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착시 ‘화장’ 심리학 - ①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더케이뷰티사이언스는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의 ‘아름다운 착시(illusion) ‘화장’ 심리학‘을 연재한다. 그는 시지각(visual perception) 관점에서 화장(化粧)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보여준다. 최훈 교수는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심리학 박사를 취득한 뒤 보스턴대학교와 브라운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지냈다. 현재 한국심리학회 편집위원, 한국인지및생물심리학회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_편집자 주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니?” 눈치없는 거울은 또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백설공주라고... 마녀는 얼마나 슬펐을까. 

그런데 그게 슬플 일인가? 거울이 뭐라고. 제 눈에 안경이라고 했듯이,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주관적인 영역의 문제. 그렇다면 결국 거울의 대답은 단순히 거울의 개취(개인의 취향)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 굳이 그 말에 상처입고 백설공주에게 복수의 칼날, 아니 복수의 사과를 휘두를 필요까지는 없을 것도 같은데 말이다. 왜 마녀는 화를 냈을까? 

얼굴의 아름다움을 연구 주제로 삼고 있는 지각perception 심리학자인 내가 뇌피셜을 풀어 보자면 마녀는 비교적 최근에야 알려진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그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의 아름다움에도 보편적인 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의 심리학 연구들은 얼굴의 아름다움이 단순히 주관적인 평가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얼굴 아름다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보다 객관적인 요인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봐도, 내 얼굴과 박보검의 얼굴의 매력을 비교했을 때, 개인의 취향이 활약할 여지는 지극히 적지 않은가? 따라서 마녀도 거울의 대답을 무시할 수 없이, 그냥 눈물과 함께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다. 백설공주가 자신보다 객관적으로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럼 도대체 백설공주는 어떻게 생겼길래, 절대적 미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백설 공주의 외모는 원작에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백설 공주의 어머니가 흑단 나무로 일을 하다가 실수로 손을 찔려 피를 눈 위에 떨어뜨렸는데, 그때 자신의 아이가 눈처럼 하얀 피부에, 피처럼 빨간 입술에, 흑단처럼 검은 머리를 갖기를 기도했고, 그 기도가 응답을 받은 것이 백설공주의 외모였단다. 

그런데 사실 극단적으로 하얀 피부, 빨간 입술, 검은 머리를 가진 얼굴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을 것이다. 옆 나라 일본의 게이샤라고. 음... 백설공주가 게이샤처럼 생긴거라고? 그런데 사실 게이샤의 얼굴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공통 화장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때 서구권에서 자주 인용하는 예시이다. 

다양한 화장의 기법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화장법은 눈과 속눈썹을 어둡게 하는 아이라이너, 아이섀도우, 마스카라, 볼을 붉게 만드는 볼터치blush, 입술을 붉기 만드는 립스틱, 피부톤을 균일하고 밝게 만들어주는 파운데이션을 사용하는 것이다. 최초로 화장을 지각 심리학의 영역에서 다룬 Richard Russell(2010)은 이와 같은 화장법을 기본 화장법received style of cosmetics이라고 명명했다. (사실 received style of cosmetics은 수용 화장법 정도로 해석되는 것이 옳다. Russell은 이 화장법이 산업화 사회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received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기본 화장법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의역하였다.) Russell은 이 기본 화장법이 문화와 지역에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게이샤였다. 이걸 생각해보면 게이샤이든 백설공주이든 흰 피부에 짙은 눈과 붉은 입술을 가진 형태는 전 세계 공통적으로 매력적인 얼굴인 셈이다. 

지각 심리학의 영역에서는 이 기본 화장법에 대해 다양하게 분석을 하는데, 이 내용은 나중에 차차 하도록 하고, 오늘은 이 중 하나, ‘빨간 입술’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어느 나른한 휴일 오후.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민낯으로 소파에 몸을 묻힌 채 여유를 즐기고 있는 그때,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요즘 썸을 타고 있는 사람이 집 근처에 왔다며 잠시 나올 수 없냐고 한다. 절체 절명의 순간. 서둘러 세수를 하고,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수십 초 남짓. 당신이 민낯이 아닌 그래도 최소한으로 꾸미고 나왔음을 어필하고 싶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아마 독자들 대부분의 손에는 립스틱이 들려 있을 것이다. 

복잡하고도 복잡한 화장의 세계. 그래도 화장의 상징이라고 하면 립스틱을 떠올리게 된다. 대중 가요를 봐도 사랑이 시작해서 바르는 것도 립스틱(언제부턴가 그대를, 그대를 처음 만난 날, 남모르게 그려본 분홍립스틱: 강애리자 ‘분홍립스틱’)이고, 사랑을 끝내고 바르는 것도 립스틱(내일이면 잊으리 꼭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임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일 정도이니. 왜 우리는 립스틱에 집착하는 걸까? 쥐 잡아먹었냐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는 걸까?

입술을 붉게 칠하는 것은 매력과 높은 연관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여러 심리학 연구들이 붉은 입술과 매력과의 관계를 증명해왔다. 예를 들면 Guéguen의 연구(2012)에서는 실험실이 아닌 바Bar에서 실험을 진행했는데, 손님이 많은 시간에 화장한 여성 실험 보조자에게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호감을 표하는지를 측정하였다. 주된 관심사는 립스틱 색깔에 따라 호감도가 달라지는지였는데, 실험 보조자는 빨간색, 갈색, 혹은 핑크색 립스틱을 바르거나, 아예 립스틱을 바르지 않았다. 결과는 빨간색 립스틱을 바른 경우에 가장 많은 호감 표시를 받았다. 

심리학에서는 빨간 립스틱과 매력의 관계를 진화 심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진화 심리학적 관점이란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적응적인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으로, 더 쉽게 말하면 인간의 마음을 생존과 번식의 관점으로 이해하려는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 심리학은 붉은 입술이 건강함을 나타내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건강한 배우자는 나를 더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 있고 높은 수준의 노동력으로 경제력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의 생존에 긍정적인 요인이 된다. 또한 건강한 배우자는 나의 유전자를 담고 있는 아이의 생산(?)을 더 용이하게 만들기 때문에 번식에도 유리하다. 이 때문에 건강함을 나타내는 시각적 요인들은 매력과 관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몸이 아프면, 안색이 나빠지고 입술이 파래지듯이 붉은 입술도 나의 건강함 정도를 나타내는 매우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따라서 입술이 붉을수록 우리는 그 대상을 더 매력적으로 지각하게 된다. 

붉은 입술의 매력은 오랜 역사 속에서 그리고 심리학 연구 결과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그래서 립스틱은, 특히 빨간 립스틱은 화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였을 것이다. 

화장에 익숙하지 않고, 글로써 화장을 배운 나는 지각 심리학자로서 빨간 립스틱의 중요성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장에서 발생한다. 아내와 함께 찾은 백화점. 신중하게 립스틱을 고르던 아내는 나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낸다. 이어지는 질문. “두 개 중에 뭐가 이뻐?” “...” 지각 심리학자인 나의 눈에도 구분 불가능한 비슷한 색상의 두 립스틱. 식은땀이 흐르는 그 순간, 매장 직원분의 도움의 소리. “한 번 발라 보세요~” 하지만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내 눈에는 똑같다. 하지만 그때 다행스럽게도 그들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어떠세요? 이번 색상이 훨씬 좋지요? 얼굴색이 확 달라 보여요~” “그렇죠? 얼굴이 더 희게 보이는 것 같아요.” “...”

정말 립스틱 색 하나 바꿨다고 얼굴색이 확 달라진다고? 

사실 지각 심리학의 관점에서는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주장이다. 우선 색은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동일한 색이지만 주변에 있는 색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보인다. 색채 대비로 잘 알려진 (그림 1)을 보면 양쪽 사각형의 안쪽 사각형은 같은 하늘색이지만 주변에 있는 색에 따라 서로 다른 색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면, 립스틱 색상이 달라지면 얼굴색도 달라질 수 있다. 

그림 1. 색채 대비. 동일한 하늘색이 주변의 색에 따라 서로 다른 색으로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그림 1. 색채 대비. 동일한 하늘색이 주변의 색에 따라 서로 다른 색으로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색채 대비는 주변의 색채가 내부의 색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큰 면적의 색채가 작은 면적의 색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얼굴색이 입술색에 영향을 미치기는 쉬워도, 입술색이 얼굴색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힘들어진다. 

입술색과 얼굴색의 이런 딜레마적 관계의 진실을 직접적으로 확인한 연구들이 있다. 일본의 Kobayasi, Matsushita, 그리고 Morikawa(2017) 는 립스틱의 색상이 얼굴의 피부색 밝기 지각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 보았다. 그들의 실험은 매우 간단했는데, 참가자들이 제시되는 얼굴 사진을 보고 그 얼굴의 피부색이 얼마나 밝은지를 보고하는 것이었다. 연구자들은 조건에 따라 자극으로 제시된 얼굴 사진의 입술색을 다음 네 가지 종류로 조작하였다(그림 2): ①원래의 원본 사진Original ②원본 사진에서 입술을 더 빨갛게 만든 사진Redder lips ③원본 사진에서 입술을 더 밝게 만든 사진Lighter lips ④원본 사진에서 입술을 더 어둡게 만 든 사진Darker lips. 모든 것이 동일한 얼굴. 다른 것 은 오로지 입술색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색이 달라져 보일까? 그랬다. (그림 2)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빨간 입술이있던 Redder lips 조건에서 얼 굴색이 가장 밝게 보였다. 

그림 2. Kobayasi 등(2017)의 연구 중 실험 1의 자극 ⓒKobayasi 등의 각 연구 논문
그림 2. Kobayasi 등(2017)의 연구 중 실험 1의 자극 ⓒKobayasi 등의 각 연구 논문

Kobayasi 등(2017)의 연구에서는 입술색에 따라 얼굴색의 밝기가 달라지는 것을 보였는데, 이와 유 사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입술색에 따라 얼굴색의 색채가 다르게 지각된다는 점을 보였다. Kiritani 등(2017)의 연구에서는 동일한 얼굴에 입술의 색 을 다르게 만들고, 각 얼굴의 색채를 보고하도록 하였는데, 오렌지색 입술인 경우에는 얼굴색이 더 노리끼리하게, 붉은색 입술인 경우에는 얼굴색이 더 불그스름하고 더 밝게 보였다고 하였다. 

입술색을 바꾸면 얼굴색도 바뀌는 일종의 착시가 발생한다. 
얼굴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율을 차지하는 입술의 색이 전체 얼굴의 색에 
영향을 미치는 착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기존심리학적 지식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이 연구들의 결과는 입술색을 바꾸면 얼굴색도 바뀌는 일종의 착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얼굴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율을 차지하는 입술의 색이 전체 얼굴의 색에 영향을 미치는 착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며, 기존의 심리학적 지식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이 입술 유도 착시가 사람의 얼굴에서만 일어나는 특수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Kobayasi 등(2017)은 본인들의 실험을 자극을 뒤집은 상황에서 실시하였다. 즉, (그림 2)에서처럼 바로 선 직립 얼굴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위아래가 뒤집힌 역립 얼굴을 사용하여 동일한 실험을 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사실은 이게 더 당연하지만), 입술색이 유발시킨 착시가 사라졌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입술 착시를 생물학적 착시biological illusion라고 명명했다. 

입술은 얼굴에서 차지하는 면적의 비율은 적지만 매우 중요한 부위이다. 얼굴에서 색이 변화될 수 있는 부위는 기껏해야 볼과 입술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색조 화장이 볼터치와 립스틱이지 않은가. 특히 볼의 색을 통해 나의 감정이 표현된다면, 입술의 색은 나의 건강 상태를 알려주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해진다. 이 중요성이 작은 입술의 색에 따라 얼굴색이 달라지는 놀라운 마법을 부리는 셈이다.

이 사실을 심리학자들은 최근에야 열심히 실험을 통해서 밝혀가고 있지만, 화장 전문가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입술의 색이 달라지면, 얼굴색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고, 그 결과 각 화장품 회사에서는 매대에 색채의 향연을 벌이듯이 수많은 색의 립스틱을 개발하여 펼쳐놓았을 것이다. 

오늘 당신은 어떤 색의 립스틱을 선택할 것인가? 신중하자. 그 색이 당신의 얼굴색도 변화시킬 것이니.

 

 

REFERENCES
Guéguen, N. (2012). Does red lipstick really attract men? An evaluation in a bar.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logical Studies, 4(2), 206-209.
Kiritani, Y., Okazaki, A., Motoyoshi, K., Takano, R., & Ookubo, N. (2017). Color illusion on complexion by lipsticks and its impression. The Japanese Journal of Psychonomic Science, 36(1), 4-16.
Kobayashi, Y., Matsushita, S., & Morikawa, K. (2017). Effects of lip color on perceived light-ness of human facial skin. i-Perception, 8(4), 2041669517717500.
Russell, R. (2010). Why cosmetics work. In R. B. Adams, A. Ambady, K. Nakayama, and S. Shimojo (Eds.), The science of social vision (pp. 186-204).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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