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구 한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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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케이뷰티사이언스]  필자는 학창시절 특별히 동물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TV에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나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같은 동물 프로그램이 나오면 재미있게 보곤 했다. 당시 한 가지 의아했던 것은 제작자들이 사자, 표범에게 잡아먹힐 위기 상황에 몰려있는 얼룩말 같은 약한 동물을 촬영하면서도 왜 그 동물을 도와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야 야생에서는 약육강식의 먹이 사슬에 따라 동물이 서로 먹고 먹히며, 적자생존 법칙에 따라 살고 죽는 것이 자연스럽고, 다만 촬영자들은 관찰자로서 야생 생태를 화면에 담아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생 동물은 포식자로서 또는 피식자로서 자신을 보호하고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적응방법을 찾아낸다. 지금까지 지구 상에 존재하는 야생종은 계속적인 적응 과정을 통해 생존해왔다. 어쭙잖게 인간이 개입하는 것은 오히려 생태계의 야생성을 해친다. 그러면, 혹시 우리가 야생 동물의 생존에 직접 개입하지 않더라도 생존을 위한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면 교훈1과 지식, 특히 화장품 개발에 활용할만한 지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의문에 답이 될만한 학문의 세계가 있다.

야생동물의 자가 치료 ‘Zoopharmacognosy’

동물의 세계를 깊이 관찰하는 생태학자들은 야생 동물들이 본능이나 학습된 행동을 통해 기생충, 해충, 급만성 통증 등 질병에 대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동물의 자가 치료(self-medication) 과정을 관찰하고 과학적으로 증명해내는 학문이 있는데, 이를 주파마콜러지(zoopharmacognosy)2라고 부른다. 페루 남동부 저지대에서 탐보파타 마코 프로젝트(Tambopata Macaw Project)를 주도한 텍사스 주립대학교(Texas A&M University) 도널드 브라이트스미스(Donald Brightsmith) 박사는 식이보충제로 진흙을 먹는 마코(Macaw)와 다른 종의 앵무새를 연구했다. 그 결과 연구자들은 초식동물의 특성 상 부족하기 쉬운 나트륨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3

생태학자 홀리 더블린(Holly Dublin) 박사는 케냐의 차보(Tsavo) 국립공원의 임신한 코끼리가 평상시에는 먹지 않던 나무를 찾기 위해 수 마일을 여행하는 것을 관찰했고, 이 코끼리는 4일 후 새끼를 낳았다. 더블린은 케냐 여성들이 분만을 유도하기 위해 같은 나무의 잎과 껍질로 음료를 만드는 것을 발견했다. 현재 교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마이클 허프만 (Michael Huffman) 박사는 1987년 탄자니아에서 갓 영장류 연구를 시작하던 때, 침팬지 한 마리가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나무즙을 먹는 것을 보게 되었다. 허프만 박사는 식물의 성분 분석과 식물 섭취 전·후 침팬지 대변 속 기생충 알 관찰을 통해 그 식물에 독성이 있지만 기생충을 박멸할 수 있는 구충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연구를 도와주던 현지인은 이 지역 사람들도 복통이나 기생충에 감염됐을 때 그 나무를 약으로 먹는다고 알려주었다.4 허프만 박사 이외에도 우간다에서 영장류를 연구한 프랑스 사브리나 클레어브(Sabrina Krief) 등 다양한 연구자들이 아프거나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는 침팬지의 식사습관을 추적하고 대·소변 샘플을 수집하는 연구를 수행하여, 이들이 특정 식물 복용을 통해 위장 장애나 기생충 질환을 해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5

위장관 이상이 있는 침팬지가 먹는 Albizia※ 출처: CNRS NEWS, ⓒ J.-M. KRIEF
위장관 이상이 있는 침팬지가 먹는 Albizia※ 출처: CNRS NEWS, ⓒ J.-M. KRIEF
고르곤 산호에 몸을 비비는 큰돌고래※ 출처: BBC Blue Planet II
고르곤 산호에 몸을 비비는 큰돌고래※ 출처: BBC Blue Planet II

동물들은 치료를 위해 약이 되는 식물을 먹을 뿐 아니라, 피부 표면에 바르기도 한다. 영국 엑스터 대학의 영장류 학자 헬렌 모로그 버나드(Helen Morrogh-Bernard) 박사는 보르네오 오랑우탄이 식물의 잎을 씹는 것을 관찰했다. 오랑우탄은 비누 거품처럼 될 때까지 잎을 씹은후 내뱉고 사람이 국소 통증 완화제를 바르듯이 거품을 사용했다. 주변 원주민들은 이 잎을 갈아서 근육통과 염증을 치료하는 진통제를 만들었는데, 모로그 버나드 박사는 원주민들이 원숭이로부터 이 치료법을 배워 전승해왔다고 믿고 있다.6 또,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돌고래 연구자인 안젤라 질트너(Angela Ziltener)에 따르면 홍해(Red Sea) 의 큰돌고래(bottlenose dolphin) 는 바깥쪽이 항균성 점액층으로 덮인 덤불 같은 고르곤 산호를 몸에 비벼서 감염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고 주장했다.7 이처럼 새, 코끼리부터 영장류, 돌고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의 자가 치료를 목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곤충들도 자가치료를 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최근 새로운 신약을 찾는 기업은 신약 발굴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이 연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동물의 자가치료에서 모티브를 얻은 화장품

흥미롭게도 우리가 잘 아는 아래의 화장품 브랜드는 동물의 자가치료 관찰로부터 출발했다.

말의 피부 치료 - 프랑스 온천수 Eau Thermale 브랜드 아벤느, 라로슈포제프랑스의 대표적인 온천인 라로슈포제와 아벤느는 말이 스스로 피부를 치료하는 것을 관찰한데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14세기 말 프랑스군 총사령관이었던 베르트랑 게를랭의 말이 스페인에서의 심한 전투에서 상처를 입은 후 라로슈포제 온천수가 있는 곳에 몸을 담그고 나서 피부 손상이 개선되는 것을 보고 그 효능을 처음 발견하였으며, 19세기 나폴레옹에 의해 전쟁 참전 군인들의 피부 손상을 개선하기 위해 이곳에 온천수 시설이 설립된다. 이 시설이 20세기 초에 이르러 프랑스 정부가 공인한 피부과학 온천센터로 자리잡게 되고, 이후 온천수를 활용한 화장품이 만들어지기 시작, 1975년 현재의 라로슈포제 브랜드가 탄생한다. 아벤느 역시 시기만 조금 다를 뿐, 유사한 유래를 갖고 있다. 약 280년전인 1736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가려움증을 앓던 로코젤(Rocozel) 후작의 말은 어느날 아벤느 온천수 샘에 몸을 뒹굴며 목욕을 한 후 완화되었다. 이후 온천수의 진정 및 자극 완화 효과가 밝혀지고, 이곳의 온천을 인수한 피에르 파브르 그룹에 의해 오떼르말 아벤느 (Eau Thermal Avene) 브랜드가 탄생한다.

아벤느 브랜드 스토리–로코젤 후작의 말※출처: 아벤느 YouTube 채널
아벤느 브랜드 스토리–로코젤 후작의 말※출처: 아벤느 YouTube 채널
시카페어 브랜드 스토리–라오스 호랑이풀※출처: 닥터자르트 홈페이지
시카페어 브랜드 스토리–라오스 호랑이풀※출처: 닥터자르트 홈페이지

② 호랑이의 상처 치료: 병풀(호랑이풀)을 이용한 시카케어 화장품 - 상처연고로 유명한 마데카솔 성분 센텔라 아시아티카(병풀) 추출물을 핵심성분으로 포함한 동국제약의 마데카크림과 타 사의 시카케어 제품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병풀은 인도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에서 외상, 상피병(코끼리병), 한센병(나병), 어린선 등 피부질환 치료 및 보호를 위해 사용된다고 하며, 인도, 라오스 등에서는 호랑이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는 호랑이가 호랑이들 간의 싸움이나 사람의 사냥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을 때 병풀 밭에서 구르며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이 스토리는 병풀 화장품 광고에도 활용되고 있다.

화장품 개발과 zoopharmacognosy 지식 활용

그러면, 화장품에서 zoopharmacognosy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① 동물실험금지에 대한 역발상: 실험에서 관찰로 - 유럽인들의 동물 애호의식 고조 및 동물보호 단체들의 끊임없는 로비활동 결과, 2003년 ‘EU 내에서 화장품에 대한 대부분의 동물 실험을 완전히 금지’하는 EU 화장품 지침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어 2013년 3월부터는 ‘수입품을 포함하여 EU 내에서 동물실험이 이루어진 모든 화장품의 유통·판매를 전면 금지’하였고, 이스라엘, 인도, 뉴질랜드 등의 국가도 동물실험 금지법에 동참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 화장품법 개정안에 동물실험 금지조항이 포함되었고, 이 법이 2017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동물실험 금지법이 통과되었으며, 앞으로도 이 추세는 전 세계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필자는 화장품 연구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in vitro 보다 인체시험과의 상관성이 훨씬 높은 실제 동물을 이용한 in vivo 실험을 못하게 되면서, (동물대체시험법을 활용할 수 있음에도)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는 인체적용시험을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솔직한 심정을 듣곤 했다. 그러나, 동물에게 해를 가하는 동물 실험은 금지가 됐지만, 인위적인 인간의 개입(intervention)이 포함되지 않는 동물 관찰은 금지되지 않았다.8 서두에 말했던 야생동물 다큐멘터리 내용처럼 동물이 자연 속에서 상처를 입고 이를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은 인간이 끼어들 수도 없고 함부로 끼어들어서도 안 되는 과정이지만, 관찰자 입장에서 생태계 내에서 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인위적으로 조작된 실험실 내 환경 내에서 확인된 실험 결과보다 자연 현상에 대한 관찰 결과가 화장품 개발에 더 큰 영감을 줄 수도 있다.

② 순수한 관찰과 발견으로부터의 출발이 소비자의 마음을 연다. - 현대 사회에서 때로는 짜증을 유발할 정도로 수없이 쏟아지는 광고 문구의 홍수 속에서 영리적인 기업활동과 전혀 관계없이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지식을 활용하는 것은 마음을 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특히, 자신의 치료를 위해 야생의 동물이 본능적으로 사용한 천연의 치료제 이야기는 소비자가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기도 기억하기도 좋다. 책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필자가 어린 시절 읽었던 ‘노루가 스스로 약초를 찾아 문지르고 상처를 치료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던 동화는 아직도 머리 속과 가슴 속에 남아있다.

③ 아시아인의 사고방식에 적합한 야생 자연 이야기 - 동양 철학과 문화가 서양 과학과 다른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된다. 서양 과학은 주로 통제된 환경에서 특정 변수를 조작함으로써 결과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분석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반면, 동양 철학은 자연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우리 삶에 활용할 교훈과 지식을 찾아낸다. 그렇기에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자연의 야생성으로부터 유용한 치료 지식을 관찰하는 zoopharmacognosy는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문화권에 수용되기 쉬운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④ 친환경 자연주의 철학과의 연계 - 글로벌 화장품과 관련하여 메가트렌드로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이다.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자연이 주는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는 이야기는 이 시대가 강조하는 생물다양성 보존의 중요성을 알리는 측면에서도 적절한 주제이다. 다만, 자연의 생명력으로부터 혜택을 얻은 브랜드가 혜택을 준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그 지역의 원주민과 동물과 식물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이냐는 소비자의 마음에 사랑받을 만한 ‘착한’ 브랜드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맺음말

최근 과학기술 분야의 중요한 트렌드 한 가지는 생체 모방(Biomimicry)9 등 자연으로부터 영감(inspired by nature) 을 얻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내는 것이다. 동물이 스스로 치료하는 현상을 관찰하는 zoopharmacognosy는 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학문 분야로 특히 피부 건강의 회복을 위해 천연 성분을 적극 활용하는 화장품 산업에 접목하기 적합한 영역으로 생각된다. 더케이뷰티사이언스 독자 여러분이 새로운 화장품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면, 동물이 피부치료를 위해서 사용하는 식물을 찾아보는데서 출발하는 것은 어떨까? 단, zoopharmacognosy를 활용하기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이 학문은 생태학자들이 야생 생태계가 보존되어 있는 지역에서 동물을 순수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여 얻은 지식의 결과들이고, 생태학자들은 그들이 관찰한 야생 동물과 서식지 보존을 위해 국제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야생동물은 단순히 연구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보존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실상 생태학자들보다도 자연으로부터 큰 빚을 지고 있는 이들은 ‘아낌없이 주는’ 자연의 혜택을 받아 천연 제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화장품 기업과 종사자들이 아닐까? 왜 선진 화장품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친환경, 공정무역 등 지속가능성을 내세우고 있는지, 친환경과 윤리성은 단순한 소비자의 취향을 맞추기 위한 콘셉트 차원이 아니라, 현대 화장품 브랜드가 마땅히 가져야 할 기본 정신이 아닐지 고민해볼 때라고 생각된다. 환경의 보전, 천연 원료를 채취하는 지역 원주민의 생활수준을 고려한 기업의 애정 어린 노력은 마케팅 콘셉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기업과 사회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차원의 투자일 것이다. 당장 기업의 이익과는 관계가 없어보이는 다소 철학적이고 윤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런 고민이 장기적으로 K 뷰티가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는 브랜드로 발전하기 위한 기초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1. 성경 잠언 6:6~11, 30:24~31 에는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등 사람에게 교훈을 주는 동물의 예가 나와있다.

2. zoo는 동물을, pharma는 약을, cognosy는 앎을 의미하는데, 우리말로는 동물생약학 정도로 번역되고 있지만 영어처럼 정확하게 의미전달은 되지 않는 것 같다.

3. 처음에는 체내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4. Michael A. Huffman, “Current evidence for self-medication in primates: A multidisciplinary perspective”. Yrbk Phys Anthropol 40 : 171-200, 1997. DOI: 10.1002/(SICI)1096- 8644(1997)25+%3C171::AID-AJPA7%3E3.0.CO;2-7

5. Pebsworth P., Krief S., Huffman M.A., “The Role of Diet in Self-Medication Among Chimpanzees in the Sonso and Kanyawara Communities, Uganda”. Primates of Western Uganda : 105-133, 2006. DOI: 10.1007/978-0-387-33505-6_7

6. H. C. Morrogh-Bernard et al., "Self-medication by orang-utans (Pongo pygmaeus) using bioactive properties of Dracaena cantleyi" Sci Rep. 2017 Nov 30;7(1):16653. DOI: 10.1038/ s41598-017-16621-w.

7. S. Kleinertz, C. Hermosilla, A. Ziltener, S. Kreicker, J. Hirzmann, F. Abdel-Ghaffar, A. Taubert (2013): “Gastrointestinal parasites of free-living Indo-Pacific bottlenose dolphins (Tursiops aduncus) in the Northern Red Sea, Egypt.” Parasitology Research: PARE-D-13-01114R1. DOI: 10.1007/s00436-014-3781-4

8.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도 관찰연구는 사생활 보호 문제만 주의하면 중재 연구에 비해 윤리적인 문제가 별로 없다고 여겨진다.

9.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물체가 지닌 뛰어난 구조 및 기능으로부터 원리를 도출하여 이를 새로운 공학기술로 만들어내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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