2013년 ‘효소 3부작’ 마지막 편으로 『효소치료』(개정판)를 출간했다.
▶ ‘신 교수의 뷰티사이언스 서재’에서는 아름다움과 뷰티사이언스 그리고 화장품 과학에 대한 책을 소개하여 뷰티사이언스의 대중화와 일반인의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월 1회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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