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착시 ‘화장’ 심리학 - ④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본지는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의 ‘아름다운 착시illusion ‘화장’ 심리학’을 연재한다. 그는 시지각visual perception 관점에서 화장化粧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보여준다. 최훈 교수는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심리학 박사를 취득한 뒤 보스턴대학교와 브라운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지냈다. 현재 한국심리학회 편집위원, 한국인지및생물심리학회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_편집자 주 

벌써 20년도 훨씬 전 옛날, 둘 다 모태 솔로임을 자랑하며 집돌이, 집순이로 살고 있었던 우리 남매는 함께 영화를 한 편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즐거운 일로 생각되지는 않았었다. 누나가 관람을 강력히 희망했던 영화는 워낙 집밖 출입을 귀찮아 했던 내게 별로 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어공주.’ 아무리 생각해도 초등학생 때에도 읽지 않았던, 내 기준으로 여학생용 동화였던 인어공주를 20살이 넘어 극장까지 가서 봐야 한다니….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누나의 강권 + 맛있는 저녁 식사의 유혹에 넘어가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내 기억에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처음 본 것 같은데, 정말 재미있었다. 인어공주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세바스찬(난 바닷가재인줄 알았더니 트리니다드 게라고 한다) 이 불렀던 ‘언더 더 씨under the sea’는 넋을 잃고 듣고, 볼 만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빨간 머리가 인상적이었던 인어공주 에리얼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내 기억 속에 인어공주는 그렇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2022년 다시 인어공주가 화제다. 디즈니에서 1989년에 개봉했던 이 인어공주를 실사판으로 만들어 개봉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디즈니가 과거의 명작 애니메이션을 실사판으로 만들어 개봉하는 것은 낯선 일은 아니다.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미녀와 야수’나 ‘라이온킹’까지 실사판으로 만드는 판에 뭐 인어공주 쯤이야. 그런데 논란이 좀 수상하고, 생각보다 심각하다. 

최근 문제가 되었던 인어공주 실사판. AI로 흑인인 인어공주를 백인으로 변화시켰다.
최근 문제가 되었던 인어공주 실사판. AI로 흑인인 인어공주를 백인으로 변화시켰다.

최근 실사판 인어공주에 대한 논란의 핵심은 ‘피부색’이다. 실사판 인어공주의 주인공, 즉 에리얼 배역으로 흑인 가수인 핼리 베일리Halle Bailey가 캐스팅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존에 유명했던 작품이 영화로 재창조되는 과정에서 캐스팅에 대한 대중의 비판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예를 들어, 몇 해 전 공전의 히트를 했던 실사판 ‘알라딘’에서 찰떡 캐스팅이라는 평을 들었던 윌 스미스Will Smith 조차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는 미스 캐스팅이라는 비판이 많았으니. 하지만 이번에 에리얼 배역 캐스팅에 대한 불만은 지금까지 있어왔던 수준과 비견할 수 없는 정도이다. 핵심은 ‘검은색 인어공주가 가당키나 한가?’라는 주장이다.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1989년판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인어공주’에서 표현한 에리얼은 빨간 머리에 흰 피부를 가지고 있는 백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사에서는 에리얼이 흑인이 되어 버린 셈이다. 이건 원작 파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는 AI로 실사판 인어공주의 주인공을 백인의 모습을 바꾸어 제작한 동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왔고, 트위터가 해당 계정을 활동 정지시키는 사건이 생기기도 했다.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서 디즈니는 원작 파괴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사실 1989년의 ‘인어공주’에 등장한 에리얼의 모습도 원작 동화인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기반으로 디즈니가 창조해낸 캐릭터이니, 엄밀히 말해서 빨간 머리에 흰 피부인 인어공주도 원작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의 배경이 덴마크이고, 덴마크에 흑인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인어공주가 흑인이라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한다. 또한 흑인 인어공주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흑인 인어공주에 대한 반감은 백인에 기반한 미적 기준이 적용되어서 생기는, 백인우월주의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원작 동화에 그려져 있는 삽화에도 흰피부의 인어공주가 등장하고, 지금까지 영화나 문화작품에서 구현되었던 인어공주가 모두 백인을 기반으로 한 형상이었다는 점에서 대중들에게 인어공주의 원형prototype, 마음 속 인어공주의 모습은 백인이 맞으며, 굳이 흑인을 인어공주로 캐스팅한 것은 무리수라는 것이다. 

어떤 주장이 맞는지 판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화장과 얼굴 매력을 연구 주제로 삼고 있는 지각 심리학자로서 더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연 흰 피부가 얼굴 아름다움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칼럼을 통해서 몇 번을 언급했던 기본 화장법received style of cosmetics을 떠올려 보자. 얼굴은 하얗게, 아이라인과 눈썹은 진하게, 입술을 빨갛게한 화장법이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본 화장법이다. 이는 역시 경험적으로 흰 피부가 매력을 높여 준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화장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백설공주도 생각해 보자. 눈처럼 하얀 피부에, 피처럼 빨간 입술에, 흑단처럼 검은 머리를 지닌 미인의 상징 백설공주도 역시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도 이들 미인의 요소 중 피부색과 관련된 ‘백설’이라고 붙여진 점을 생각하면, 역시 하얀 피부색이 얼굴 아름다움의 필수요건이라는 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

하지만 흰 피부 얼굴에 대한 선호가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영향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백인 위주의 서양 국가들이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고, 해외로 진출하면서 실질적으로 세계의 지배계층이 되었고, 이 때문에 흰 피부가 다른 색의 피부에 비해서 선호된다는 것이다. 현실 사회에서의 신분을 알려주는 신체적 요인들이 매력의 요소가 되었던 적이 많았음으로 이 주장은 매우 신빙성 있게 들린다. 

그런데 흰 피부색이 가지는 매력 우세성이 백인에게도 적용될까? 즉, 백인들의 눈에도 얼굴이 희면 흴수록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할까? 사실 역사적으로 서구권에서 흰 피부색이 미인의 상징으로 여겨 지던 시절이 있긴 했다. 특히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시기에 이런 성향이 강했는데, 아마도 이는 당시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의 특수성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영국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엘리자베스 1세는 여왕에 즉위한 지 4년 후, 여전히 20대였던 나이에 천연두에 걸리게 된다. 천연두는 그 당시만 해도 30%의 치사율을 보이던 무서운 병이었으나, 여왕은 다행히 목숨은 건지게 된다. 하지만, 전신에 남은 반흔과 흉터는 어쩔 수 없었다. 그 이후 자신을 그린 초상화 중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은 다 찢어버렸다고 하니, 아마도 여왕은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엘리자베스 1세는 과도한 화장을 하게 된다. 얼굴에는 두꺼운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입술을 빨갛게 칠한다. 이것이 당시 미인의 기준이 되는데, 어찌보면 기본 화장법의 전형적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의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슬프게도 엘리자베스 1세의 화장법은 생각지도 못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엘리자베스 1세는 말년에 매우 심각한 건강 이상을 겪는다. 탈모가 심각하여 가발을 쓰고 다녔고, 우울증이 심했고, 인지능력 저하와 섬망delirium까지 겪게 된다. 이 증상이 과도한 메이크업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미백 화장품으로 유럽의 상류 귀족들이 애용했던 ‘베네시안 셀루스Venetian Ceruse’에는 납 성분이 담겨 있었고, 빨간 입술을 위한 립스틱의 염료에는 ‘진사辰砂, Cinnabar’라는 광물이 사용되는데 여기에 수은mercury, Hg 성분이 담겨 있다고 한다. 당시 메이크업을 한 후 1주일 정도는 그냥 내버려 두는 관행 때문에 엘리자베스 1세는 납과 수은에 장기간 노출되어 있었고, 결국 납 및 수은 중독과 관련된 증상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위해, 건강을 희생했던, 어찌 보면 흰 피부에 대한 집착이 죽음에 이르게 한 예로 많이 언급되고 있다. 

물론 엘리자베스 1세의 예를 잘 들여다 보면, 흰 피부에 대한 집착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원했던 것은 피부에 있던 반흔과 흉터를 없앴던 것이지 딱히 흰 피부를 원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흰 피부에 대한 선호는 두 가지로 나눠서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말 그대로 피부색이 밝은 피부에 대한 선호이다. 즉, 검은색보다 흰색 피부를, 황인종이어도 상대적으로 밝은 피부를 더 선호하는 형태로 발현된다. 또 다른 하나는 깨끗한 피부에 대한 선호이다. 깨끗한 피부는 사실 잡티가 없는 피부로 정의될 수 있는데, 딱히 피부의 밝기와는 큰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현실에서는 혼합되어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사실 깨끗한 피부가 매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명확하다. 깨끗한 피부는 건강과 젊음을 나타내는 강력한 지표이다. 특히 여성의 얼굴에 대해서는 피부가 깨끗할수록(심리학 연구의 표현을 따르자면 피부의 질감이 좋을수록) 매력도가 상승하는 효과를 준다(Fink & Matts, 2008; Samson, Fink, & Matts, 2010). 남성 얼굴에 대해서는 깨끗한 피부의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깨끗한 얼굴이 남성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유력하긴 하지만, 우리 나라에 있는 ‘꽃미남’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문화적인 요인이 많이 개입한 결과라는 설명도 의미있게 들린다. 

그럼 깨끗함과 별개로 밝은 피부, 즉 흰 피부에 대한 선호가 존재할 수 있을까? 사실 이론적으로는 쉽게 결론을 낼 수 없다. 얼굴 매력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상충하는 설명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대비가 높은 얼굴, 즉 피부와 눈 주변, 입 주변 간의 밝기 차이가 심한 얼굴이 매력적이라는 이론에 근거하면, 얼굴의 피부색이 밝을수록 대비가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얼굴 매력이 더 높게 지각될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하게 보이는 얼굴일수록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이론에 따라 생각해보면, 흰 피부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지나치게 흰 피부는 일명 ‘창백해 보이는 얼굴’이 되고, 절대로 건강하지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건강한 얼굴이라하면 조금은 햇빛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를 떠올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흰 피부의 얼굴이 항상 매력적으로 보일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예측을 하게 된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혼란스러울 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적으로 검증해 보는 것이다. 정말로 사람들은 흰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할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긴 하지만, 다양한 상황에서 엄격하게 통제하여 진행된 실험의 결과들은 피부의 질감, 피부의 색 등에 상관없이 피부의 밝기가 높을수록, 즉 피부가 흴수록 매력적으로 판단했다. 심지어, 이는 백인이 아닌 원주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을때도 마찬가지였다(Sorokowski et al., 2013). 흰 피부를 가진 여성은 확실히 더 매력적으로 지각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상당수의 연구자들은 앞에서 언급했던 사회문화적인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백설공주로 대표되는 백인 중심 서구 문명의 미인상이 전 세계를 장악하면서 자연스럽게 흰 피부에 대한 선호현상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Sorokowski 등의 연구(2013)에서도 서구의 사람들과 접촉이 많은 사람일수록 흰 피부에 대한 매력도를 높게 평가하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었다. 

거기에 더해 과거 피부색이 신분과 높은 상관을 보였던 시절의 유산이라는 주장이 있다. 단순하게 유색인종을 하인으로 썼다는 점을 넘어서, 신분이 높은 귀족들은 햇빛을 보는 일이 드물었고, 일반 서민들은 햇빛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일반적으로 귀족들은 흰 피부를, 서민들을 그을린 피부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흰 피부를 가진 사람은 속칭 ‘귀티나는’ 얼굴로 여겨져 흰 피부에 대한 선호가 생겨났고, 따라서 더 매력적으로 지각된다는 것이다. 

사회문화적 시각 외에도 지각 심리학적인 접근법도 여전히 유효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대비가 높은 얼굴일수록 더 매력적으로 지각되기 때문에, 흰 피부에 대한 선호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나는 비판 하나. 흰 피부는 건강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흥미롭게도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흰 피부가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거짓이라고 한다. 흰 피부가 건강해 보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건강해 보이지 않는 얼굴, 창백한 얼굴은 피부의 밝기 정도로 정의되지 않는다. 피부의 색과 입술 및 볼의 색 간 대비로 정의된다. 다시 말하면, 입술과 볼에 핏기가 없어 보일때, 지각심리학자의 표현으로는 입술과 볼 영역의 색상이 붉은 정도가 약할 때, 그 결과 피부색과 볼, 입술색의 차이가 별로 없게 되면서, 창백해 보이고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만일 입술과 볼 영역이 충분히 붉은 기를 띠고 있다면 흰 피부인 경우가 더 건강해 보인다. 흰 피부가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이다.

얼굴 매력에서 흰 피부가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무조건 밝은 파운데이션을 바르기 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적절한 밝기의 파운데이션을 권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조금 더 흰 피부의 얼굴을 원한다면 
옷과 머리의 색에 따라 얼굴 밝기도 달라질 수 있다.
 

최근에는 구릿빛 피부가 건강해 보인다고들 한다. 심지어 흰 피부가 매력 없다며, 일부러 피부를 검게 만드는 태닝을 즐겨한다. 너무 하얗기만 한 얼굴보다는 검게 그을린 얼굴이 더 매력적이라는 연구 결과들도 심심치 않게 보고된다. 이에 대해서, 변화된 사회문화적 환경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과거에는 노동을 위해서 햇빛 아래 서야 했고, 그래서 흰피부가 ‘귀티 나 보이는’ 매력적인 얼굴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구릿빛 피부가 (특히 유럽에서) 햇빛 작렬하는 휴양지에서 제대로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상류층의 속성이 되다 보니 이젠 구릿빛 피부가 더 ‘귀티 나 보이는’ 매력적인 얼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와 같은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태닝으로 만들어진 구릿빛 피부가 흰 피부보다 단순하게 어둡기만 한 피부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외웠던 색의 3요소를 떠올려 보자. 색은 ‘색상’, ‘밝기’, ‘채도’라는 속성을 갖는다. 이 3요소는 서로 너무 긴밀하게 연관을 맺기 때문에 막상 구분하려면 쉽지 않다. 그런데 굳이 구분해보자면 ‘색상’은 이 색이 무슨 색인지에 관한 것(빨간색인지 파란색인 지)인 반면, ‘밝기’는 색이 얼마나 밝은지를 말하는 것이다. 즉, 밝은 빨간색인지, 아니면 어두운 빨간색인지를 구분해 주는 것으로, 쉽게 말하면 밝기가 높은 색은 어떤 색상에 흰색을 더한 색이고 낮은색은 검은색을 더한 색이라 할 수 있다. 물리적인 이야기를 좀 더해 보면, ‘색상’은 빛의 파장과 관련된 속성이고, ‘밝기’는 빛의 강도와 관련된 속성으로 서로 상이한 속성이다. 

태닝으로 만들어진 구릿빛 피부는 흰 피부에 비해서 ‘색상’의 측면에서는 노란색(혹은 갈색) 계열이 강한 색이고, ‘밝기’의 측면에서는 더 어두운 색이 된다. 색상과 밝기를 구분하여 그 효과를 알아본 실험(Steven et al., 2009)에서는 구릿빛 피부가 건강해 보이는 이유는 밝기가 아닌 색상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건강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얼굴색은 노란색을 띤 밝은 피부였고, 색상을 통제한 상황에서는 더 밝은, 즉 흰 피부가 어두운 피부에 비해서 더 건강해 보인다는 결과였다. 

종합해보면, 얼굴 매력의 판단에서 ‘밝기’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밝기 수준이 매우 높은 ‘흰 피부’를 가진 얼굴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대비의 측면에서도 건강의 측면에서도 적절한 주장이 된다. 하지만 이 결론은 학문적 영역에서의 진실이다. 밝기와 색상을 구분하여 그 효과를 밝히는 것은 학문적으로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지만, 현실에서 몇 호의 파운데이션을 선택할 지 고민하는 화장러들에게도 의미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가장 건강해보인다는 노란색 계열 색상의 밝은 피부색은 과연 몇 호 파운데이션을 말하는 것인가? 

얼굴 밝기, 피부색과 매력 간의 관계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워낙 다양한 요인들이 서로 얽히고 얽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굴 매력에서 흰 피부가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건 확실한 것 같다. 흰 피부가 매력 판단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지각적 설명을 잘 살펴봐도, 결국 대비가 높아진다는 것이고, 대비란 피부와 눈, 입술 주변의 밝기 차이로 정의되기 때문에 흰 피부가 높은 대비에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 그래서 아마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무조건 밝은 파운데이션을 바르기 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적절한 밝기의 파운데이션을 권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조금 더 흰 피부의 얼굴을 가지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한 팁을 하나 주자면, 결국 얼굴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만큼,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래의 밝기 동시 대비 그림을 보면 동일한 회색 사각형이 주변에 있는 사각형의 밝기에 따라 더 어둡거나 밝게 보인다. 즉, 주변이 어두우면 더 밝은 회색으로, 주변이 밝으면 더 어두운 회색으로 보이게 된다. 옷과 머리의 색에 따라 얼굴 밝기도 달라질 수 있다. 

한편, 흥미로운 연구 중 하나는 인종에 따라서 얼굴색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는 연구이다. 얼굴을 동일한 밝기로 했는데 전반적인 얼굴의 생김새가 유색인종이면, 백인의 생김새와 유사한 경우에 비해 얼굴 밝기가 더 어두워 보인다는 것이다. 즉, 얼굴 밝기의 지각도 다른 형태적인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니, 얼굴의 밝기를 파운데이션에만 의존하여 밝게 하기 보다는 다른 연출 기법의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화장품 가게에서 파운데이션을 심각한 얼굴로 고르고 있는 당신에게, 조금은 파운데이션의 번호에서 좀 더 자유로운 선택이 함께 하기를... 

 

 

REFERENCES
- Sorokowski, P., Sorokowska, A., & Kras, D. (2013). Face Color and Sexual Attractiveness: Preferences of Yali People of Papua. Cross- Cultural Research, 47(4), 415~427.
- Stephen, I. D., Law Smith, M. J., Stirrat, M. R., & Perrett, D. I. (2009). Facial skin coloration affects perceived health of human faces. International journal of primatology, 30(6), 845-857.
- Samson, N., Fink, B., & Matts, P. (2011). Interaction of skin color distribution and skin surface topography cues in the perception of female facial age and health. Journal of cosmetic dermatology, 10(1), 78-84.
- Fink, B., & Matts, P. J. (2008). The effects of skin colour distribution and topography cues on the perception of female facial age and health. Journal of the European Academy of Dermatology and Venereology, 22(4), 493-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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