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케이뷰티사이언스]  

이옥섭 SK바이오랜드 부회장서울대 공업화학과 박사로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장과 대한화장품학회장을 지냈다. 현재 더케이뷰티사이언스 감수위원장이자 아모레퍼시픽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옥섭 SK바이오랜드 부회장서울대 공업화학과 박사로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장과 대한화장품학회장을 지냈다. 현재 더케이뷰티사이언스 감수위원장이자 아모레퍼시픽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성공한 기업의 공통점은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 명품(名品)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명품을 만들어 낸 기업은 성공했다는 의미다. 세계무대에 K뷰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우리 화장품 역시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명품을 만들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지난해 국내 화장품 수출은 전년보다 27%가 증가한 63억 달러로 이를 한화로 환산하면 약 7조원에 이른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촉발된 중국과의 관계악화, 가속도가 붙고 있는 중국화장품의 품질향상, 중국의 새로운 규제,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분쟁 등 굵직굵직한 대내외 악재를 고려할 때 놀라운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몇 년 간 지속돼 온 높은 수출성장은 국내 화장품산업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는 2000개를 훌쩍 넘겼으며 제조판매업체 수 역시 13000개에 근접하고 있다. 또 미래 화장품산업의 주역인 인재를 양성하는 화장품 및 미용관련 대학만 해도 해마다 1만여 명에 이르는 양질의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질적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화장품산업은 상위 몇 개 회사가 시장 대부분을 지배하는 구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K뷰티가 지금보다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화장품 회사가 안전하고 우수한 품질의 제품으로 세계인이 애용하고 인정하는 제품 즉 명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글에서는 K뷰티의 성공을 위해 명품 화장품이란 무엇이며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K뷰티 산업의 성장요인

우리나라 경제전반을 선도하고 있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산업은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고자 하는 많은 기업가와 기술자들이 연구와 생산혁신 또 시장개척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다. 화장품산업 역시 품질향상을 위한 각 분야의 열정과 노력이 오늘 날 K뷰티의 전성기를 이끈 주요 배경이다.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패션과 K팝 그리고 K드라마와 영화 등 국가경제 수준과 비례하는 문화상품 즉 한류의 덕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인만의 뛰어난 손재주와 감각이 깃든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낸 것이 K뷰티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화장품은 우리나라의 무역이 활황기를 맞던 1980년대 화장품 강국인 선진국들이 강력하게 시장개방을 요구했던 품목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적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화장품을 다른 상품군에 비해 일찍 시장을 개방했다. 결과론이지만 일찍 시장을 개방한 것이 오늘 날 K뷰티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유명세와 막강한 자본 그리고 선진화된 마케팅으로 무장한 해외 유명 화장품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화장품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세계 유명제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우수한 상품 즉 명품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게 됐다. 이 사례로 볼 때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 보다는 경쟁을 통한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 산업의 체질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특정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간접적인 지원이 더 효과적이다. 우리 정부가 작년까지 시행했던 글로벌코스메틱연구개발사업단이 그 좋은 예다.

사업단은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연구자금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용해 많은 화장품기업들의 연구개발 능력을 향상시키는 순기능을 불러왔다. 특히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취약한 중소기업들의 품질경쟁력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필자는 이 정부 지원이 K뷰티 산업에 더욱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제품개발을 위한 연구 분야에 대한 지원 뿐 아니라 명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더욱 고도화된 연구와 해외시장 개척 분야로 확대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난해 이 사업이 마무리되고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명품이란 무엇인가

앞서 언급했듯 모든 기업은 성공하기를 갈망하며 성공의 필수요건인 명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 노자의 도덕경 첫 머리에 무명 천지지시(無名 天地之始) 유명 만물지모(有名 萬物之母)’라는 글귀가 나온다. 해석해보면 모든 것의 시작은 이름이 없었으나 이름을 얻으면 모든 사물의 근본이 된다는 의미다.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 것에 이름을 붙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이름을 듣고 모두에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때 비로소 이름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름을 얻은 제품이 바로 명품이 되는 것이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고 시인 김춘수가 노래했듯 고객이 우리가 만든 화장품을 보고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명품이 되는 것이다. 고객이 이름을 불러주는 화장품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며, 무엇이 명품 화장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싼 화장품 또는 천연이나 유기농화장품, 기능성화장품, 한방화장품, 첨단과학을 입힌 화장품이라고 해서 다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시를 쓰듯, 음악가가 작곡을 하듯,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듯, 디자이너가 작품을 만들듯 화장품 과학자는 많은 원료를 이용해 화장품을 창작한다. 이 창작품이 명품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피부에 관한 지식, 화장품 원료에 관한 지식, 고객에 대한 지식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감수성 그리고 이를 향상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이 과정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 우리가 아는 명품 중 상당수는 오랜 기간 수많은 실험에 의해 탄생했다.

명품화장품의 기준

최근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천연화장품과 유기농화장품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이를 인증하는 기관을 만든다고 한다. 또 중국에서는 한방(韓方)이라는 표현을 화장품에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줄기세포 배양기술 등 첨단 바이오기술을 이용한 화장품, 방부제와 색소, 계면활성제, 실리콘오일, 파라핀 등을 사용하지 않은 점 등을 앞세워 명품의 명성을 얻으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물론 천연이나 유기농화장품이 명품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화장품은 화장품이지 농산물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유기농이란 어떤 식물을 유기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는 재배법의 일종일 뿐 그 자체가 화장품에서 어떤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필자는 천연이나 유기농화장품은 단지 막연하게 좋은 제품이라는 이미지만 가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과연 이런 제품들이 명품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은 화장품이라고 선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미생물이 자랄 수 없는 조건을 만들었거나 많은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근거해 법에서 정한 방부제 외의 방부제를 사용한 제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명품으로 불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며 여기에 더해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을까라는 걱정마저 든다. 이 밖에도 특정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 마치 좋은 제품인 양 소개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원료가 필요하다. 이 경우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략 몇 종의 원료를 사용하는데 그 나머지 원료는 모두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명품이 되려면 어떤 원료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강조하기 보다는 어떠한 원료와 기술을 이용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고 이 제품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의 피부를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꿔줄 수 있는 지를 밝히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본다. 과거 필자가 화장품을 개발하던 시절에는 제품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전 어느 정도 성공여부를 예측할 수 있었다. 이것은 좋은 제품 즉 명품이란 그 제품에 어떤 가치가 담겨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명품은 이미 개발할 당시 개발자가 직감으로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명품 화장품이란 연구하고 개발하는 정성과 노력이 제품 속에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객이 그 제품과 이름을 기억하고 찾는 것이다. 즉 어떤 제품이 감동과 즐거움으로 고객의 머릿속에 기억될 때 비로소 명품이 되는 것이다. 화장품은 인간의 외면은 물론 내면까지의 아름다움을 가꿔주는 마법과 같은 상품이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질서와 조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느낌과 경험을 접할 때 느끼게 된다. 아름다움의 또 다른 말은 어여쁨이다. 어여쁨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란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해주고 싶고, 더 잘해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명품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객을 이용해 이윤을 남기려는 마음보다는 고객을 향해 어여쁜 마음을 갖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필요하다. 명품이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찾는 제품이다. 오래된 제품일수록 명품일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명품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려고 한다. 우선 기존 명품의 외관만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절대로 명품이 될 수 없다. 첫 번째 거쳐야 할 과정은 그 제품이 명품으로 존재할 수 있는 상관관계나 인과관계 등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과정을 통과했다면 절반은 명품의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제품의 개발목적과 방향을 정하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판매할까 하는 마케팅과 세일즈 전략을 세워야 한다. 물론 이 전략을 매끄럽게 수행할 시스템을 갖춰야함은 물론이다. 그 반면에 명품을 만들기 위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몇 가지 요인도 있다. 과대선전을 일삼는 제품은 절대 명품이 될 수 없다. 날로 현명해지는 요즘 고객에게 과대광고란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약점을 강조할 뿐이다. 또 개발자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것을 제품에 담아서는 안된다. 개발자도 느끼지 못하는 감동을 고객이 느낄 수는 없다. 감동이 없는 제품은 결코 명품이 될 수 없다.

끝으로 한 화장품 회사의 연구소 입구에 서있는 돌에 새겨진 문구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과학과 기술에서 우위를 확보해야만 세계 선두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인재들이 모인 연구소는 첨단 기술의 산실로서 인류봉사, 인간존중, 미래창조의 이념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내일을 열어가고 풍요로운 사회를 구현하는데 이바지 할 것이다.”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창조정신으로 명품을 만들어나가는 일, 바로 이것이 K뷰티의 지속성장과 성공을 견인하는 핵심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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