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과학을 꿰는 책 『첨단X유산』 기획한 이준호 고려대 교수

“우리에게 남겨진 문화유산에 과거가 깃들어 있다면,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통해 앞으로의 세상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문화유산 속에는 당대 과학의 디테일이 숨어 있다. 역사와 과학의 눈으로 문화유산을 바라보고 현대의 첨단기술에 도착할 때, 과거와 현재는 연결되고 우리는 새로운 시공간에서 새로운 질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여는글, 9쪽 

전통 유산과 첨단 과학을 한데 모아 연결한 책『 첨단X유산』을 기획한 이준호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의 생각이다. 

이 책은 ‘우리 유산에 새겨진 첨단 미래를 읽다’라는 부제로 시작된 ‘강연회’에서 시작됐다. 고려대학교 공과대학이 박물관의 후원으로 인문학과 공학의 만남인 융합강연회를 2019년 10월부터 12월까지 10개의 주제로 매주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총괄 기획한 이준호 교수에게 역사와 과학을 꿰는 교차 상상력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물었다.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서면으로 진행됐다. 이준호 교수는 답변서 끝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화장품의 역사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화장품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을 파헤치면 재미있는 글이 탄생할 것 같네요.” 

이준호 교수는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금속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스코 철강 전문교수, 국회철강포럼 전문위원, 고부가금속 수도권거점센터장 등을 역임한 국내 대표적인 철강전문가다. ‘제20회 철의 날’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강연회를 기획한 계기와 책까지 낸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2019년 공과대학 사업부학장의 보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때 몇 가지 새로운 사업을 기획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첨단유산 강연회입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는 융합의 시대입니다. 융합형 인재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갖고 있으면서, 다른 분야의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인재입니다.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는 안암역을 사이로 인문사회계열 캠퍼스와 자연계열 캠퍼스가 구분됩니다. 안암역 사거리에서 신호등의 빨간 신호가 파란 신호로 바뀌 듯 양측의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공대 교수님들과 인문대 교수님들이 교류할 수 있는 융합의 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또한 인문계 학생들에게는 자연과학의 접근을, 공과대학 학생들에게는 인문학적 접근이 쉬워지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차점에서 박물관을 떠올렸습니다. 10차례의 융합 강연을 마쳤을 때 이 내용이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고, 출판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성원해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요.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모두 이야기합니다만, 실제로 그런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항상 주위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게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주위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가득하면 사고의 폭이 갇히게 됩니다. 저는 이번 강연회를 준비하면서 먼저 강연자들에게 주제를 드리고, 두 분씩 그 주제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게 했습니다. 다행히도 참여하신 분들이 자신과는 정반대의 위치에서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나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마주할 때 얻게 되는 새로운 깨달음을 느낄 것입니다. 

 

책을 내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도 있었나요. 

매번 강연회를 마치고 강연자들과 함께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어떤 날은 청중을 모두 돌려보내고, 카페에 가서 몇몇 교수님들과 함께 난상토론을 갖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매우 유쾌한 시간이었고, 제 생각의 폭도 더욱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책의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저로서는 만족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모두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그런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항상 주위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게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주위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가득하면 사고의 폭이 갇히게 됩니다.

 (인문과 과학의) 융합이란 무엇인가요? 

딱딱한 구슬을 상자에 가득 채워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상자에 가득 채워놓은 구슬들은 같은 장소에 존재할 뿐이지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구슬과 구슬 사이에는 빈 공간이 존재하는데, 그 공간은 어느 구슬도 차지하지 못한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만약 이 구슬이 스펀지로 만든 것이라 생각하면 어떨까요? 상자에 가득 채워놓은 다음, 주위에서 압력을 가하면 스펀지 구슬의 형태가 변하면서 구슬과 구슬 사이의 빈 공간이 채워질 겁니다. ‘융합’이란 이런 빈 공간을 채워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학문 영역에 매몰되어 있을 때 경험하지 못했던 영역을 자신의 모습을 상대에 맞춰 변화를 줄때 새롭게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세계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융합’입니다. 과학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인문학자에게는 인문학의 안경으로 과학을 보게하고, 마찬가지로 인문학을 어려워하는 과학자에게 과학의 안경으로 인문학을 바라보게 하는 것. 그곳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전에 없었던 다른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K뷰티도 과거의 유산과 연결되어 있을까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책 2장에는 고려청자의 비색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오직 유약으로만 색을 내는 것에 비해 고려청자는 태토에 유약을 조합시켜 비색을 내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K뷰티가 기존 서양의 화장법과는 다른 특징을 나타내는 것과 유사합니다. 즉, 대체로 서양인들은 광택 없이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덧바르는 화장법을 쓰는 반면, 우리나라는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피부 톤이나 결을 살리고 광이 나면서도 촉촉한 느낌을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K뷰티도 우리나라에서 대대로 흐르고 있는 이런 감성을 살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연구원)들도 박물관에 가야할 것 같습니다. 

어떤 제품이 시장에 나오면, 그 제품의 가치를 인정받은 뒤에야 박물관에 소장됩니다. 박물관에 소장된 것은 그것을 보관한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 버리지 않은 것이었기에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이고, 그만큼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박물관에 전시된 것입니다. 그 가치를 알려면 쉽게는 도슨트(Docent,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안내인)의 설명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 옛날에도 귀한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대의 첨단 기술이 활용되었습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이 왜 전시되었는지를 알게 되면, 앞으로 박물관에 전시될만한 물건을 개발하는 개발자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박물관에서 관람하는 교수님의 노하우를 귀띔해 주신다면요. 

예전에 영국 출장을 가서, 친한 영국 교수님과 ‘테이트 모던 미술관Tate Modern Museum’에 간 적이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교수님이셨는데, 저를 어느 방으로 끌고 가더니 판화 한 장을 보여주시더군요. 그리고는 자신은 다 보았으니, 둘러보고 오라고 하더군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자기만의 보물을 만들어 두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마치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이라고 이야기하며 연애하는 것처럼요. 나만의 보물이 생기면, 그 박물관은 나를 위해 그 보물을 보관해 주는 곳이 됩니다. 자주 보면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더 많은 이야기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이번 작업을 통해 느끼신 점도 궁금합니다. 

원래 직선을 그리기 위해서는 두 개의 점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점을 하나 찍고, 현재에 점을 찍으면, 다가올 미래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예측한 그대로 변하지는 않겠지만요. 그래도 최소한 나아갈 방향의 지침을 알려줍니다. 내일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이 두 개의 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과학을 꿰는 교차 상상력『 첨단X유산』 

융합의 시대, 인문학과 과학 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접근과 사유를 가능하게 돕는 책. 

과거의 전통 기술이 현재에는 어떤 기술로 변주 및 발전되어 왔는지 그 흐름을 짚기도 하고, 과거에는 ‘수단’에 그쳤던 유산이 지금은 어떻게 ‘주체’가 되어 새로운 기술의 중심에 서 있는지 새롭게 조망하기도 한다. 

각 장에서는 키워드에 맞는 전통 유산과 과학기술을 각각 하나씩 소개한다. ‘색깔’편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물인 고려청자와 현대의 디스플레이 기술을 살핀다. ‘무늬’편에서는 조선백 자에 새겨진 문양과 꼭 닮은 반도체의 리소그래피Lithography 기술을 살펴보며 조선백자에 숨은 과학기술을 만나본다. 이와 함께 △시선 △철기 △정보 △지도 △공간 △시간 △인식 △생명편까지 모두 10가지 주제를 다룬다. 

LG에너지솔루션 김명환 사장은 추천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과학에 바탕을 둔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기획/동아시아/392쪽/2만2천원 


 

■ 밑줄긋기 - 『첨단X유산』 
“우리의 첨단기술은 어떤 유산을 만들고 있을까요?”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시한 4차산업혁명 키워드 맵 ⓒ『첨단X유산』, 동아시아, 132쪽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시한 4차산업혁명 키워드 맵 ⓒ『첨단X유산』, 동아시아, 132쪽

• “백자는 원료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진화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당대 사람들의 기호와 취향, 정서와 사상, 시대 양식 등을 반영해 다양한 모습으로 탈바꿈해왔습니다. 소박하고 질박하지만 세련된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고, 원료의 한계를 조선식으로 극복하면서 변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첨단기술은 어떤 유산을 만들고 있을까요? 더 이상 ‘백자’라는 형태는 아니겠지만, 사람들의 소망과 필요, 과학과 시대정신이 만나 한국이 만들어내는 첨단의 ‘백자’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 ‘무늬–무늬로 읽는 역사와 과학’, 121쪽

• “과학에서는 색채를 이해할 때, 빛의 스펙트럼을 통해 접근합니다. 사회적으로 많은 생각과 다양한 가치가 섞여 있을 때 스펙트럼이 넓다고 표현합니다. (중략) 파란색과 같이 에너지가 큰 빛은 살균 효과가 있습니다. 선크림을 바르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 ‘무늬–무늬로 읽는 역사와 과학’, 128~129쪽

• “세계경제포럼에서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그에 걸맞은 키워드를 제시했습니다. 융합기술, 불평등, 혁신과 생산성 등의 큰 주제들이 보이는데, 여기에 ‘미술과 문화’라는 키워드도 있습니다. 미술과 문화 그리고 융합기술의 연결성이 4차산업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무늬–무늬로 읽는 역사와 과학’, 132~133쪽

• “무엇이 보석 같은 정보이고 무엇이 쓸모없는 정보인지를 구별해내는 능력, 자료와 자료를 연결하는 능력, 그 자료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에 있어서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는 인공지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정보-새로운 가치의 탄생’, 181쪽

• “인공지능의 핵심 키워드를 묻는다면 저는 ‘기록’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중략) 디지털 기록 없이는 인공지능도 불가능합니다.” - ‘정보-새로운 가치의 탄생’, 196쪽

• “가급적 많고 정확한 정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전달되는 정보, 수요자 중심의 정보 등 김정호가 그의 지도에서 구축하고자 했던 정보 전달 체계에 담긴 목표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도시로 주목 받고 있는 스마트시티의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김정호의 신념은 스마트시티에서 어떻게 계승·발전되고 있을까요? ‘수선전도’에 담긴 김정호의 신념을 읽어내는 작업은 스마트시티의 발전 방향에 많은 시사점을 줄 것입니다.” - ‘공간–인간의 도시를 넘어서’, 247쪽

• “텍스트, 이미지, 비디오 등 시각 정보를 넘어, 다음은 ‘촉각’입니다. 촉각을 전달하려면 속도만 빠르다고 되는게 아니고, 전송을 위해 소요되는 지연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원하는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면 촉감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 ‘시간-소통의 욕망, 시간을 창조하다’, 306쪽

• “시공간을 넘어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공간 이동’과 비슷한 기술로, 현재 개발 중인 촉각 및 후각을 전달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그중 촉각을 전달하는 ‘하트 비트 링heart beat ring’이라는 반지가 있습니다. 서울과 뉴욕에 각각 떨어져 있는 연인이 있다고 했을 때, 한 쪽에서 반지를 터치하면 상대 쪽에서도 그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는 반지입니다.” - ‘시간-소통의 욕망, 시간을 창조하다’, 313~314쪽

• “우리 국보인 혼천시계의 가치는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 만들어진 ‘혼천의’와 서양의 ‘시계장치’를 한데 받아들여 독창적인 기술로 재구성해 냈다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폭넓은 수용성과 독창성이 바로 혼천시계가 과학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지요.” - ‘인식-무엇이 확실하고 무엇이 모호한가’, 321쪽

• “(고려대학교 이공대 캠퍼스에 위치한 정조의 후궁인 원빈 홍씨의 무덤인) 인명원仁明園 관련 유물은 다양한 화장 그릇을 비롯하여 젊은 귀부인의 취향을 담아 화려한 편입니다.” - ‘생명-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시 묻다’,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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