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인간(This Is Your Brain on Parasites)』

[더케이뷰티사이언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Анна Каренин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이 글에서 ‘가정’을 ‘피부(Skin)’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좋은 피부는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트러블이 있는 피부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피부 문제는 그 이유가 너무 다양해서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피부트러블의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주요한 원인으로 미생물이 주목을 받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인 미생물이 피부 건강의 중심에서 ‘내가 진짜 원인이야’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히 나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뭘 먹을지, 무슨 옷을 입을지, 누굴 만나고, 어떤 일을 할지 내가 정한다고 생각하니까.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내 의지를 조종하는 존재가 따로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생각은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주장한 바 있다. 도킨스는 (자유의지가 아니라) 진화의 주체가 인간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이며,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 된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숙주인간》번역판, 캐슬린 매콜리프 
『숙주인간』번역판, 캐슬린 매콜리프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캐슬린 매콜리프(Kathleen McAuliffe)는 그녀의 책『숙주인간(This is Your Brain on Parasites)』에서 우리의 생각을 조정하는 미생물의 위력에 대해 놀랍도록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생각뿐만 아니라 피부를 비롯한 우리 몸의 여러 부분과 비만을 비롯한 다양한 증상의 원인을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서 찾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미생물은 어떤 하나의 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의 군집, 즉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을 일컫는다.

지난 2019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블랙코미디 서스펜스 영화인 ‘기생충(Parasite)’에서 중요 인물은 대저택에서 사는 박 사장뿐만 아니라 반 지하에 살다가 그 집으로 들어온 기택네와 대저택의 비밀통로 지하에 사는 문광의 남편인 근세 등 그야말로 기생충 형 인간들이다. 영화 기생충의 주제는 사회적 불평등과 계급투쟁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이크로마이옴에 대한 또 다른 은유다. 대저택의 주인과 그 집에 들어오고 숨어든 사람모두 사회계층의 사다리를 이루며 나름의 인생을 살고 있듯이, 우리도 우리 몸에 세 들어사는 미생물과 공생하고 있다. 2005년에는 초고속 유전자 염기서열분석기 덕분에 우리 몸에 존재하는 미생물에 대한 호구조사가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를 보면 우리 몸속에는 100조 마리 이상의 유기체가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숫자보다 10배나 많은 숫자다. 미생물 내부의 유전물질 양 또한 우리가 가진 것보다 150배 이상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의 90%는 당신이 아니다. 그래서 ‘10% Human’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쯤 되면 누가 갑(숙주)이고 누가 을(기생미생물)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하여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우리 몸을 집으로 삼아 살아가는 작은 유기체를 총칭하는 인체 마이크로바이옴은 출생의 단계에서 일차 결정된다. 이후 민족, 성별, 연령, 지리, 기후, 계절, 개인위생, 식습관, 항생제 사용 등에의한 2차적인 변화를 겪는다. 똑같은 미생물 종(Species)이라도 끊임없이 요동치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도우미가 되기도 하고 위협적인 병원균이 되기도 한다. 이 미생물이 가장 많이 존재하는 곳이 소화관인 '장(Gut)'이다. 소화관속에 자리 잡은 미생물은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을 함께 나눠먹지만 그에 대한 보답으로 소화를 돕고, 비타민을 합성하고, 우리가 삼킨 위험한 세균을 무장 해제시키기도 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감정조절 호르몬과 신경전달 물질을 생산하여 우리 몸 여기저기에 전달한다. 특히 장과 뇌는 직통도로가 뚫려있는데, 이 통로를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고 한다. 뻥 뚫린 고속도로인 '장-뇌 축'을 통해 우리의 기분과 활력을 조절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 밝혀진 새로운 도로가 '장-피부 축(Gut-skin Axis)'이다. '장-피부 축'은 장내 미생물 군집과 피부 건강 사이의 양방향 관계를 말한다. 이는 염증 매개체 및 면역 체계와 같은 여러 메커니즘을 통해 조절된다.

사실 피부미생물은 피부의 가장 바깥층인 표피(Epidermis)에 모여 있고, 대부분 세균(Bacteria)이며, 곰팡이나 바이러스의 수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미생물은 피부세포의 분화 및 재생에 기여하여 장벽기능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피부미생물의 불균형은 피부장벽기능 붕괴와 피부면역 반응의 저하를 초래한다. 이 때문에 아토피 피부염, 지루성 피부염, 여드름, 원형탈모, 건선, 피부암 등 다양한 피부 질환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장-피부 축'으로 조절되는 피부미생물 혹은 피부마이크로바이옴(Skin Microbiome)은 더욱 중요한 단어로 대두된다. 피부마이크로바이옴을 구성하는 미생물은 크게 4가지로 알려져 있다. 학자의 습관으로 적어보면 ‘엑티노박테리움(Actinobacterium)’, ‘피르미쿠테스(Firmicutes)’, ‘프로페오박테리아(Proteobacteria)’,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 등이다. 최근 피부와 미생물의 관계를 나타내는 다양한 검색어가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검색어는 피부미생물, 장벽기능(Barrier Function), 면역기능(Immune Function), 미생물불균형(Dysbiosis), 피부질환(Skin Disease), 미생물을 이용한 피부치료법(Treatment by Skin Microbiome) 등이다. 또한 마이크로바이옴 키워드가 들어간 미용제품의 추이는 최근 스킨케어 분야에서 50% 이상 증가하고 있다(자료: Mintel 2020년 12월 KOTRA).

《숙주인간》영문판, 캐슬린 매콜리프 
『숙주인간』영문판, 캐슬린 매콜리프 

중국 베이징에 사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브라질의 폭우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Bufferfly Effect)'는 카오스이론에서 다양한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지만, 미생물과 피부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어쩌면 현대 과학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은 유전자뿐만 아니라 식생활이 우리의 장내 세균을 변화시키고 이 장내세균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만든다는 것이다. 장내세균은 우리의 행동과 의식 그리고 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 우리의 식탐과 비만과의 전쟁의 결과로 아군 혹은 적군을 양성할 수도 있고, '장-피부 축'을 통해 우리 피부를 지배하는 미생물을 변화시켜 결국 피부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

영국의 프로그래시브 록 밴드인 예스(Yes)의 1983년 히트곡 ‘Owner of a Lonely Heart’에서 말한 외로움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고 마이크로바이옴이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히 내 피부의 주인은 숙주인 내가 아니다. 그럼 누구?

신현재 조선대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 신현재 교수는 조선대학교 생명화학고분자공학과 교수로 효소와 탄수화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생물자원의 효율적 활용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에서 탄수화물 합성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문화원 ‘Chevening Scholarship’ 장학생으로 영국 런던에 위치한 Westminster University에서 탄수화물 화학을 공부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객원선임연구원과 효소전문기업 ㈜엔지뱅크의 대표 겸 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한국생물공학회에서 수여하는 신인학술상과 생물공학연구자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생물공학회 KSBB Journal의 편집장(Editor-in-Chief)으로 생물공학의 다양한 연구내용을 한글로 소개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2005년 국내 최초로 효소영양학을 소개한 『엔자임: 효소와 건강』을 출간하고, 2010년 효소를 이용한 질병 치유 가능성을 제시한 『춤추는 효소』를 선보였다. 2013년 ‘효소 3부작’ 마지막 편으로 『효소치료』(개정판)를 출간했다.
▶ ‘신 교수의 뷰티사이언스 서재’에서는 아름다움과 뷰티사이언스 그리고 화장품 과학에 대한 책을 소개하여 뷰티사이언스의 대중화와 일반인의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월 1회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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