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케이뷰티사이언스] 필자는 베트남에 생활하면서 베트남의 많은 문화적 요소가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았다. 신뢰는 어느 곳에서든지 중요한 요소이지만, 신뢰의 범위와 신뢰의 대상에 따라서 문화적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신뢰에 대해서 잘 보여주는 아주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있는데 바로 ‘금고(safe)’이다. 한국에서는 언제가부터 개인이 금고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신용 사회이다 보니 대부분 전산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이 금고 제품들이 여전히 많이 팔리고 있다. 대부분의 집에 금고를 가지고 있으며, 신형 금고가 계속 출시되고 있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금고 전문 상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베트남에서는 문을 열어 두고 살기도 하고, 방범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금고가 발달할 수 있다고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금고안에 보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이다. 한국 사람 기준으로 처음에는 베트남 현금이나 예물을 보관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금고의 주요 용도는 달러와 금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요즘은 많이 달라지긴 했는데, 2017년에 입사한 베트남 직원들 중에는 많은 수가 은행 통장이 없는 상태로 입사를 했다. 이후 회사에서 주는 급여를 받기 위해서 통장을 처음 개설하곤 했었다. 필자는 베트남 직원들에게 왜 은행 통장이 없냐고 질문을 하곤 했다. 이 당시에는 은행 이자가 8%대였기 때문에 아주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베트남 직원들은 반대로 나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어떻게 은행을 믿을 수 있나요? 은행이 망하면 내 돈을 다 잃어버리는 건데요.” 이때 처음으로 베트남 사람들의 은행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은행뿐 아니라 대부분의 정부 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베트남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현재 베트남 중남부의 50대들은 국가가 망해서 자신의 모든 자산이 국가에 몰수되고, 가지고 있던 현금이 휴지 조각이 된 경험을 한 세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국가와 은행에 대한 신뢰가 낮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급여일이 되면 공단이나 도심의 은행 ATM기 앞에는 긴 줄이 생긴다. 근로자들이 통장에 있는 돈을 현금으로 모두 인출하기 위한 것이다. 은행을 믿을 수 없으니 현금으로 찾아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정부가 보증한 베트남 돈(VND=동)에 대한 신뢰가 낮기 때문에 달러나 금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현재는 많은 상황들이 바뀌고 있다. 베트남 은행에 대한 고객 신뢰도가 높아지게 되었고, 은행을 통한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물건을 구매할 때 QR코드를 기반으로한 이체 서비스를 현장에서 하는 방식이 대중화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현재 스마트폰을 이용한 이체 시 고객에게는 은행 수수료가 면제된다. 또 업체 입장에서는 신용카드 사용 시 수수료가 발생하지만, 은행을 통한 이체 방법으로 결제 시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이체를 통한 결제가 활발해 질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사용해보면 QR 코드 기반이라 아주 쉽게 이체가 가능하다.
국가적인 노력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베트남은 국가의 신뢰도를 높여 국가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전략을 수립하고 다양한 정책을 선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서 은행들의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 신용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들을 다양하게 시행하고 있다. 베트남의 국가 신용도는 S&P BB, 무디스 Ba3, 피치 BB이다. 참고로 한국은 S&P AA, 무디스 Aa2, 피치 AA-이다. 국가의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은 국가의 리스크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 유치가 더 많이 될 것이고, 국가 브랜드 가치 역시 높아질 것이다. 최근 베트남 권력 서열 2위였던 응웬 쑤언 푹 국가 주석이 전격 사임한 것으로 그런 이유다. 베트남 정부는 강력한 부정부패 척결을 통해 국가 신용등급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사건은 코로나19 방역 물품 관련된 비리 사건으로 1명의 주석, 2명의 부총리, 3명의 장관, 다수의 최고위직과 수백명의 고위 공무원들이 해임되거나 구속되었다.
베트남에서도 MZ 세대들로 인한 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신뢰와 관련된 것 중 하나가 전자상거래 이용 시의 결제 수단의 변화이다. 필자가 베트남에 온 2017년에는 전자상거래를 신뢰하지 못해서 이용을 많이 하지 않았었다. 실제로 깨지는 물건들 중 20~30%가 깨지는 경우도 있었고 배송이 2주 이상 걸린적도 있었다. 이때는 제품에 대한 품질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COD(Cash on Delivery) 방식으로 물건이 도착하면 제품의 품질을 확인하고 배달원에게 현금으로 지불하는 방식을 거의 100% 사용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전자 상거래 이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젊은 MZ 세대를 중심으로 전자지갑 사용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현금으로만 지출을 하던 소비습관에서 신용카드를 건너뛰어 전자지갑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점점 더 가속화 될것으로 생각된다. 베트남의 대표 전자지갑 스타트업 기업 MOMO는 베트남의 대표 유니콘 기업중 하나이다. 앞으로 베트남 소비시장의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베트남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Chữ tín còn quý hơn vàng.’ ‘신뢰는 금(gold) 보다 여전히 귀중하다’라는 뜻이다. 베트남에서도 신뢰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일들은 모래위에 성을 쌓는 일과 동일하다. 베트남에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신뢰를 기반으로 접근한다면 반드시 좋은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된다. 절대 급하게 한국식으로 베트남을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너무나 많은 기업들이 이런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