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화장품으로 그림 그리는 화가 ‘미승’
[더케이뷰티사이언스] 아이섀도우 팔레트는 모든 색상을 바닥내기가 쉽지가 않고, 나에게 맞는 ‘인생’ 베이스, 립스틱을 찾는 것도 여간 쉽지가 않다. 예쁘고 신선한 제품은 계속 출시되고, 좋다고 알려진 제품을 사용해보다 어느 순간 화장대 위의 먼지 쌓인 제품을 발견한다. 제품 내용물이 상당하다면 그 처리 또한 한 번쯤 고민해봤을 문제다. 그런데 유통기한이 지난, 일명 ‘폐화장품’을 사용하는 이가 있다. ‘미승’ 작가는 도화지에 새 로운 얼굴과 사물을, 풍경을 그려낸다. 미술고등학교를 다녔던 그는 서양화 실기시험에서 매끄러운 표현이 어려운 아크릴 물감 대신 비비 크림을 임시방편으로 사용했다. 컨실러로 잡티가 가려지는 것과 같았던 기억이 동기부여가 되어 지금의 ‘화장품 그림(Makeup drawing)’ 작가 미승을 만들었다. 이제는 단순히 폐화장품으로 그린 그림을 넘어 ‘리사이클링(Recycling) 혹은 업사이클링(Upcycling) 아트(Art)’로도 분류되고 있는 미승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A. 저는 중고등학생 때 화장을 조금 일찍 시작했던 미술학도였어요. 특히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고 한창 예민해지는 시기였기 때문에 항상 화장품을 갖고 다녔죠. 그림도 전공이면서 좋아했기에 제가 좋아한 ‘화장품’과 ‘그림’이 서로 잘 맞았던 것 같아요.
Q. 작가님 작품을 보면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느낌이 많던데요.
A. 제가 화장품 중에서 특히 펄, 글리터를 많이 좋아하는데, 화장품만의 특징이기도 해서 많이 사용하려고 해요. 아마 제가 그린 그림 중에 펄 없는 그림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진을 찍으면 이러한 펄의 특징이 잘 담기지 않는다는 것이죠.
Q. 화장품으로 그린 그림의 장점을 꼽는다면?
A. 제품이 많다 보니 재료가 굉장히 다양해서 제가 직접 탐색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예로 동양화 물감을 쓰면 그 사용법이 정해져 있는데 화장품은 제가 직접 골라서 맞춰 쓰거든요. 아크릴 물감 느낌을 내고 싶으면 매니큐어를 사용하고, 수채화처럼 투명한 느낌을 내고 싶으면 틴트 혹은 아이섀도우에 투명한 립글로즈를 섞어 물감 같은 질감을 만들어 사용해요. 이런 식의 탐색을 계속 이어가다 보니 제가 맞춰 쓰는 재미도 크더라고요. 섀도우의 펄, 글리터를 이용한 반짝이는 느낌과 폐 화장품이라서 재료비가 들지 않는 것 또한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Q. 폐화장품을 얼마나 갖고 있나요?
A. 감사하게도 소소하게 보내주시는 분들부터 뷰티 유투버, 전직 메이크업아티스트 등 많은 분들이 보내주세요. 그러다 보니 제품이 정말 많아서 사실 가늠이 안가요. 집 구석구석 어디서든 제품들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예요. 재료가 없어서 (작품활동을) 못한다는 말은 나올 수 없는 거죠(웃음).
Q. 화장품이 미술용 제품이 아니라서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A. 그림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지금은 미술용 픽서티브(Fixative)를 뿌리고 유리 액자에 보관하여 최대한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하고 있어요. 한번은 그림을 그리다 덧대었을 때 이미 바른 부분의 가루가 떨어져 난감한 경우도 있었어요. 이외에도 변색 걱정 때문에 판매를 하지 않았었는데, 최근에 와서 처음으로 1점(레옹 마틸다)을 판매하게 되었어요. 또 화장품이다 보니 유분이 많아 종이에 얼룩이 지거나 혹은 제품이 너무 묽어 종이가 우는 경우도 있었어요. 맨 처음에 얼룩이 생겼을 때는 너무 당황했었는데, 보시는 분들은 의도한 것으로 봐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 또한 ‘망했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예상치 못하게 나오는 부분도 그것만의 느낌을 살려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Q. 판매를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A. 원래는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고, 시간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변색 우려도 있어 판매를 하지 않았어요. 아직까지는 변색이 일어난 제품은 다행히도 없었지만요. 1점을 구매하신 구매자 분께도 제가 말씀드린 변색의 우려에 대해서 말씀드렸었는데 작품의 일부분으로 생각해주셔서 가벼워진 마음으로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변색이 되어도 그 또한 그림의 일부분으로 봐주신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게도 새로운 그림을 그려낼 자세가 만들어질 수 있겠다 싶었지요.
Q. 화장품으로 그린 작품으로 미샤 드로잉클래스, 아모레퍼시픽, TV 프로그램 및 다양한 전시도 하셨는데요.
A. 우선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신선해서 이를 주로 소개하는 자리가 많았던 것 같아요. 또 그림을 그릴 제품을 새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누구든 바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중점을 뒀어요. 제가 그린 도안을 제공해 시연을 하면 참가자분들도 쉽게 하실 수 있었고 반응도 좋았어요. 작품 전시할 때는 사실 화장품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설명을 안 하면 잘 모르시더라고요. 설명을 드리면 관람객 분들이 관심을 주시면서 어떤 제품을 썼을지 추측도 하시고 같이 즐겨 주셨던 기억이 나요.
Q. 최근 신세계 면세점과 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업사이클링 아트’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이런 친환경적 캠페인에 대해서는 본래 생각을 갖고 있었나요?
A. 솔직히 말하면 단순하게 제가 좋아하는 화장품이 유통기한 지난 게 아까운 마음에서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폐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 환경을 생각하는 분들도 관심을 가져 주시면서 책임감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버려지는 화장품이 아까운 마음도 공감을 해주시고 응원 해주시니 신기하면서 감사했고요. 저에게는 오히려 폐화장품과 많은 분을 통해 의미 있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하고 보람찬 일인지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제가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사용하는 종이도 친환경 용지인 크래프트 지인데 환경에 도움도 되고 발색도 잘돼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있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 하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A. 개인적으로는 미술사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싶은 갈망이 있어 공부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더불어 화장품 업사이클링 분야가 자리잡아 더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어떤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 좋을지 많이 탐색하며 연구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지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영상을 통해 미승작가 작품 [오드리햅번]의 영롱한 색감을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