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교수(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이동욱 교수(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 논문명: Rates of cavity filling by liquids

∙ 미국 UC산타바바라 연구진과 공동으로 진행

∙ 교신저자 이동욱 교수(울산과학기술원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신진연구사업’ 지원  

 

 

땀구멍이 있는 피부처럼 거친 표면에 액체가 스며드는 속도를 연구한 결과가 나왔다. 화장품을 만들거나 페인트를 칠하는 효과적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총장 정무영)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이동욱 교수가 ‘공극(孔隙, cavity)’이 있는 표면에 액체가 스며드는 속도’를 연구해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7월 19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공극은 작은 구멍이나 빈틈을 이르는 말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입구 부분이 좁고, 내부의 폭이 넓은 오목한 형태의 공극이 있는 표면을 이용했다. 이번 연구는 액체가 공극 속까지 완벽하게 스며드는 속도에 영향을 주는 다섯 가지 변수를 제시한 게 핵심이다. 다섯 변수는 고체(표면)의 화학적 성질과 구조, 액체 속 용존공기량과 계면활성제의 종류, 액체의 휘발성.

이동욱 교수는 실리콘에 ‘오목한 공극’을 만들어 거친 표면을 생성하고, 물속에 담가 젖는 속도를 관찰했다. 오목한 공극은 마치 땀구멍처럼 입구가 좁고 내부 폭이 넓은 형태다. 오목한 공극을 가진 실리콘 표면에 물이 닿으면 처음에는 공기 위에 떠 있는 상태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아랫부분까지 채워진다. 이는 카시-박스터/웬젤 전이(Cassie-Baxter to Wenzel transition)다. 즉, 거친 표면 위에 물방울이 떨어졌을 때 물방울이 공극을 다 채우지 못하고 표면 위에 떠 있는 상태(Cassie-Baxter state)에서 물방울이 빈틈까지 완전하게 채운 상태(Wenzel state)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관찰 결과, 실리콘 표면과 액체의 상태에 따라 젖는 속도가 달라졌다. 액체가 물(water)일 경우, 실리콘 표면이 물을 좋아하는 성질(친수성)이 강할수록, 또 공극의 입구가 넓은 형태이거나 아랫부분이 서로 연결되는 구조일수록 젖는 속도가 빨랐다. 또 물속 용존공기량이 적을수록 실리콘 표면이 빨리 젖었고, 휘발성이 강한 액체가 실리콘 표면에 더 빨리 스며들었다. 어떤 계면활성제를 녹이느냐에 따라서도 젖는 속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이 교수는 “이번 결과는 목적에 따른 화장품 제조에 응용할 수 있다”며 “모공을 가리는 목적이 있는 ‘모공프라이머’ 또는 땀구멍 속까지 들어가 피지를 제거하는 ‘세안제’는 용존공기량을 줄여야 빠른 속도로 모공 안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자외선 차단제를 비롯한 색조 화장품은 땀구멍을 막지 않아야 피부 건강에 유리하다. 이들이 모공에 쌓이면 피부 호흡을 방해해 염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세안제와 반대로 화장품 속 용존공기량을 늘리고, 화장품 자체의 휘발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조하는 게 좋다.

이 교수는 “화장품뿐 아니라 건물에 녹이 쓸지 않도록 페인트를 칠하거나, 가구를 보호하는 코팅 처리처럼 생활 속에는 ‘거친 표면에 액체를 바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연구는 표면에 액체를 더 잘 스며들게 할지, 반대로 덜 스며들게 할지를 조절할 수 있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의 물질을 미세한 수준에서 관찰하면 거친 표면을 가지고 있다”며 “이런 거친 표면과 액체가 만나서 나타나는 표면과학을 연구하면 실생활은 물론 다양한 연구 분야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미국 UC산타바바라 연구진과 공동으로 진행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신진연구사업’에서 지원을 받았다.

그림1. 카시-박스터/웬젤 전이(Cassie-Baxter to Wenzel transition): 거친 표면 위에 물방울이 떨어졌을 때 물방울이 공극(cavity)까지 채우지 못하고 표면 위에 떠 있는 상태(Cassie-Baxter state)에서 물방울이 공극까지 완전하게 채운 상태(Wenzel state)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왼쪽 그림이 카시-박스터 상태, 오른쪽 그림이 웬젤 상태다.
그림1. 카시-박스터/웬젤 전이(Cassie-Baxter to Wenzel transition): 거친 표면 위에 물방울이 떨어졌을 때 물방울이 공극(cavity)까지 채우지 못하고 표면 위에 떠 있는 상태(Cassie-Baxter state)에서 물방울이 공극까지 완전하게 채운 상태(Wenzel state)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왼쪽 그림이 카시-박스터 상태, 오른쪽 그림이 웬젤 상태다.

 

◆연구배경

표면이 액체에 젖거나(wetting) 젖지 않는(dewetting)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는 레드 오션(red ocean)이라 할 만큼 주목받고 있다. 물을 강력하게 튕겨내는 성질인 ‘초발수성(superhydrophobic)’이나 물에 젖어도 물방울이 생기지 않고 얇은 막을 형성하는 성질인 ‘초친수성(superhydrophilbic)’, 이물질이 묻어도 스스로 털어버리는 ‘자가세척(self-cleaning)’ 표면 등으로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특히 액체와 고체가 접촉하는 경계면이 있는 거의 모든 연구에서 젖음(wetting) 현상은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표면이 얼마나 물을 잘 받아들이는지 나타내는 습윤성(wetting property)은 일반적으로 ‘접촉각’을 측정해서 파악한다. 표면과 액체가 접촉한 각도를 측정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연구에서는 물방울을 떨어트리고 30초 이내의 초기 접촉각만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방울과 표면의 접촉각은 시간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표면과 물방울의 접촉각이 변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카시-박스터/웬젤 전이(Cassie-Baxter to Wenzel transition)’가 꼽힌다. 즉, 물방울이 거친 표면 위에 공극(孔隙, cavity)을 채우지 못하고 떠 있는 상태(Cassi-Baxter state)에서, 물방울이 공극을 가득 채운 상태(Wenzel state)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액체와 고체의 성질에 따라, 카시-박스터/웬젤 전이의 속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직접 측정하고 분석했다.

그림2. 오목형 공극(reentrant cavity): 공극의 입구 부분이 내부 폭보다 좁은 상태를 가지는 구멍의 구조를 말한다. 이번 실험에서는 포토리소그래피 기술을 이용해 표면에 오목형 공극을 형성했다.

 

◆연구내용

이번 연구에서는 포토리소그래피(photolithography) 기술을 이용해 오목형 공극(reentrant cavity, 그림2 참조)을 무늬로 가진 실리콘 표면을 제작했다. 실리콘은 물을 좋아하는 성질인 친수성을 가지는데, 여기에 구멍의 입구 부분이 안쪽보다 좁은 오목형 공극을 규칙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든 실리콘 표면이 물 같은 액체에 닿으면, 공기 위에 액체 방울이 뜨는 카시-박스터 상태가 만들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극 속으로 액체가 스며들면서 웬젤 상태로 변하게 된다.

포토리소그래피는 반도체 웨이퍼 위에 감광 성질이 있는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를 얇게 바른 후, 원하는 마스크 패턴을 올려놓고 빛을 가해 사진을 찍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마이크로 사이즈(micro size)의 패턴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오목형 공극 무늬를 가진 실리콘을 물속에 담가놓고, 공극(cavity)으로 물이 들어가는 현상을 저배율현미경과 동일초점현미경을 사용해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이때 5가지 변수가 카시-박스터/웬젤 전이의 속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5가지 변수는 ①고체 표면의 화학(chemistry), ②액체 속의 용존 공기량, ③액체의 휘발성, ④액체에 녹아있는 계면활성제의 종류, ⑤공극(孔隙)의 구조 등이다.

측정 결과, ① 액체가 닿는 고체 표면이 물을 좋아하는 성질이 강할수록 카시-박스터/웬젤 전이의 속도가 빨랐다. 표면이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공극 속으로 액체가 빠르게 침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② 액체 속에 녹아 있는 공기량이 많으면, 공극에 액체가 들어가는 속도가 느려졌다. 액체 속에 녹아 있는 공기가 적을 때 공극 속 공기를 흡수하려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③ 액체의 휘발성이 강하면 공극이 더 빠르게 채워졌고, ④ 물속에 녹아 있는 계면활성제의 종류에 따라서도 공극이 완전히 액체로 채워지는 시간이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⑤ 공극의 구조를 바꾸는 것으로도 공극 속에 액체가 채워지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공극의 입구 부분을 내부보다 넓게 만들거나, 공극들 사이에 있는 벽을 터줬을 경우 공극이 더 빨리 채워졌다.

◆기대효과

녹이 쓸지 않도록 방청(防錆, Rust Prevention) 페인트를 칠하거나, 가구를 보호하기 위한 코팅용 도료인 바니쉬(Varnish)를 칠할 때, 피부에 세안 크림을 바를 때는 액체가 틈의 안쪽까지 잘 들어가길 바란다. 반면 일반적인 화장품을 바를 때에는 화장품이 땀구멍까지 막는 걸 바라진 않으며, 가구에 물이 떨어졌을 경우에도 빈틈 사이로 스며드는 걸 막아야 가구가 썩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특정 표면 자체의 구조나 표면 에너지, 그리고 접촉된 액체의 여러 물리적 특성에 따라 액체가 고체 표면의 틈 사이로 스며드는 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정성적/정량적으로 측정했다. 이로써 액체(화장품, 페인트 등)를 제작하거나 고체 표면을 처리할 때, 목적에 따라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할지 요소들을 잘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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