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세계 화장품과학자들의 최대축제인 IFSCC가 열렸습니다. 화장품산업에선 워낙 비중 있는 행사라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은 관계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글로벌 화장품 연구의 흐름을 살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다는 측면에서 무척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행사에 참가했던 몇몇 분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입니다. 우선 이번 행사에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등록을 한 국가는 중국이었고 일본 역시 상당히 많은 관계자들이 등록을 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또 일본인 2명, 중국인 1명이 선정된 IFSCC FELLOW(IFSCC 위상을 높인 관계자에 수여되는 명예)에 우리나라 관계자는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양국 모두 우리나라와 아시아 화장품 강국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포르투갈 출신 마르타 곤살베스 박사가 ‘메종 지 드 나바르 젊은 과학자상(Maison G de Navarre Young Scientist Prize)’을 수상해 체면을 지켰지만 구두는 물론 포스터 등 정작 학술부문에서의 수상은 전무했습니다. 이같은 저조한 성적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개회식 현장에 그 답의 일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분들의 전언에 따르면 중요한 공식행사인 개회식에 우리나라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화장품 수출 세계 3~4위를 넘나드는 화장품 강국의 면모는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위상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실력뿐 아니라 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지난 7월로 되돌려 보겠습니다.국내외 많은 소재기업들이 참가하는 인코스메틱스코리아 행사가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습니다. 이 행사의 백미(白眉) 중 하나는 우수한 소재를 뽑는 ‘이노베이션존 베스트 원료 어워드’입니다. 올해 역시 국내 여러 기업이 수상의 영광을 안기는 했지만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수의 심사위원들은 우리나라 소재산업의 가장 큰 취약점으로 자료 부족을 꼽았습니다. 경험과 느낌상으로는 세계 톱클래스와 견줘도 부족함이 없는데 문제는 근거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거듭 지적했습니다. 근거 부족은 과학과 객관이 최우선시되는 연구개발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 두 가지 사례에서 우리 화장품산업이 급격한 외형성장에 비해 기본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의식 전환과 충실한 기본기를 닦는 것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요건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업계가 안전성 데이터와 ESG 등의 굵직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근거자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산업을 구성하고 있는 주체들 모두가 유불리를 떠나 공존과 상생을 위한 이 흐름에 동참하고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2023년 10월. 편집인 박재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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