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교수의 뷰티사이언스 서재

[더케이뷰티사이언스] 새해(new year)란 항상 결심의 시간이다. 친구들은 담배와 술과 몸 여기저기에 붙은 살과 헤어질 결심을 하곤 한다. 물론 일주일 혹은 길어야 한 달을 넘기기 어렵지만 말이다. 나는 2023년 1월부터 아름다움과 뷰티 관련 책을 열심히 읽을 결심을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더케이뷰티사이언스에 실릴 독후감 칼럼을 연재하기로 했다. 그러니 열심히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작년 한국생물공학회 가을학회에서 편집장님과 간단히 이야기 나누고 나서 잊고 있었던 연재 첫 원고의 시간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 고민 끝에 독자들과 같이 읽었으면 하는 첫 번째 책으로 옐 아들러(Yael Adler)의 『매력적인 피부여행』을 정했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간단하게 피부과 의사이고 여러 책을 저술한 작가였다. 이 책의 원 제목은 『Haut Nah』인데 독일어로 ‘밀착’, ‘친숙’의 의미다. 과학용어로는 ‘피하(皮下, under the skin 혹은 subcutaneous)’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참 절묘하다. 피부 밑이 친숙하다고 감정에 직접 호소하다니. 피부 밑은 지방이 많이 있고 조금은 비밀스럽고 보여주기 싫은 부분인데, 이 부분을 서로 부딪치고 나누는 사이라면 친근할 만도 하다. 아들러 박사는 피부를 건물에 비유하여 위로 지은 건물이 아닌 아래로 지어진 멋진 건축물이라고 정의하고, 피부의 아름다움과 기능을 기분 좋게 파헤친다.

사실 상식을 깨는 일은 늘 어렵고 두렵다. 기존 지식의 틀을 깨야 한다는 면에서 어렵고, 힘들게 이룬 생각과 결과가 대중의 버림을 받는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아들러 박사는 피부를 지하실로 멋지게 표현하였지만, 또 다른 분야인 건축에 있어서 기존 상식을 깨고도 성공적인 경우가 있다. 건물을 올리는 것을 땅위에 짓는 다는 상식에서 벗어나 땅 밑으로 건물을 짓고 전체 대지를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 말이다. 광주에 소재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재미 건축가 우규승(1941~ )의 ‘빛의 숲’을 모티브로 해서 지어졌고, 이화여자 대학교의 캠퍼스 콜플렉스 ECC는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Ferrault, 1953~ )의 캠퍼스 밸리에서 그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 이 두 건물은 땅 위가 아닌 지하로 멋진 건축의 신세계를 펼치고 있다. 물론 인간의 건축이 오랜 기간 진화해 온 피부의 설계구조와 기능을 따라가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우리 몸을 이루는 단백질과 다양한 조직의 모양과 구조(structure)는 기능(function)과 깊은 관계를 이루고 있다. 모양이 기능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효소가 그렇고 콜라겐 섬유가 그렇고 멜라닌 색소가 그렇다. 우리 피부의 지하구조는 표피(지하 1층), 진피(지하 2층), 피하조직(지하 3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분이 하는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우리의 상식을 깨는 깨알 같은 에피소드가 도처에 흩어져 있다. 자, 퀴즈를 하나 내보겠다. 우리 몸의 장기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장기는? 정답은 피부다. 맞추는 분들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서 우선 축하의 박수를 먼저 보낸다. 다음 퀴즈는 맨 트레일링(냄새 쫓는 개, man trailing) 개는 사람의 어떤 냄새를 따라갈까? 정답은 비듬냄새라고 한다. 사람의 체취 가운데 구취나 암내 등이 아니고 비듬이다. 우리 두피는 한 사람당 1분에 4만개에 달하는 비듬을 만들어 낸다. 파스리트 쥐스킨트(Patrick Suskind, 1949~ )의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은 사람의 살 냄새를 체취하려고 살인을 저질렀는데, 그렇다면 사람을 죽일 필요 없이 두피에 붙은 비듬을 채취하면 될 일 아닌가? 그리고 피부의 색을 결정하는 멜라닌을 ‘신체 내장형 선크림’이라고 표현한 구절에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피부색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알던 상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까만 피부든 하얀 피부든 멜라닌 세포수는 같고, 단지 멜라닌의 생산력이 다를 뿐이라고 한다. 까만피부는 혼자서 멜라닌 세포입자를 600개나 생산하지만 하얀 피부의 세포에 혼자서 멜라닌을 고작 2~12개 생산하는 데 그친다. 표피 아래에 존재하는 기저세포 10~12개에 손가락 모양의 멜라닌 세포 하나가 끼어 있을 뿐이다. 몸 피부에는 1㎟당 900~1500개, 얼굴에는 2000개, 음부에는 2400개, 발바닥과 손바닥에는 100~200개 라고 한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몸 속(피부) 어디엔가 백옥같은 피부가 있는 게 틀림없다.

옐 아들러 지음/배명자 번역/카트야 슈피처 그림/와이즈베리 펴냄/372쪽/1만5000원
옐 아들러 지음/배명자 번역/카트야 슈피처 그림/와이즈베리 펴냄/372쪽/1만5000원

이 책에서는 피부(skin)를 이루는 소기관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많은 어휘가 쉴새 없이 등장한다. 점, 기미, 물집, 상처, 흉터, 딱지. 켈로이드, 튼살, 수문, 림프, 마이스너 소체, 자율신경종말, 호문쿨루스... 일찍이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어휘를 읽고 소리 내 말하는 행위야 말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의 확장을 의미한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나누는 행위야말로 인간의 사유의 확장에 더할 나위 없는 핵심이다. 서양 어휘에도 피부와 관련된 재미있는 표현이 많다. 영어단어 skin이 들어간 예로 redskin은 아메리카인도인을 wineskin은 술고래를 skinny는 바짝 마르고 야위었다는 의미를 가리키고(영국가수 Birdy가 부른 skinny love를 들어보라. 좋다!) skindeep은 피상적이라는 뜻을 가진다.

피부와 관련한 지식은 피부세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식사나 간식으로 피자(pizza)를 즐겨먹지만 모공주변에 사는 효모(yeast)인 말라세지아 퍼퍼(Malassezia furfur)는 피지(sebum)를 주식으로 한다. 이 미생물은 곰팡이 감염, 특히 지루성 피부염과 백선 등 다양한 피부질환과 관련이 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고, 생태계에서 다른 생물과 돕고 살아야 하는 공생의 존재다. 피부에 살고 있는 수많은 미생물을 보면 우리가 혼자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준다. 이 책은 우리의 피부가 딱딱한 보도블록과 비슷하고, 이곳에는 애무도, 파티도, 포옹도 없이 오로지 치열한 전투만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바이러스, 효모, 진드기, 박테리아로 이루어진 라이벌 조직과 갱단이 끊임없이 서로를 괴롭히고 방해하고 있다. 실로 다이나믹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다. 사실 미생물은 우리의 몸 곳곳. 그러니까 피부, 입, 음부와 항문주변 그리고 대장에 서식하는데, 그 수는 전 세계 인구의 수천 배에 달한다. 그리고 피부 미생물에 비하면 장 미생물은 새발에 피다. 피부를 지키는 문지기 미생물은 해로운 불청객을 쫓아내는 방어무기인 항생물질을 생산하고, 면역체계를 단련시키는 교관구실도 한다. 이런 미생물이 없으면 우리는 아마 무방비 상태로 축 늘어져 있는 세포더미에 불가할 것이다. 자주 사용하는 항균제는 손을 씻어 중요한 미생물까지 덩달아 죽이고, 제왕절개가 아기의 피부에 건강한 미생물이 자리 잡는 것을 방해하는 이유가 아기가 엄마의 질을 통과해 나오지 않는 까닭이라는 이야기도 신선하다. 사실 그 이유는 면역체계를 위한 엄마의 첫 번 째 선물인 소중한 박테리아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피부의 진짜 주인은 아닐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이거든” 이라는 어린왕자의 구절이 우리 피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매력적인 피부여행』은 생명의 보호벽인 피부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과학, 문학, 예술, 역사라는 재료로 잘 버무려 놓은 성찬이다.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생활에 적극 활용할 만한 바디케어 습관, 외모를 위한 필러와 히알루론산의 진실, 생식기 피부와 관련된 구체적인 팁들, 피부에 좋고 나쁜 음식의 선별, 피부질환과 음식, 정신건강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실로 넓다. 어쩌면 우주보다 더 복잡한 피부의 세계에 정신이 혼미해지기까지 한다. 금방 쉽게 읽을 것으로 알았던 이 책을 다 읽는데 그 내용만큼이나 충분한 시간을 온전히 투자해야 했다. 마치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라고 말하는 듯하다. 다음 칼럼을 준비하며 눈에 힘을 주면서 올 한해 좋은 책과 헤어지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해본다.

신현재 조선대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 신현재 교수는 조선대학교 생명화학고분자공학과 교수로 효소와 탄수화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생물자원의 효율적 활용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에서 탄수화물 합성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문화원 ‘Chevening Scholarship’ 장학생으로 영국 런던에 위치한 Westminster University에서 탄수화물 화학을 공부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객원선임연구원과 효소전문기업 ㈜엔지뱅크의 대표 겸 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한국생물공학회에서 수여하는 신인학술상과 생물공학연구자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생물공학회 KSBB Journal의 편집장(Editor-in-Chief)으로 생물공학의 다양한 연구내용을 한글로 소개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2005년 국내 최초로 효소영양학을 소개한 『엔자임: 효소와 건강』을 출간하고, 2010년 효소를 이용한 질병 치유 가능성을 제시한 『춤추는 효소』를 선보였다. 2013년 ‘효소 3부작’ 마지막 편으로 『효소치료』(개정판)를 출간했다.
▶ ‘신 교수의 뷰티사이언스 서재’에서는 아름다움과 뷰티사이언스 그리고 화장품 과학에 대한 책을 소개하여 뷰티사이언스의 대중화와 일반인의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월 1회 게재.

저작권자 © THE K BEAUTY SCIEN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