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케이뷰티사이언스] 베트남의 대표 음식은 누가 뭐라해도 쌀국수이다. 한국에서는 ‘포’라고 발음하는데 실제 발음은 ‘퍼(‘Phở)’이다. 베트남 쌀국수는 특유의 소고기 국물의 깊은 맛과 쌀로 만들어진 음식이라 몸에 더 좋다는 ‘웰빙’ 트렌드를 타고 큰 사랑을 받고 있지만 쌀국수가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배경에는 전쟁과 분단의 역사가 있다.

이런 사연이 있는 베트남 쌀국수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00여년 전 베트남 북부의 항구가 있는 남딘성 부두 노동자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고기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은 것이 쌀국수의 시초라고 한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음식은 당시 베트남을 지배하고 있는 프랑스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퍼’의 국물을 낼 때 사용되는 구운 양파와 생강을 활용하는 레시피는 프랑스의 야채수프인 ‘뽀오페(Pot au feu)’의 레시피와 동일하고,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이러한 조리법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프랑스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두 요리의 발음이 발음이 아주 유사하다.

베트남 오리지널 쌀국수는 소고기 뼈로 국물을 우려내고, 소고기 고명을 올려서 먹는 음식이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소고기는 상당히 비싼 식재료였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주로 먹던 쌀국수에는 소고기 고명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농업 국가였던 베트남에서 소고기는 노동자들이 쉽게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소고기를 활용한 음식제조는 분명히 프랑스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베트남 소고기 쌀국수 ⓒhttp://www.insidevina.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88
베트남 소고기 쌀국수 ⓒhttp://www.insidevina.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88

하지만 소고기를 활용하거나 야채를 볶아서 국물을 내는 방식이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지 쌀국수 면 자체가 프랑스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언제인지 정확한 기원은 알수 없지만 쌀국수는 아주 오래전부터 베트남에서 내려오던 음식문화였다. 서기 1000년 경 중국에서 농작물과 식품이 베트남에 전래되는데, 이때 중국의 밀가루 면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웬 왕조는 1802년 현재의 베트남과 거의 유사한 국경을 확보한 통일 왕조를 이루었는데, 수도가 기존의 수도였던 하노이가 아닌 중부의 후에(Hue)였다. 따라서 후에의 서민 음식이 소박한 궁중 음식이 되었는데, 대표적인 음식이 ‘분보후에(Bun Bo Hue)’이다. 즉 현재의 쌀국수가 대중화 되기 이전부터 이미 베트남에는 쌀국수를 음식으로 만드는 전통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분보후에(Bun Bo Hue) ⓒhttp://www.insidevina.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88
분보후에(Bun Bo Hue) ⓒhttp://www.insidevina.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88

쌀국수가 북부에서 대중적인 음식으로 인기가 있게 되었고, 1950년 남부 지역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부 지역에도 쌀국수가 퍼지게 되면서 베트남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남부는 북부와는 다른 요리법이 적용된 쌀국수가 많다. 소고기 대신 생선이나 새우 등을 넣은 해산물 쌀국수도 있고, 많은 야채들과 소스들을 추가하여 먹곤 한다.

1954년 제네바 협약으로 북부지역이 월맹 공산 정권이 수립되고 프랑스군은 북위 17도선 이남으로 철군을 하면서 많은 사람이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이유로 남하하거나 해외 망명을 신청하게 되었다. 이후 1975년 월남이 패망하면서 수 백만의 보트 피플이 목숨을 걸로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분단과 전쟁의 아픔으로 해외로 나간 베트남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음식점을 차려 ‘퍼’를 팔기 시작하였고, 이 쌀국수가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게 되었다. 팔자가 쌀국수를 처음 먹은 것은 2004년인데 한국도 베트남도 아닌 미국에 있는 베트남 타운에서였다. 아직도 그때 맛본 감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 쌀국수가 유명하지만 베트남에는 쌀국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다양한 국수 종류의 음식이 존재한다. 국수 제조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먼저 압면 방식은 반죽을 구멍이 뚫린 틀에 넣고 밀어서 끓는 물에 삶아 국수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국수를 베트남에서는 ‘분(Bun)’이라고 한다. 보통 이러한 ‘분’은 베트남 동네의 재래시장이나 길거리에서 아침마다 아주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하분 방식으로 밀가루를 가열판 위에 얕고 넓게 펴서 익힌 후 잘라서 만드는 국수 제조 방법이다. 이러한 제조 형태는 퍼(Pho)와 미꽝(Mi Quang) 같은 국수의 제조 방식이다. 우리나라 음식과 비교하면 칼국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아직 한국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베트남에는 두껍고 쫄깃한 면인 반깐(Banh Canh), 얆은 쌀면으로 분과는 다른 식감의 후띠에우(Hu Tieu), 굵고 넓적한 갈색빛 면인 반다(Banh Da) 등 다양한 종류의 면이 있다.

한국과 베트남 모두 쌀 문화권이지만 쌀을 활용하는 방식은 달랐던 것 같다. 한국은 쌀을 활용한 떡이나 식혜와 같은 주식이 아닌 식품이 발달하였지만, 베트남에서 쌀을 활용하여 국수나 라이스 페이퍼와 같이 주식의 한 형태로 활용되었다. 한국은 해초를 이용한 ‘김’이 세계적인 음식이라면 쌀을 이용한 라이스 페이퍼는 베트남의 아주 자랑스런 전통 음식이 되었다. 베트남에서 판매되는 라이스페이퍼는 여러 종류가 있다. 두께와 제조 형태에 따라 다양하고, 라이스 페이퍼를 단순하게 음식을 싸먹는 용도가 아닌, 요리의 재료로 사용한 예도 많다. 예를 들어 라이스 페이퍼를 구워서 먹기도 하고, 피자의 도우와 같이 활용하여 베트남 스타일 피자를 만들기도 한다. 또는 라이스 페이퍼를 잘라서 각종 양념과 섞은 비빔 라이스 페이퍼 요리인 반 짱 쫀(Banh Trang Tron)도 있다.

라이스 페이퍼를 활용한 음식 반 짱 쫀 ⓒhttps://www.bachhoaxanh.com/kinh-nghiem-hay/banh-trang-tron-qua-dem-co-an-duoc-khong-1308176
라이스 페이퍼를 활용한 음식 반 짱 쫀 ⓒhttps://www.bachhoaxanh.com/kinh-nghiem-hay/banh-trang-tron-qua-dem-co-an-duoc-khong-1308176

베트남은 이러한 쌀을 활용한 다양한 음식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발달 배경에는 베트남이 쌀을 주식으로하는 생활권이며, 다른 지역보다 쌀 생산량이 풍부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베트남에서 쌀 생산량이 갖는 의미는 국가를 유지하며, 민중들이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2020년 기준 전세계 쌀 생산량은 7억 5674만톤이였다. 쌀 생산량기준 1위는 중국, 2위는 인도, 3위는 방글라데시아, 4위는 인도네시아, 5위가 베트남이다. 2020년 베트남의 쌀 생산량은 4275만톤으로 전세계 쌀 생산량의 5.6%를 차지했다. 대한민국은 18위로 471만톤을 생산했다. 이는 베트남 생산량의 11% 정도 수준이다. 생산량 차이가 나는 이유는 베트남이 한국보다 재배 면적이 큰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베트남은 1년에 쌀 생산을 2번에서 3번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재배 면적대비 많은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풍부한 쌀 생산 조건을 가진 베트남은 축복의 땅임이 분명하다. 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쌀을 생산하는 지역은 가장 비옥한 땅을 가진 메콩강 삼각주가 있는 지역으로 이 지역 생산량은 베트남 전체의 50%가 넘는다. 베트남 1등 쌀 생산 지역인 끼엔장 성은 2019년 한 해 동안 430만톤을 생산하여, 대한민국 전체 쌀 생산량에 육박하는 쌀을 생산하고 있다. 대한민국 면적은 약 10만km²이지만, 끼엔장 성은 6300km²로 한국의 6.3%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엄청난 양의 쌀을 생산하고 있으니, 이곳이 ‘베트남의 밥 그릇’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지는 것이 아주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의 끼엔장성 ⓒhttps://vi.wikipedia.org/wiki/Ki%C3%AAn_Giang
베트남의 끼엔장성 ⓒhttps://vi.wikipedia.org/wiki/Ki%C3%AAn_Giang

이러한 쌀 생산을 위한 최적의 자연 조건을 가진 베트남이지만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 정책과 월남전을 포함한 계속되는 전쟁은 베트남 국민들을 자급 자족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1975년 통일후에도 공산주의 집단 농장은 낮은 운영 효율성으로 자급자족이 힘든 상황이었다. 도이머이 정책이 시행되기 전 1980년에는 생산량 1164만톤으로 이는 2020년 생산량의 27.2% 수준이다. 하지만 도이머이 정책이후인 1990년에는 1922만톤으로 1980년대비 65.1% 증가하였고, 10년후인 2000년에는 3252만톤으로 1980년대비 279% 증가하였다. 1998년에 베트남은 이미 370만톤의 쌀을 수출하여 세계 쌀 수출국 2위가 되었으며, 지금도 베트남은 풍부하게 생산되는 쌀을 적극적으로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자급자족을 넘어 해외 쌀 수출국 2위가 된 베트남의 자국 내 쌀 소비량은 점점 감소하는 대신 밀의 소비량이 증가하고 있다. 밀은 베트남에서 재배가 되지 않기 때문에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밀은 빵이나 과자, 라면 등의 주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식생활의 변화는 비만, 당뇨 등의 사회적 문제가 증가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20년 베트남 보건부가 25개 지역 2만24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19세 아동과 청소년 중 비만이거나 과체중 비율은 100명 당 19명으로 지난 2010년 8.5명에서 2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러한 아이들과 청소년이 성인이 되었을 때 발생할 사회적 문제가 예측되기 때문에 베트남 정부에서도 아이들과 청소년의 비만율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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