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릴ACRYL1 박외진 대표
아크릴(ACRYL) 박외진 대표

[더케이뷰티사이언스]  오늘도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외치며 헐레벌떡 등굣길에 오른 중학교 2학년 큰딸의 얼굴엔 화장기가 보인다. 언제부터였는지, 딸 아이는 화장품과 화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빠의 눈에는 여전히 맨 얼굴의 뽀얀 피부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예뻐 보인다고 얘기를 해줘도 화장을 안 하면 친구들을 보기가 창피하다며 호들갑을 떠는 딸 아이는 – 어느새 엄마와도 화장품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으로, 화 장이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감’이라는 기능을 갖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아빠에게 이야기하려 한다. 이런 필자에게,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인공지능 산업 분야와 관계를 지어 의견을 적고 있는 지금은 - 그 자체로 너무 자연스럽다고나 할까.

필자의 중학교 시절에 밤늦게까지 읽었던 어느 소설의 한 장면은 그 자체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이미지를 끝없이 상상시켰는데, 당시의 이미지는 ‘화장기 없는’ 화장을 한 여주인공이었다. 그런 기억이,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 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중학교 소년에게 갖게 했다. 그런 ‘자연스러움’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에 대해서 모두가 동의하는 방법(?)이 있을지 잘 모르겠으나, 개인마다 갖고 있는 다양한 특질(feature)들 – 피부치밀도, 유/수분 특성, 얼굴 형태 등이 아닐까 - 에 맞는 화장 방법, 화장품 선택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추천’이라는 기능은 ‘개인화(personalization)’를 구현하는 핵심 사항인데, 요즘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는 인공 지능이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인공 지능에 대한 정의는 시대마다, 학자마다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여 왔으니, 지금 이 지면에서 그걸 논의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현재까지의 패러다임은 어쨌든 ‘데이터 주도형 추론(data-driven reasoning)’ 방법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주어진 데이터, knowns)’으로부터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앞으로 보게 될 데이터의 일부, unknowns)’에 접근하는 모든 활동들을 그 관심사로 갖고 있음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특히 그 추론 구조로 심층 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을 이용하는 딥러닝(deep learning)의 실험적 성공과 여러 산업에서 보여준 놀라운 사례들은 딥러닝의 선구자 중 한명인 스탠포드대학의 앤드류 응(Andrew Ng)이 ‘IFA 2018 기조연설’에서 언급한 “딥러닝은 미래 모든 기술들이 사용하는, 지금의 전기(電氣) 같은 역할(기초 에너지, 동력원)을 할 것”이라는 멋진 표현에 저절로 동의를 하게 만든다.

화장품 산업과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에 딥러닝을 ‘전기’처럼 적용해보면 어떤 상상이 가능할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knowns)매일 매일의 개인의 피부 상태, 대기 상태(자외선, 미세먼지 등), 수면 시간, 운동 시간, 취침 시간 등 여러가지 정보들일 것이다. 이렇게 알 수 있는 데이터들을 모아서 어떤 ‘상태’를 정의할 수 있다면, 각 상태별로 가장 적절하고 유용성이 높은 화장품들을 그 기능성, 효과, 사용 만족도 등을 중심으로 ‘추천 대상’ 으로 선정할 수 있고, 이런 정보들로 구성된 데이터 세트를 마련한다면, 딥러닝 기술 은 흥미로운 ‘아름다움’을 위한 추천 모델을 만들어 줄 수 있다. 2012년 ImageNet 대회(ILVSR, ImageNet Large Scale Visual Recognition Competition) 를 통하여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딥러닝 분야는, 지금 이순간까지도 ‘모델 전쟁(model war)’을 방불케 하며(실제로 ‘모델 우리(model zoo)’라는 이름의 사이트들도 존재하니까) 열렬히 발전하고 있고(Google이 끝판왕격 인공지능 언어 모델인 BERT(Bidirectional Encoder Representations from Transformers)를 공개한 시점은 무려 작년 11월이었다!) , 초기에 연구되던 판별모델(discriminative model, 순환 신경망(RNN, Recurrent Neural Net), 컨볼루션 신경망(Convolution Neural Net) 등)들의 수많은 개선 모델들이 경쟁적으로 발표되는 것도 모자라,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을 필두로 한 생성 모델(generative model)의 시대가 허겁지겁 온지도 사실 돌아보면 불과 몇 해 전이다. 최근에는 수집될 수 있는 데이터양이 제한적인 경우에는 데이터 증강(data augmentation)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과 더불어 데이터 수집이 제한된 환경하에서도 고성능 추론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전이 학습(transfer learning)을 비롯해 원샷 러닝(one-shot learning), 제로샷 러닝(zero-shot learning) 의 철학을 담은 다양한 기술들이, 일일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매일 매일 발표가 되고 있다. 물론 2016년에 딥마인드에서 개발하여 전 세계를 바둑과 인공지능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했던 알파고에서 사용한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도 ‘멋진 딥러닝’ 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크게 일조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데 만약, ‘우리가 알 수 있는 것(knowns)’ 중에 ‘감성(emotion 또는 affect)’이 포함된다면 어떨까. 이 생각 또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 감성과 여성의 화장을 연결 짓는 상상은 문화예술속에서 이미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가. 대중가요만 보더라도, 임주리님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부터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클린징 크림’, 다이나믹 듀오 멤버인 개코의 ‘화장 지웠어’ 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감성을 정의한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지만, 학자들 사이에서 대체적인 공감대는 ‘외부의 자극(stimulus)’으로 형성되는 인간 내면의 상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감성은 지금 어떻게 화장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주요한 동기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2007년에 한국 심리학회지에 발표된 연구를 인용해 보면, 한국 문화에서 화장이 여성들에게 심리 사회적 기능을 갖고 있어 여성들의 동기 및 욕구, 신념 등의 감정 연관 요소들이 ‘화장에 대한 욕구’보다는 ‘화장하는 행위’에 대한 개연성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김양하 외, “화장의 자의식적 특성 분석과 화장마음의 사회인지모형 검증”, 한국 심리학회지:여성, Vol. 12, No. 2, 2007). 즉, 화장과 감정으로 설명될 수 있는 ‘마음’이란 것은 높은 확률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로 판단할 수 있는데, 따라서 사람의 감정을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의 화장 행위를 예측할 수 있지는 않을까.

사람의 감정을 기계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노력은 90년대 중반에 MIT 미디어랩의 로잘린드 피카드(Rosalind Picard) 교수의 ‘감성 컴퓨팅(Affective Computing)’이라는 일갈로 체계화가 시작되었다. 감정을 정보로 인식하여 컴퓨팅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건, 어쩌면 매우 어색한 일일지도 모르는데(왜 냐하면 비결정적(undeterministic) 성격을 갖고 있는데, 결정적(deterministic) 논리로 구현해야 하므로 정보의 가치가 낮아질 수 있으니까), 그 쓰임새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연구에 대한 요구가 커진 것이다. 대표적으로, 어떤 제품 또는 유명인(정치인일 수도 있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분석할 때 사용될 수 있고(소셜 미디어를 대상으로 한 오피니언 마이닝(opinion mining)기술이 대표적 예일 것이다), 음성, 표정 등을 통해 현재 관심도, 집중도를 분석하는 사용자 평가 기술에 관심 있어 하는 광고 업체, 교육 업체 등에서도 그 필요성을 일찍 인지하고 있었다. 감성이라는 것은 거의 가장 극단적인 개인 정보임에 틀림없어서, 감성을 알게 된다면 구현될 수 있는 ‘개인화’의 수준은 매우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 지금 얘기하고 있는 ‘화장 행위 예측’이라는 것도 이런 연장선 상에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개인 정보라는 제약을 어떤 묘수(?)로 잘 극복하여, 감성 정보를 사용자로부터 공유 받을 수 있다면, 화장품 관련 산업계에 있는 많은 업체들, 또는 피부 관리 솔루션을 시장에 제공하고 있는 많은 업체들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신기하게 여겨지는, 그리고 기분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들을 제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웰케어 시대의 아름다움의 관리
웰케어 시대의 아름다움의 관리

그럼 ‘화장 행위 예측’을 하는 딥러닝 모델을 개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성능 좋은 감성 인식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도 가능하면 얼굴 표정, 소셜 미디어, 음성톤 등 멀티 모덜리티(multi-modality)를 포괄적으로 분석하여 인식하는 기술이면 더욱 더 좋을 것이다(이러한 멀티 모덜리티를 지원하는 딥러닝 모델을 멀티 모덜 퓨젼(fusion) 모델이라고 부른다). 현재 멀티 모덜 퓨전을 통한 감성 인식 기술은 70~80 % 정도의 인식 정확도를 보이고 있는데, 해외의 연구 사례를 보면 70%가 넘으면 감성 인식 기술에 대해 대중은 견딜 수(tolerable) 있다는 보고가 있으니 정확도에 대해서는 일단 넘어가자(Ogneva, M. “How companies can use sentiment analysis to improve their business”,2010). 멀티 모덜 퓨전을 하면 좋은 이유가 화장 전후의 얼굴 변화를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얼굴 정보가 포함되니까), 가능하면 어떤 화장 행위가 이어졌는지 선명하게 알 수 있으면 (물어봐서라도 말이다) 금상첨화. 이런 데이터들을 Google Brain의 수장인 제프 딘(Jeff Dean)이 이야기한 딥러닝의 장점을 느낄 수 있는 데이터 볼륨인 10만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모으게 된다면 예측된 감성으로, 어떤 화장 행위가 뒤따를 지를 대략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딥러닝 모델이 설계될 수 있을 것이다(아마도, RNN-LSTM(Long-short term memory) 모델 정도가 사용되지 않을까).

모든 예측은 가치 있는 서비스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이제 화장품 관련 업체들은 저 모델을 사용해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면 될 지를 열심히 궁리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 흐름을 보면, 뷰티 산업이라는 것이 융복합적인 발전 방향을 보이고 있음을 주시해야 할 것 같다. PWC의 2017년 보고서 ‘The rise of wellcare’에서는, 뷰티산업은 헬스 및 식품 산업과 융합되어 ‘웰니스’를 더욱 더 확대시킨 ‘웰케어’라는 개념으로 수렴해 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아름다움’을 관리하기 위해 이미 알려져 있던 상식 수준에서의 건강관리와 식습관이 본격적인 산업으로 융합한 형태를 갖추고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빅데이터와 인공 지능으로 많은 부분이 설명되는 4차산업시대의 새로운 현상으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즉,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라이프 스타일’로 그 개념이 삶 전체로 팽창하며, 이에 맞추어 우리들의 가치 평가 기준도 같이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웰케어’ 시대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어쩌면 매 시간마다, 어떤 인공지능 기술이 자리 잡고 있는 ‘플랫폼’에서 끊임없이 사용자와 인공지능이 대화하며 실현될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매 초를, 매 시간을, 매일을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나에게 알맞은 조언을 받으며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관리할 수 있다면, 느껴지는 건 ‘번거로움’일까, ‘편안함’일까. 아직 그런 시나리오가 상용화된 경험이 충분치 않아, 판단이 어려울 것 같지만, 분명한 건 인위적인 화장이나 스타일링보다 개인적 매력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으니, 생활 속에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가 어색하지 않게 잘 섞여 있는 흥미로운 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계속 갖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관리되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나만의’ 아름다움이 결국 우리 모두에게, 요즘 어느 아이돌 그룹의 노래 가사처럼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애들과 난 달라! 달라 !”라고 외칠 수 있는 자신감을 줄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헬스, 뷰티, 식품 산업이 융복합되어 나타나는 ‘웰케어(wellcare)’ 산업의 모습(출처 :P WC, “The rise of wellcare”, 2017)
헬스, 뷰티, 식품 산업이 융복합되어 나타나는 ‘웰케어(wellcare)’ 산업의 모습(출처 :P WC, “The rise of wellcare”, 2017)

그러나, 현재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은 미래의 인공 지능의 모습을 포함하여, 기술적 진보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아름다움’에 대해 우리가 믿고 있는 본질적 가치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인공 지능을 포함하여 인류 역사상, 우리가 갖고 있는 소중하고 다양한 가치들을 재정의하도록 만들었던 어떠한 기술의 발전사(史)도 잘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아름다움’이라는 가치 자체가 가진, 우리 내면에서의 위대한 위치적 관성(慣性)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일 아침에는 아직까지 조금은 어설프게 화장을 하고 등굣길을 나서는 나의 큰딸에게 이렇게 얘기해야 겠다. 어떻게 화장해도, 어떤 색으로 표현하려 해도 - 아빠에겐 넌 원래부터 참 ‘눈이 부시다고’. 얼마 전 끝난 어느 드라마의 제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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