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학교 홍진태 약학대학장 (본지 감수위원)
미국 켄터키 대학에서 약리독성학 박사를 취득한 바이오 전문가로 특히 독성학 연구 분야의 권위자다. 공직(식약처 근무) 및 학계(교수)에 이어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추진단장과 두 번 연임한 충북산학융합본부 원장 직을 통해 정부와 학교 및 산업계의 실상을 가장 잘 아는 학자로 꼽힌다. 연구활동(논문 집필, 국내 의약계 최고수준의 집단연구인 의과학연구센터 (MRC)장 수행 중)과 학교 및 지역사회 발전(기부금 및 재능 기부 등)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더케이뷰티사이언스]  전 세계적으로 융합바람이 거세다. 융합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해지는 것이다. 서로의 장점만 결합시키는 것이 융합의 1차원적 형태라면 최근에는 영역 간 경계를 허물어 과거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상품과 서비스가 잇따르고 있다. 서로 다른 상품의 결합은 물론 상품과 서비스의 결합, 서비스와 서비스의 결합 등 그 형태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상품과 고객을 잇는 연결고리인 유통 역시 마찬가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대별되던 유통형태는 이제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새로운 유통채널로 변화해가고 있다. 이처럼 최근 한국 사회 전반에서 융합은 단순한 키워드를 넘어 성공적인 미래를 보장하는 핵심 화두로 인식되고 있다. 융합에 대한 국가・국민적 관심과 비례해 이른바 ‘무늬만 융합’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세에 편승해 겉포장과 콘셉트만 융합을 표방하는 자격 미달 융합도 많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융합은 실체가 있어야 한다. 실체 없는 융합은 허상이나 공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융합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소비자이지만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다. 다시 말하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융합의 틀을 짜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다.

한국 사회에서 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는 다양한 인프라를 갖춘 곳은 학교가 유일하다. 다양한 곳에서 전문적인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학교에 그 기능과 역할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과거 이론에 집중됐던 학교의 커리큘럼이 사회 요소요소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실무요소가 점차 도입되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전문가를 양성해내기에는 아직 양적・질적으로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국가가 바라는 진정한 융복합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책 전반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은 전문성을 갖춘 전문 인력들이 서로 정보와 지식을 교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운영하는 컨트롤 타워다. 이 장치가 마련돼야 실체가 있는 융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연결성 및 확장성을 논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필자는 충북에 최초로 설립된 산학융합본부 원장직을 최근까지 수행한 바 있다.

산학융합본부는 말 그대로 산업계와 학계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결합시켜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해내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기관이다. 필자가 원장 취임 후 제일 처음으로 한 일은 각 분야에서 독창적인 기술이나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을 찾는 일이었다. 회사가 지닌 장점을 성공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함으로써 지방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전국의 실력 있는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실력을 갖춘 인체시험기관은 물론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강소기업이 입주 의사를 밝혔을 때의 환희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들이 여러 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터를 잡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들과의 정보 및 인적교류를 통한 시너지 창출, 즉 융합이었다. 융합을 통한 새로운 발전과 성공을 추구하는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융합본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입주 기업들 간의 화합과 정보교류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은 물론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최신 정보와 트렌드를 공유했다. 인접해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 보건산업진흥원 등 정부기관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인적・물적 자원도 아낌없이 지원했다. 이 결과 입주기업 중 상당수가 이곳에서 성공의 발판을 다졌다. 어느 누구와 경쟁해도 뒤지지 않을 경쟁력을 갖춘 것이다. 필자가 속한 충북대 약학대학은 몇 년 전부터 대학원 과정으로 화장품산업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입학 자격 요건 중 핵심은 현재 화장품 관련 기업에 근무하고 있어야만 한다. 이 과정을 운영하게 된 배경도 결국 전문가 육성이다. 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가 나아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설했다. 등록금 중 상당액(70%)을 정부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회사와 학생이 나눠 내는 제도로 해마다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다. 학생은 물론 기업의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시스템이야 말로 다른 분야에서도 적극 도입할 것을 권한다.

융합은 전 세계가 주도권을 쥐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고 있는 4차 산업시대의 핵심 어젠더(Agenda)이기도 하다. 국가 간 치열한 다툼이 예고되고 있는 융복합 경쟁에서 우리 화장품과 의약품 등 보건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디지털과 물리학 등 서로 다른 학문 분야와의 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실체가 있는 진정한 융합을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서 가장 깊이 있는 정보와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전문가의 발굴 및 육성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이런 인력이 부족하다면 지금부터라도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의 100년 대계를 결정짓는 미래 인재 양성이라는 중책을 담당하는 학계가 융합의 중심에 서야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THE K BEAUTY SCIEN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