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Whitening and Tanning

니나 자블론스키(Nina G. Jablonski)의 책 『스킨(Skin, A Natural History)』 원서(왼쪽)와 번역서.
니나 자블론스키(Nina G. Jablonski)의 책 『스킨(Skin, A Natural History)』 원서(왼쪽)와 번역서.

[더케이뷰티사이언스]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개념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진실은 너무 단순하지도 너무 복잡하지도 않은 중간의 어딘가에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로 혈액형, 관상, 인종학, 우생학 등이 있다. 생물의 피(정확히는 적혈구의 세포막)에 있는 항원의 조합에 따라 구분하는 ABO혈액형 구분은 (당연하게도) 우리의 성격 혹은 성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혈액형을 바탕으로 성격과 능력을 표현할 수 있다는 관념은 지금도 널리 유행하고 있다. 요즘은 연구미팅 자리에서도 아이스브레이킹 목적으로 MBTI를 물어보곤 한다. 사실 16가지 남짓한 종류로 사람을 구분한다는 것은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기 쉬운 일임에도 ESTJ인 사람이 INFJ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얼굴의 생김에 따른 운명론과 피부색의 차이에 따른 인종학 혹은 우생학은 이미 과학적 판단이 완료되어 폐기된 관념임에도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순혈주의자의 흔적처럼 남아있다. 이러한 비과학적 관념에 더해 항상 내가 남보다 좀 더 나아야 한다는 이기심, 시기심과 경쟁심이 더해진다면 진실은 이미 저 세상너머로 사라져버린다. 서론이 조금 길었지만, 오늘은 피부색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피부는 우리 몸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진 기관이자,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센서이고, 우리 내부 장기를 지키는 강력한 생분해성 포장재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의 인류학과 교수인 니나 자블론스키(Nina G. Jablonski)는 그녀의 책 『스킨(Skin, A Natural History)』에서 피부와 ‘피부색’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생물학적인 면에서 피부는 자외선을 적절히 조절하는 능력을 통해 종의 생산에 중요한 DNA 합성을 촉진하는 엽산의 파괴를 막고 뼈를 지키고 면역을 담당하는 체내 비타민 D 생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현생인류가 지난 수백만 년 동안 다양한 피부색으로 진화한 이유는 번식과 생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외선 양이 많은 저위도 지역에서 자외선 양이 적은 고위도 지역으로 확산함에 따라 생식에 유리하도록 피부색을 진화시킨 것이다. 한편, 피부 혹은 피부색은 생물학적인 기능이외에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사소통 기능과 감정표현 기능을 비롯한 심미적 기능을 하고 있다. 인간은 옷을 만들기 전에 피부를 이용하여 스스로를 장식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몸과 얼굴에 문신을 새기거나, 흉터를 내거나, 자연에 존재하는 염료로 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과시하던 역사는 현대에 들어와서 타투와 피어싱의 형태로 재해석되면서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피부를 보다 아름답게 가꿈으로써 자신의 외적 아름다움을 적극 개선한다. ‘피부가 곧 우리 자신이다’라는 신념은 전 세계적인 화장품 산업과 미용 산업의 확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희고 아름다운 피부는 우리 모두가 본능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개념일까 아니면 만들어진 신화일까? 프린스턴 대학교의 미국사 명예교수인 널 어빈 페인터(Nell Irvin Painter)는 그의 저서 『백인의 역사(The History of White People)』에서 흰 피부의 아름다움의 이면에 자리한 권력과 허구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피부색을 넘어 백인이라는 인종의 우월성을 만들어낸 신화적 배경도 다루고 있다. 백인종을 뜻하는 코사서스인의 유래는 러시아 군대에 포로로 잡혀 모스크바에 끌려가 성노예로 살다가 죽은 젊은 조지아인 여성의 두개골이 발견된 캅카스 지방에서 유래되었다. 코사서스인은 ‘백인’의 관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과연 인종 간에 확연한 우열의 차이가 드러나거나 존재하는가? 역사적으로는 우월한 인종(백인)이 열등한 인종(흑인)을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했고, 지금도 미국 같은 다인종 국가 안에서 인종에 따라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권한과 지위가 차별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만연되어 있다. 그러나 저자는 ‘백인종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강인하고 지적으로 뛰어나다는 관념은 근거가 없다“라고 결론 맺고 있다. 현대 DNA 연구를 통해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인간 피부색의 차이는 앞서 말한 대로 유전적 특징을 갖는 상이한 인종이기 때문이 아니라, 생활하는 장소인 환경에 기인한다. 즉 ‘희다’의 속성은 유전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피부색은 인체의 멜라닌 색소가 햇빛에 반응하여 나타난 결과물이다. 따라서 피부색은 환경, 지리, 기후에 따라 변하며, 상이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 만나 자식을 낳으면 그 색이 변하게 된다. 실제 피부색은 약 100여개의 유전자가 관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대략 7개의 표현형은 집단에서 정규 분포곡선으로 나타나게 된다. 지금 우리가 갈망하는 흰색피부 역시 정규분포의 왼쪽 끝 부분에 있는 일부라고 할 수 있다(오른쪽 끝은 갈색피부).

널 어빈 페인터(Nell Irvin Painter)의 책 『백인의 역사(The History of White People)』
널 어빈 페인터(Nell Irvin Painter)의 책 『백인의 역사(The History of White People)』원서(왼쪽)와 번역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미백화장품의 시장규모는 2020년 80억 달러 규모에서 2026년에는 시장규모가 1.5배 성장하여 118억 달러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이 크림 형태인 미백제품의 54%는 극동국가에서 판매되고 나머지 46%는 중동,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에서 판매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소비자의 80%는 여성이고 20%는 남성이다. 과거 사회를 지배하던 번영과 지위의 상징인 흰 피부에 대한 추구는 아직도 피부색이 사회경제적 코드를 해석하는 코드브레이커 역할로 남아있는 듯하다.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는 하얗다’라는 인식이 아직도 지배적이다.

한편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태닝 머신과 태닝 화장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백인은 햇볕에 살짝 그을린 구릿빛 피부가 건강하고 아름다워 보인다는 인식이 강해 ‘Sun-kissed’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 Fortune Business Insights’에 따르면, 세계 셀프 태닝 제품시장은 2021년 기준 약 10억 달러 규모로 오는 2029년까지 약 17억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자외선램프 기반의 태닝 서비스 분야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자외선 노출 없이 신체에 제품을 발라 태닝 효과를 주는 ‘셀프 태닝, Self-tanning’ 제품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전 세계 인구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우리가 바라는 미백과 서구에서 바라는 태닝의 정도는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갈색은 흰색을 바라고, 흰색은 갈색을 바라는 형국이다. K뷰티로 전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는 우리 화장품에 이어서 타고난 유전자와 환경을 바탕으로 갈색 피부의 건강미를 세계에 어필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격적인 여름철 휴가의 계절이다. 해를 피하기만 하지 말고 건강한 피부를 위해 적당히 가리고 40분 범위 내에서 맘껏 산책하자. 가장 아름다운 피부의 진실은 ‘미백과 태닝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것이 분명하니까.

신현재 조선대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 신현재 교수는 조선대학교 생명화학고분자공학과 교수로 효소와 탄수화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생물자원의 효율적 활용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에서 탄수화물 합성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문화원 ‘Chevening Scholarship’ 장학생으로 영국 런던에 위치한 Westminster University에서 탄수화물 화학을 공부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객원선임연구원과 효소전문기업 ㈜엔지뱅크의 대표 겸 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한국생물공학회에서 수여하는 신인학술상과 생물공학연구자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생물공학회 KSBB Journal의 편집장(Editor-in-Chief)으로 생물공학의 다양한 연구내용을 한글로 소개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2005년 국내 최초로 효소영양학을 소개한 『엔자임: 효소와 건강』을 출간하고, 2010년 효소를 이용한 질병 치유 가능성을 제시한 『춤추는 효소』를 선보였다. 2013년 ‘효소 3부작’ 마지막 편으로 『효소치료』(개정판)를 출간했다.
▶ ‘신 교수의 뷰티사이언스 서재’에서는 아름다움과 뷰티사이언스 그리고 화장품 과학에 대한 책을 소개하여 뷰티사이언스의 대중화와 일반인의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월 1회 게재.

저작권자 © THE K BEAUTY SCIEN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