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완, 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
조창완, 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
조창완 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은 보성그룹 상무, 차이나리뷰 편집장, 새만금개발청 사무관, 한신대 외래교수, 미디어오늘 기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중국자본시장연구회 사업&콘텐츠 담당 부회장, 문화산업상생포럼 수석부의장을 맡고 있다.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5권의 책을 썼다.

중국에서 보내기 시작한 첫 해인 1999년 가을학기가 시작했고, 우리 부부는 여행을 떠났다. 처음 경유한 도시 중 하나가 후난성의 성도인 창사長沙였다. 사전 조사를 통해 우리는 후난성박물관과 같이 있는 마왕투이한묘马王堆汉墓를 방문하기로 했다. 

1972년 발견된 마왕투이는 20세기 세계 고고학 발굴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놀라운 성과 중 하나다. 이 묘의 주인은 서한西汉 시대 창사의 승상인 대후轪侯를 지낸 리창利苍 가족 3명이다. 리창이 죽은 게 BC168년이니 2200년 가까이 된 무덤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이 무덤을 보고 놀란 것은 생생한 부인의 미라가 아니었다. 각종 옷들에 있는 문양 등은 현대에 비해도 뒤처지지 않은 다양한 색감과 문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표정을 가진 용과 짐승 등은 물론 하얀 옷의 조형미는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미를 추구했는지를 말해줬다. 

마왕투이 한묘에서 발굴된 이창 부인의 비의 ⓒ조창완
마왕투이 한묘에서 발굴된 이창 부인의 비의 ⓒ조창완

패션 대기업을 다니다 중국으로 중의학을 배우러온 아내도 패션이나 의학 기술에서 고대인들이 가진 기술이 결코 현대에 뒤지지 않는다고 감탄했다. 이후 중국을 다니면서 만나는 다양한 문화를 보면서 중국 화장품이나 패션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실감했다. 

중국에서 화장품의 역사도 세계 어느 국가와 다르지 않다. 우선 원시시대 부락에서 제사를 지낼 때, 샤먼들은 얼굴에 동물의 기름 등을 피부 위에 바른것이 화장의 시초로 본다. 이후 지속적으로 개선되다가 BC5세기에서 AD7세기에 화장품이 발전하는 기록들이 많이 나온다. 

내용을 보면 고대 이집트인들처럼 찰흙으로 머리를 곱슬곱슬하게 말았고, 고대 이집트 황후가 놋쇠로 눈시울을 그리고, 당나귀 젖으로 목욕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교로 주름을 펴는 등 도구도 사용했다. 중국의 특징은 볼에 연지를 찍고, 모발을 윤택하게 하는 것도 포함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뮬란’(2020)에도 주인공인 뮬란이 매파의 시선을 끌기 위해 화장을 하고, 다도를 배우는 것이 나오는데 이 역시 고증의 과정속에서 나온 것이다. 뮬란의 시대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후였다. 

 

사회와 같이한 당대 중국 화장품 역사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뷰티산업은 상대적으로 쇠락했다. 그러다가 1972년 중일 수교가 이뤄졌다. 중국 시장의 가치를 안 일본의 유명한 화장품 브랜드 들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화학 성분 중심의 저렴한 가격의 화장품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1980년을 전후해 중국에도 개혁개방의 물결이 몰아쳤다. 이와 더불어 천연성분의 고급 화장품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자체적으로 대규모 천연 원료 추출 분리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또 화장품 원재료를 찾기 위해 해상이나 열대지역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2000년 WTO 가입으로 중국이 대외에 완전히 문호를 연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졌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도 중국 시장에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시기였다. 더욱이 이 시점과 맞물려 한국 드라마나 한국 대중음악이 중국에 보급되면서 한국의 미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고인이 된 최진실을 비롯해, 김희선, 송혜교, 이영애, 전지현 등은 중국에서 미의 상징이 됐다. 

또 다른 화장품 시장의 포인트는 중국 하이엔드 소비층의 성장이다. 중국의 경제 성장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고, 중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부유층이 급속히 늘어났다. 필자가 베이징에 살때, 헤이처(黑車, 불법자가용 영업 택시)를 하던 현지인들은 대출이 가능해 보통 아파트 1채를 한국돈 1000만원 정도면 살 수 있었다.(1억원 짜리를 90% 대출 가능) 그런데 대부분 3~4채를 사둔 이들이 많았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광저우 백화점. 하이엔드층은 이미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조창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광저우 백화점. 하이엔드층은 이미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조창완

그런데 1억원짜리 아파트가 10년만에 15배까지 상승했다. 3채의 아파트를 가졌다면 자산이 45억원으로 상승한 셈이다. 이들의 소비 패턴이 달라졌다. 서울이나 도쿄, 홍콩, 싱가폴에 가서 화장품을 사기 시작했다. 브랜드도 명품 중심으로 바뀌었다. 다행히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은 중국을 타깃으로 한 브랜드를 론칭했고, 비교적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중저가 브랜드들도 비교적 활발하게 중국에 진출했다. 

2010년을 전후로 유럽의 명품이나 한국, 일본, 대만 제품이 백가쟁명의 시대를 연출했다. 식물 추출물을 중심으로 한 천연 스킨케어 제품은 더 많은 사람들의 특수한 피부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각종 첨가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피부에 트러블을 불러오고,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례들이 나타났다. 그러면서 화학 성분을 줄이고, 천연 스킨케어 성분을 증가시키는 것이 대세가 됐다. 

 

사드에 코로나까지 덮친 한국 화장품 

2000년 이후 한류라는 호재를 업은 한국 화장품은 중국시장에 큰 기대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우선 한국은 여행하기 좋은 만큼 화장품 쇼핑의 적지 였다. 저렴한 패키지여행으로 한국에 오면 명동이나 홍대, 신촌 등지에서 화장품 쇼핑이 가능했다. 화장품은 물론 마스크팩 등이 불티나게 팔렸고, 성공사례도 쏟아졌다. 이들은 시내 면세점을 원정하면서 화장품을 샀고, 공항 면세점도 장악했다. 그보다 더 큰 매출은 소위 ‘보따리 상인’으로 불리는 따이궁代工을 통해서 이뤄졌다. 한중 페리에서 시작한 따이궁은 비행기로까지 확대됐다. 이들은 중국에서 깨나 잣, 고춧가루 등으로 된 농산물 세트를 가져왔고, 한국에서는 고급 화장품을 가지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사업을 했다. 운반하는 이들은 푼돈을 벌었지만 중간에서 움직이는 리더들은 쉽게 수십 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후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도입을 선언했고, 2017년 2월 경북 성주에 사드 배치가 이뤄졌다. 중국이 단계적으로 한국에 대한 제재를 시작했다. 우선 화장품 등 불요불급하지 않은 한국산 화장품의 수입을 막았다. 상대적으로 웨이하이 항 정도가 괜찮았고, 다른 지역은 항구는 물론이고 공항에서까지 한국산 화장품 반입을 금지했다. 이미 시작된 중국내 매장 진출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상 휴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이후 가운데 조금 숨통이 트인 것은 미중 무역전쟁이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한국, 일본 등 우방을 모아서 중국을 봉쇄하려하자 중국은 한국을 더 적대하기 어려워졌다. 이전처럼 풀어주지는 않았지만 한국 화장품 때리기는 좀 약화됐다. 이런 흐름은 바이든 정부에도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바이든은 민주당 싱크탱크를 기반으로 중국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해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은 한국에게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중국에서 약재를 생산하기 좋은 지역은 극히 드물다.
중국이 기술은 추월할 수 있지만 땅은 달라질 수 없다.
그런점에서 한국의 미래 경쟁력은 우리가 가진 땅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포스트 사드도 낙관할 수 없다

2020년에는 몇차례 시진핑 주석의 방한설이 있었다. 이 설이 나올 때마다 화장품, 여행 등의 업계는 기대감을 가졌다. 중국 최고 국가 지도자가 방한하는 것은 사드로 시작된 대 한국 제재를 풀어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럴 경우 중국에서 한국 관광객 모객이 시작되고, 관광이나 화장품 업계는 시장에 획기적인 전환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까지 확산되면서 안오는 건지, 못오는 건지 하는 상황은 계속됐다. 

상하이를 배경으로 만든 트렌드 드라마 ‘겨우서른’ ⓒ조창완
상하이를 배경으로 만든 트렌드 드라마 ‘겨우서른’ ⓒ조창완

하지만 시진핑이 방한해서 이런 시그널을 던진다고 해서 이전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많아보이지 않는다. 우선 2017년부터 시작된 중국 내 한국 콘텐츠 제재로 인해 중국에서 한국에 대한 열기가 상당 부분 사라졌다. 일부는 OTT 등으로 한국 콘텐츠를 봤고, BTS의 폭발력으로 다시 과거로 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지만, 쉬워보이지 않는다. 

또 화장품 분야는 기술적으로도 중국이 상당 부분 근접한 상태다. 또 1000만 명 이상의 팬을 가진 왕홍 등은 자체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한국 화장품이나 명품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거기에 중국 산을 사자는 ‘궈차오国潮’ 열풍이 결합되면서 한국 화장품들이 설 수 있는 영역도 침범중이다. 

코트라도 Home Facial Pro(히알루론산 원액), 완메이를지(完美日记, 립스틱), 화씨즈(花西子, 아이쉐도우) 같은 ‘작지만 아름다운小而美’ 특징을 강조한 신생 중국 로컬 브랜드가 강세를 띄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최근 가장 두드러지는 소비 유행인 ‘궈차오国潮’ 열풍도 악재다. 궈차오国潮란 애국소비를 표현한 단어로, 중국 로컬 브랜드들의 상품에 중국 전통문화와 역사 스토리를 가미해 95년 이후 출생한 소비자들의 주목을 끄는 형태를 말한다. 중국 로컬 브랜드들이 이를 적용하는 사례가 최근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이는 젊은 소비층을 겨냥한 마케팅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류 부활도 관건 

2021년에 접어들 무렵 필자를 매료 시킨 중국 드라마가 한편 나왔다. 2020년 7월에 공개된 ‘겨우, 서른’(원제 三十而已)이다. 기존에 보던 중국 드라마의 대부분이 무협 드라마나 역사드라마였는데, 이 드라마는 한국적인 트렌드 드라마다.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로 주인공은 30살이 된 세 여성이다. 남편과 창업으로 어느 정도 성공해 부유한 가정을 가진 구자(顾佳, 童瑶분), 명품 매장의 판매직인 왕만니(王漫妮, 江疏影분), 그리고 그 매장이 있는 백화점의 관리실에서 일하는 종샤오친(钟晓芹, 毛晓彤분)이 주인공이다. 서른을 맞은 여성들의 고민과 벽에 진지하게 접근한다. ‘미실’이라는 최고급 브랜드가 옆에 있는 만큼 그들이 만나는 이들은 상하이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다. 

이 드라마는 한류 드라마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국내 방송 제작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시장이 작아서 드라마 제작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는 우리 방송사와 달리 중국 방송사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이런 드라마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소품 디자인은 물론이고 주인공들의 화장도 자연스럽게 그들 나이가 가진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결국 한국 드라마로 인해 한국 화장품에 대한 선호도를 가지는 시대도 지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화장이나 패션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 또 촬영도 마찬가지다. 상하이는 170여년 동안 아시아의 가장 발전한 도시의 면모를 가진 곳이다. 특히 낡은 건축물과 새로운 건축물의 조화는 흥미롭다. 이 드라마는 그 상하이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낡았다는 이미지가 아니라, 이제 앤틱의 느낌으로 받아들 이게 하는 게 이 드라마다. 그렇다고 앞날을 예단할 수는 없다. 다시 두 나라간 콘텐츠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더 큰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K뷰티의 영역이 확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다른 곳에서 나올 수도 

정관장은 한국 홍삼이 가진 장점을 바탕으로 중국 시장에서 가장 빨리 자리를 잡은 브랜드다. 그간 중국은 한국 인삼이 가진 효능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수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공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사실 중국을 두루 다닌 필자에게 한국 만큼 약초 재배에 좋은 지역을 꼽으라면 어디라고 말할 수 없다. 자연 풍경이 빼어난 곳은 많지만 그곳이 천하의 명약이 나오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춘천 풍물시장에서 지역산 약재를 파는 이들. ⓒ조창완
춘천 풍물시장에서 지역산 약재를 파는 이들. ⓒ조창완

그런데 KT&G는 2011년 10월 자회사인 KGC라이프앤진를 통해 프리미엄 홍삼 화장품 ‘동인비’를 출시했다. 이후 한국 홍삼화장품이라는 이미지를 선점해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사드로 인해 동인비 역시 2018년 매출이 34억원으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다행히 수출 위주로 마케팅을 확대하면서 2019년에는 213억원으로 매출을 다시 회복했다. 

홍삼을 먹는 건강식품에서 화장품으로 응용한 것은 KT&G의 혁신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하늘이 내린 자원이 있다. 바로 좋은 원재료를 생산할 수 있는 자연자원이다. 특히 한국의 산림은 다양한 약재를 생산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중국 화장품 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화학재료 중심의 저가 화장품 시장에서 천연재료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은 거대한 땅을 가지고 있지만 약재에 생산되기 좋은 지역은 극히 드물다. 일반 농토는 상당 부분이 오염되어 있다. 이런 상황을 아는 중국인에게 한국에서 잘 관리된 천연재료로 만든 화장품이라면 그 자체로 부가가치를 가진다. 우리 식약처도 올 2월 천연‧유기농 화장품의 인증을 원료로 확대했다. 

필자가 일하는 춘천시만 해도 민선7기 들어 산들을 사들여 임업을 자원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산에 화장품에 들어가는 천연원료들을 재배할 수 있다면 향후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또 춘천시에는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이 있어 원재료의 연구, 추출, 생산 등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산업생태계를 갖고 있다. 현재는 바이오산업 중심이지만 화장품 회사인 ‘청담씨디씨제이앤팜’, ‘화진바이오 코스매틱’, ‘리칸’, ‘소윌로’ 등 화장품 기업도 다수 입주해 있다. 

세계적인 투자 구루인 짐 로저스Jim Rogers는 “한국의 블루오션은 관광과 농업이다”라고 말한다. 농업은 한국이라는 땅이 가진 가치를 잘 활용할 때,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 중국이 반도체나 자동차 등 기술은 추월할 수 있지만 땅은 달라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미래 경쟁력은 우리가 가진 땅을 잘 활용하는데서 나온다. 

특히 한국 땅이 가진 장점을 바탕으로 재배 환경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소비자에게까지 전달하는 IOT산업이나 드론을 이용한 작물 관리 등 4차산업혁명이 결합될 때 한국 화장품 산업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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